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명백한 산재 인정 못 받는 이주노동자

인천일보 2026. 4. 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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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아지트씨는 2021년 2월부터 10월까지 안성의 농업용품 제조공장에서 금속 표면을 깎는 작업을 했다. 분진이 심하게 날리는 환경에서 적절한 보호장비도 지급 받지 못한 그는 같은 해 11월 간질성 폐질환 판정을 받았다. 이듬해 초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무려 2년 3개월이나 끌다가 2024년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더욱이 산재 신청 8개월이 지난 뒤에야 현장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미 공장은 정비된 상태라 당시 작업환경과는 전혀 달랐다.

공단은 이 달라진 환경을 근거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지트 씨는 2024년 9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지정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금속분진 노출로 발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감정 의견을 냈다. 그러나 공단은 지난달 27일 3차 변론기일 직전에 호흡기내과 재감정을 요청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 사건은 산재보험 제도의 신뢰성과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첫째, 조사 지연과 증거 소실은 공단의 책임이다. 산재 신청 후 8개월이나 지나서야 현장조사를 진행한 탓에 당시 작업환경을 보여주는 증거는 이미 사라졌다. 그럼에도 공단은 이를 불승인 근거로 삼았다.

둘째, 재감정 신청의 시기와 방식은 공정성을 훼손한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의가 업무 관련성을 인정한 뒤에야 다른 진료과 감정을 요청한 것은 '유리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감정 쇼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감정 하나에 1년이 걸리는 현실에서 피해자는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버텨야 한다. 이는 산재보험 제도의 목적, 즉 신속하고 공정한 권리구제를 정면으로 위배한다.

셋째,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난다. 아지트 씨는 현재 G-1 비자로 체류 중이며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고 있다. 체류 불안과 경제적 부담이 겹쳐 사회적 취약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제도적 지연은 사실상 생존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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