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김기민 “‘볼레로’는 오랜 꿈, 200% 준비됐다”
4월 23~26일 GS아트센터서 공연
“음표 하나가 우주 너머에서 물방울처럼 툭 떨어져 제 손끝을 끌어올리는 기분이에요.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기쁘게 죽으러 가는구나’라고 느끼죠.”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기민(34)이 꿈의 무대를 품고 고국을 찾는다. 오는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베자르 발레 로잔(Béjart Ballet Lausanne·BBL) 내한 공연에서 그는 전설적인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걸작 ‘볼레로’ 주역을 맡았다. 한국인 무용수가 이 작품의 주역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에서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 마지막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BBL은 베자르가 창단한 이후 혁신적인 발레 언어로 현대 무용의 지형을 바꿔온 단체다. 전통적인 테크닉 위에 강렬한 표현력과 철학을 더하며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해왔다. 이번 내한은 2011년 대전 공연 이후 15년만, 서울 공연으로는 2001년 이후 25년 만이다. 무엇보다 김기민의 합류 소식만으로 발레 팬들의 폭발적인 기대를 모으며 일찌감치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볼레로’는 김기민에게도 각별한 작품이다. 그는 7~8년 전부터 무대를 찾아 나섰지만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생에는 못 할 수도 있겠다”며 마음을 접어두던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학창 시절 스승인 블라디미르 김과 함께 전설적인 무용수 조르주 돈의 ‘볼레로’를 보며 꿈을 키웠다”며 “제 꿈이자 스승의 꿈이기도 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모리스 베자르 예술 세계의 정수로 꼽히는 ‘볼레로’는 라벨의 음악 위에서 완성된다. 무대 중앙의 붉은 원형 탁자 위에 선 무용수가 ‘선율(라 멜로디)’이 되고, 이를 둘러싼 군무가 ‘리듬’으로 결합해 점점 거대한 에너지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베자르 특유의 집단성과 의식이 집약된 작품으로 서사가 없는 구조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객석까지 끌어들이는 집단적 몰입으로 확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클래식의 정점이라 불리는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활동해온 그에게 베자르의 현대적 몸짓이 충돌되는 지점이 없었는지 묻자 그는 “힘들고 어렵지만 몸에 잘 맞는 느낌”이라며 스위스 로잔에서의 진행된 리허설 중 줄리앙 파브르 예술감독으로부터 받은 디렉션을 떠올렸다. “감독님이 그러시더군요. ‘테이블 아래의 모든 군무진은 너처럼 죽고 싶어 열망하는 사람들이다. 너는 그들의 아이돌이다’라고요.”
이어 “이 춤은 단순한 동작의 나열이 아니라 베자르 발레단만이 전수해 온 ‘비밀의 열쇠’를 풀어야 완성된다”며 “그 열쇠를 하나씩 풀어가며 그 안에 ‘김기민’이라는 이름을 새겨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누군가는 했을 춤이고 중요한 건 그 이후”라며 “이번 공연을 계기로 베자르 발레단이 한국을 더 자주 찾고, 더 많은 교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11년 동양인 최초로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해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활약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한국 발레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무용수로서의 책임감과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특히 입시 중심 교육 속에서 ‘잘해 보이는 기술’에 치중한 결과, 실제 무대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경우를 우려했다.
동시에 “한국의 발레 교육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하며 “신체적 한계에 좌절하기보다 전체적인 조화로움, 한국 발레가 가진 아카데믹한 기본기를 믿고 자부심을 가져달라”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을 위한 관전 포인트를 묻자 그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포인트는 없습니다. 그냥 오세요.”
“예술을 ‘한 달 만에 영어 마스터하기’ 같은 족집게 과외 식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해요. 지식이 없어도 무관합니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집단적 에너지를 그대로 느끼시면 됩니다. 저는 이미 200%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소름 돋는 전율을 함께 느끼시면 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볼레로’를 비롯해 베자르의 대표작 ‘불새’, 아시아 초연작인 ‘햄릿’과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 등 현대 발레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다채로운 레퍼토리가 무대에 오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한국을 찾은 베자르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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