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경제학] 6.부평 주안산단...그들 입으로 듣는 결핍의 향연
직장어린이집 찾는 정민씨
퇴근길마다 반복되는 육아전쟁
산단 근로자, 아이 맡길 곳 부족
관련 정책은 현장 요구 못 따라
산단 불법 주정차난 힘든 민성씨
출근보다 먼저 시작된 주차난리
반복되는 문제… 보행 안전 위협
책임은 분산 해결은 더딘 구조
주방기구 제조업종서 일하는 지영씨
산단 안 풍경, 출구 하나로 갈려
반도체·뿌리기업, 다른 온도차
오래 머무는 일터, 삶은 저멀리
국가산단 품는 공간 있을까
외형 확장… 영세사업장로 채워져
밥상위에 드러난 공단 현실·미래
살아갈 공간으로 재설계 되나 의문


아침마다, 텅 빈 햇님반 신발장에 아이 신발이 1등으로 도착할 때. 아직 잠이 가득한 아이 손을 선생님 손에 맡기고 돌아설 때. 박정민(37)씨는 속으로 용서를 빈다고 했다. "미안하잖아요. 엄마, 아빠 출근 시간에 맞춰서 같이 일찍 일어나야 하니…." 주안산단 한 한식뷔페에서 만난 그는 산단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직장 접근성 높은 보육시설이라고 했다. 조금 더 늦게 아이를 등원시키고 조금 더 빠르게 하원시키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니까.
▲장면 열여덟.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하지만 이 바람을 산단 안에서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주안·부평산단 일대에는 직장 어린이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규모 사업장이 아니더라도 회사 차원에서 나서 공동 보육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움직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퇴근해서 집 근처 어린이집 도착하면 7시가 넘어요. 맨날 죄인처럼 선생님께 죄송하다면서 하원시키죠. 저녁 먹이고 씻기면 9시 금방이에요. 애랑 대화하고 놀 시간도 없어요. 근데요, 공무원, 대기업 직장인들처럼 6시 땡 치면, 근처 어린이집에서 애 데려와서 같이 퇴근하면 오죽 좋겠냐구요. 아침도 마찬가지예요. 차에서 좀 재우고 그러고 보내도 되니까요. 우리 어머니가 저 학창시절 때, 공무원 준비하라고 간혹 그러셨어요. 이제 와서 조금 후회되네요."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보면, 2024년 기준 전국 직장 어린이집은 1305개로 집계된다.
여기서 인천은 81개로 약 6.21%를 차지한다.
경기도(304개), 서울(303개)에 이어 전국 세 번째로 많은 규모다.
문제는 인천에 있는 80여개 직장 어린이집 가운데 남동을 포함한 3개 국가산단에 위치한 곳은 남동 1곳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주안·부평산단처럼 중소기업이 밀집한 구조에서는 개별 기업에서 버거워한다면 산단 단위의 공동 보육시설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목소리에도 관련 정책과 인프라는 노동자들의 실제 생활 요구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회사 사장님도 그래요. 젊은 직원들 없어서 힘들다고. 근데 가만 보면요, 젊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지켜야 할 '아이'에 대한 고민은 이 산업단지에선 안 하는 거 같아요. 그것부터 해결해 줘야죠."

▲장면 열아홉. 차를 세울 곳이 없다.
주안산단 금속가공업체에 일하는 장민성(46·가명)씨는 지난 주말 아내와 테슬라 전시장에 다녀왔다.
키로수 20만 넘을 때까지 새 차 생각은 말라던 아내는 "기름값이 요새 금값이다", "테슬라가 가격을 내렸다", "캠핑 갈 때 요긴하다" 이런 얘기엔 꿈쩍도 않더니, "나 아침에 차에서 잘 때 에어컨, 히터 편하게 틀 수 있잖아" 이 말에 마음을 좀 열었다.
민성씨는 "출근 시간 맞춰서 회사 오면 하늘에 빌면서 와야 해요. 공장 근처 도로가는 이미 꽉 찼고 산단 외곽까지 빙빙 돌아야 하거든요. 저처럼 주차 때문에 머리 아픈 사람들은 진짜로 1시간 정도 일찍 와서 차에서 잔다니까요. 이거 농담 아니에요"라고 했다.
민성씨 이야기는 주안산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평산단 반도체 제조업체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조성빈(30)씨도 비슷한 문제를 짚었다. "불법주정차가 워낙 많고, 대형 자재 차량까지 수시로 드나들다 보니 접촉사고가 자주 나요. 도로를 넓히든, 주차공간을 확보하든, 갓길 차량만 정리돼도 상황은 많이 나아질 텐데 그러질 않네요"라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대 도로는 사실상 주차장처럼 변하고, 보행자와 차량이 뒤섞이는 장면이 반복된다. 주차 공간 부족이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교통 혼잡과 안전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산단의 주차난. 이 키워드는 사실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고리타분한 '결핍'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곳은 산단 관리 주체인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더해 인천시, 관할 구청까지 다양하다. 책임은 분산돼 있고, 개선은 더디다. 그 사이에서 노동자들은 오늘도 주차할 곳을 찾아 산단 이리저리를 빙빙 돌며 하루를 시작한다.
