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름 담보로 대출받은 주유소들 '문닫을 판'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이동인 기자(moveman@mk.co.kr) 2026. 4. 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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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최고가격제의 역설
대리점서 떼오던 기름 확 줄고
값싼 정유사 직영에 손님 뺏겨
기름 다 팔아도 대출상환 못해
장거리 화물차 많은 남부권
공급제한 피해 더 커질 우려

"8일 뒤면 대리점 기름을 담보로 받은 대출 4000만원 만기가 돌아오는데, 팔 기름이 없으니 갚을 방법이 없습니다."

경남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2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평소 판매하는 석유 제품의 절반은 정유사에서 직접 공급받고(자영 판매), 절반은 대리점을 통해 들여왔다. 그런데 지난달 13일 석유 제품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이후 대리점에서 들어오는 물량이 6분의 1로 급감했다.

A씨는 대리점을 통해 받는 현물 석유 제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제품을 판 돈으로 대출을 한 달 주기로 상환하는 신용보증기금 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현물이 들어오지 않으니 제품을 팔아서 대출을 갚을 수도, 신규로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어진 것이다. A씨는 "추가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파산할지도 모른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전남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B씨도 물량 절반은 자영에서, 절반은 대리점에서 공급받아 왔다. B씨는 "대리점 물량이 줄어들 것을 예상해 다른 대출을 받아놓았다"며 "대출 만기가 돌아올 때까지는 매출이 회복돼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리점을 통해 공급받는 물량이 줄어든 데는 최고가격제 영향이 크다는 게 주유소 업계 설명이다.

정유사를 통해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등 석유 제품이 공급되는 경로는 크게 직영 공급·자영 판매·대리점 판매 세 가지다. 직영 공급은 정유사들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주유소에 제품을 제공하는 유형이다. 자영 판매는 정유사가 점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며, 대리점 판매는 개인사업자인 대리점들이 정유사에서 제품을 떼와 자영 주유소에 판매하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통상 수요 이상으로 남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리점에 공급해 왔다. 대리점들은 여기에 일부 마진을 붙여 주유소들에 판매한다. 중동전쟁 이전에는 대리점을 통해 공급받는 제품 가격이 더 저렴해 전체 주유소 중 60%가량은 물량 일부를 대리점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석유관리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휘발유와 경유 전체 제품 중 직영 공급 비중은 5.2%, 자영 판매는 52.5%, 대리점 판매는 42.3%였다. 3월 들어 지난달 22일까지 이 비중은 직영이 10.3%, 자영 판매가 52%, 대리점 판매는 37.7%로 바뀌었다. 최고가격제가 시행되면서 우선 정유사들은 최종 판매되는 가격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기 위해 가격 컨트롤이 용이한 직영 주유소들로 제품 공급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들 역시 붙일 수 있는 마진이 제한적인 탓에 제품을 확보할 유인이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유사들은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직영 주유소 가격이 저렴해지다 보니 수요가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공급도 늘었다고 설명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직영 주유소 가격이 저렴해서 고객이 많이 몰리니 물량을 더 공급한 것"이라며 "공급 여건을 감안해 주유소 위주로 공급해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직영 주유소 비율이 10~20%밖에 되지 않아 소수 주유소에 소비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점이다. 대리점 물량에 크게 의존하는 주유소들은 주로 남부 지역에 몰려 있는데, 이들은 장거리 화물차 등에 석유 제품을 많이 공급한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이나 업종에 석유 제품 공급 제한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씨처럼 대리점 물량과 연계된 보증기금 대출 상품을 이용해 오던 주유소 200여 곳은 자금난을 겪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정유사를 통해 자영 판매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데 녹록지 않다"며 "정유사들도 매점매석 제한으로 대리점이나 주유소 공급 물량을 전년 대비 115% 이상 늘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거래 대상이 기존 대리점에서 정유사로 바뀌면 보증기금 대출 연장이 제한된다"고 덧붙였다.

[강인선 기자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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