[김호이의 북적북적] “전쟁을 건너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 이스마엘 베아가 던진 평화의 질문”

김호이 기자 2026. 4. 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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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 베아(오른쪽 두 번째)가 전쟁 경험과 인간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대담에는 김지녀 시인, 도종환 시인, 조해진 소설가가 함께 참여해 전쟁과 평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나눴다.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지난3월27일 '평화: 전쟁의 시대를 건너는 사람의 말'을 주제로 열린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두 번째 세션에서 전쟁 이후 인간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제기됐다. 이날 무대에 오른 시에라리온 출신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이스마엘 베아는 소년병 시절의 경험을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을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던 존재"라고 소개하며, 전쟁 속에서 흔히 구분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드러냈다.

베아는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전쟁에 얼굴을 붙여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참혹한 경험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치유되었다고 설명했다. 말하기가 곧 살아남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문학의 언어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의 회복과 사회적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특히 전쟁 중 손을 잃은 소년병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상처와 선택을 강조했다. 친구는 자신의 손을 잘라간 가해자 소년병을 찾아갔지만,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함께 복수를 준비했던 일행이 "지금이라도 그를 죽이자"고 말했을 때, 친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를 죽여도 내 손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소년병은 상대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유만을 물었다. 가해자였던 소년은 "하지 않으면 내 손이 잘릴 상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모두가 어린아이들이었고, 그들 모두는 지시에 의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자리엔 명확한 악인도, 완벽한 선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폭력에 휘말린 어린 아이들의 생존 본능과 구조적 비극만이 있었다.

베아는 이날 발표에서 전쟁의 실체를 이렇게 정의했다.

"전쟁에서는 누구도 온전히 승자일 수 없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상처 입은 인간뿐입니다."

그는 평화가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평화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그는 말했다. 전쟁 이후의 삶은 선택의 문제이며, 그 선택은 복수나 분노가 아닌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베아는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공유될 때에만 강력하다"고 강조하며, 전쟁의 잔혹함과 무의미함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폭력이 반복되는 역사를 끊어내는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청중을 향해 "이 이야기를 밖으로 퍼뜨려 달라"고 요청했다. 언어는 증언의 도구이자 평화를 위한 저항의 도구라는 메시지였다.

전쟁의 시대를 건너는 사람들의 말은 단순한 증언을 넘어, '어떻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앞에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 자체가, 평화로 나아가는 길의 또 다른 시작점임을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