▲장면 스물. 머물 곳이 없다
미추홀구·서구·부평구 경계에 걸친 주안산단. 그 안에서도 풍경은 출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린다.
주안국가산단역 1번 출구 쪽으로 나서면, 한미반도체 공장이 연달아 들어서 있다. 공장만 7개. 사내 미니버스가 골목을 오가고, 흡연 부스와 축구장까지 갖춰진 모습은 하나의 작은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말이 공간으로 구현된 풍경이다.
길 하나를 건너 2번 출구 쪽으로 오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뿌리기업' 현판이 붙은 공장들이 이어지고, 간판 없는 식당 앞엔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식당 안 풍경은 단순하지 않다.
어두운 점퍼를 입은 남성들 사이로, 실험복 차림의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채운다.
한 테이블엔 남녀가 함께 앉아 있고,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이 골목에서 만난 오지영(49·가명)씨 역시 남녀가 섞인 동료들과 함께 6000원짜리 식판을 비우고 있었다.
싱크대 등 주방용 가구를 만드는 업체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그는, 주류회사와 수산물 도매를 거쳐 이곳에 자리 잡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코로나 직전인 2019년 입사해 위기를 버텨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새 제품이 잘 안 나가요. 다들 힘드니까 중고를 더 쓰죠."
길 건너편 공장이 몸집을 키우는 동안, 이 골목의 체감 경기는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다. 같은 산단 안에서도 산업의 온도는 나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딸을 키운 뒤에도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시간은 이어진다.
"부모님 병원비도 들고, 저희 노후도 준비해야죠. 그래서 계속 일하는 거예요."
그의 매일매일은 일과 가정 사이를 오가는 무게 위에 놓여 있다.
아이를 키워낸 뒤에도 부모를 돌봐야 하는 시간까지 이어지는 삶 속에서, 일터는 오래 머무는 공간이지만 충분히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산단은 애초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일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식판 같은 동선, 기능 위주로 짜인 시설들은 효율에는 익숙하지만 삶의 결을 담아내기에는 거칠다. 수산 일을 하던 시절, 바다가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이곳 역시 오래도록 남성 중심의 노동 방식과 감각 위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여성 노동자는 늘어났지만, 그들의 하루를 받아낼 수 있는 풍경은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산업단지가 여성 노동자에겐 특히 삭막하다는 말은 부평산단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식사와 휴식의 선택지가 좁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부평산단 통신업종에서 일하는 이현주(33)씨도 "구내식당이 편하긴 해도 식당이 다양하게 들어서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지금 직장 근처엔 식당이 몇 없어 300m 넘게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어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장면 스물하나. 국가산단은 사람을 쓰는 공간에 가까웠다. 품는 공간이 될 순 없을까.
<식판경제학>을 통해 남동, 부평, 주안 국가산업단지를 돌며 수십개의 식판을 마주했다.
그 위에는 고기반찬, 밥과 국처럼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이 산업단지가 버텨온 시간과 구조가 담겨 있었다.
남동에서는 30년을 버틴 숙련공의 굽은 등과 떠나간 청년들의 빈자리를 통해 '세대 단절'을 확인했고, 부평·주안에서는 아이를 맡길 곳 없어 새벽부터 서두르는 부모와, 주차 자리를 찾아 산단을 배회하는 노동자의 하루를 통해 '결핍'을 목격했다.
데이터는 이 장면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동국가산단 가동률은 고작 2년 만에 81.6%에서 73.9%로 떨어지며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숙련은 이어지지 못하고, 전통 산업의 기반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부평·주안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며 외형은 확장됐는데, 그 안은 더 잘게 쪼개진 영세 사업장들로 채워지고 있다.
수만명이 밀집한 공간에서 보육과 주차 같은 기본 인프라는 여전히 비어 있다.
"이 산업단지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지만,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구조는 함께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확인한 것은 이런 부정적인 장면들이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이 식판들을 이제 정치와 행정의 식탁 위로 올려놓는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시장과 남동·부평·미추홀·서구 기초단체장 후보들, 그리고 노후 산업단지의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 주체들에게 이 기록을 건넨다.
산업단지를 다시 설계하는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쓰이길 바라며.
/김원진·정혜리·홍준기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그래픽 이연선 기자 yonsony@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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