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의자…건축이 되다

이정민 2026. 4. 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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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서거 100주년…가우디의 '작은 건축'
안토니 가우디가 카사 바트요를 위해 디자인한 의자.

2026년은 안토니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해’라는 이름 아래 전시와 학술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세계 디자인계 역시 그의 건축을 재조명하고 있다. 140년 넘게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 성당)도 올해 본관 구조물을 완공한다. 그 중심에 다소 의외의 대상이 있다. 바로 가우디의 가구다.

가우디는 통상 위대한 건축가로 기억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처럼 자유로운 상상력과 자연의 아름다운 구조가 결합한 그의 건축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이 됐다. 그의 이름은 곧 건축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그러나 디자인 역사에서 그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가우디는 건축과 가구, 공간과 신체를 하나의 구조로 통합하려고 한 최초의 디자이너다.

가우디에게 가구는 단순한 실내장식 요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건축이 인간의 몸과 만나는 가장 직접적인 접점이었다. 그가 제작한 의자 등받이는 척추 곡선을 따랐고, 좌석은 몸의 하중을 반영해 넓어졌으며, 문손잡이는 손의 움직임에서 형태를 얻었다. 가우디에게 건축, 공간, 가구 그리고 신체는 하나의 연속된 구조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가우디의 가구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과거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형태는 몸을 따르는가, 어떻게 공간은 인간을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디자인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가우디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디자인이 인체공학, 유기적 형태, 공간과 오브제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한 세기 전 같은 질문을 던진 한 건축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놀랍게도 그가 남긴 가장 작은 건축, 의자 속에 남아 있다

 자연의 곡선에 지독한 탐닉…인간의 몸에 건축 입힌 가우디
 가우디 건축학 결정체 의자

가우디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 당대 스페인 카탈루냐를 휩쓴 예술 사조 ‘카탈루냐 모데르니스모’를 빼놓을 수 없다. 아르누보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카탈루냐의 정체성을 강조한 이 흐름은 자연에서 비롯된 유기적인 곡선과 장식성, 그리고 수공예적 전통의 부활을 핵심으로 한다. 안토니 가우디는 이 사조의 중심에서 건축을 하나의 ‘총체적 예술’로 확장했다.

이런 시각에서 그의 건축을 바라보면 물결처럼 흐르는 파사드(외관)와 유기적인 발코니, 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 타일 장식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가우디 건축의 정수를 접하기 위해 반드시 실내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하중을 분산하며 빛을 부드럽게 확산시키는 천장의 곡선, 환기와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창문의 비례, 손의 움직임을 따른 문고리의 촉감까지 어느 하나 우연히 만들어진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1) 칼베트 의자 (2) 바트요 벤치 (3) 칼베트 암체어 (4) 칼베트 스툴


가구도 마찬가지다. 가우디는 건물을 설계할 때 이미 그 공간에 놓일 의자와 테이블 등 가구를 사용자의 체형까지 고려해 구상했다. 그에게 가구는 실내를 채우는 소품이 아니라 건축의 구조와 논리를 공유하는 또 하나의 공간 요소였다. 가우디의 공간 감각은 그의 어린 시절과 깊이 연결돼 있다. 가우디의 아버지는 구리 용기와 보일러를 제작하는 대장장이이자 금속 장인이었다. 공방에서 평면의 금속판을 두드리고 구부려 변형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가우디는 훗날 “나는 공간 감각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디자인의 원리 측면에서 가우디가 탐구한 것은 ‘장식’이 아니라 ‘구조적 진실’이었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신념을 가구에도 적용했고, 점토와 석고를 이용해 신체 구조를 연구했다. 의자에서 좌석의 곡선과 등받이의 기울기는 장식이 아니라 척추와 골반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적 해법이었다. 주로 참나무를 사용하고, 못과 나사를 최소화한 채 목재의 결을 따라 이어지는 접합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그의 가구는 마치 하나의 나무에서 자라난 듯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결국 가우디에게 가구란 공간이라는 거대한 조각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으며, 거주자가 건축의 철학을 몸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통로였다.

절제된 우아함, 카사 칼베트 의자

가우디의 건축적 사고를 가구로 구체화한 초기 사례는 ‘카사 칼베트’에서 볼 수 있다. 1898년 완공된 이 건물은 바르셀로나의 섬유 사업가 페레 마르티르 칼베트를 위해 설계한 것으로, 가우디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절제된 형태를 지닌 건축으로 평가받는다. 가우디는 카사 칼베트를 위해 의자, 암체어, 스툴로 구성된 하나의 가구 세트를 디자인했다. 그중 칼베트 의자는 얼핏 단정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띠지만, 자세히 보면 직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다리꼴 형태의 등받이에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조각적 디테일이 더해져 있으며, 좌석은 체중이 실리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가느다란 다리는 손을 뻗는 듯한 곡선으로 이어지는데, 특히 등받이 하단의 장식적 구멍은 허리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한 기능적 장치다.

칼베트 암체어는 두툼한 지지대와 아치형 팔걸이, 하트 모양의 등받이가 결합된 보다 조형적인 형태가 돋보인다. 이 암체어는 5개 파트를 정교하게 맞물려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완성했다.

직선을 거부한 건축, 카사 바트요 의자

1904년 시작된 ‘카사 바트요’ 프로젝트에서 가우디의 건축은 한층 더 급진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이 건물은 종종 ‘뼈의 집’이라고도 불린다. 발코니는 해골을 연상시키고, 기둥은 동물의 골격처럼 보이며, 물결치는 지붕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등뼈를 닮았다. 자연의 구조와 상상력이 결합된 이 건축은 가우디 디자인 세계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실내 공간과 가구에서도 이어진다. 1906년 완공된 카사 바트요의 다이닝 룸을 위해 디자인한 바트요 의자는 가우디 가구 가운데 가장 유기적인 형태를 지닌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인체의 골격이나 식물의 줄기처럼 모든 요소가 부드럽게 휘어지고 비틀리며 연결된다. 양옆으로 펼쳐진 등받이는 어깨와 등을 감싸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좌석은 인체의 굴곡을 따라 부드럽게 파여 있다. 전체 구조는 건물의 물결치는 파사드와 유기적으로 호응한다. 카사 바트요 건물 자체가 성 게오르기우스의 용 퇴치 서사를 담고 있듯, 이 의자 역시 뼈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통해 건축 전체의 상징적 언어와 연결된다.

이 의자와 관련해 전해지는 일화도 있다. 가우디는 집주인에게 “집에 남자가 많은가, 여자가 많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남성과 여성의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른 의자를 디자인하려 한 것. 그러나 가족이 이를 원치 않자 결국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의자, 오늘날 말하는 ‘유니섹스 디자인’을 선택했다. 이는 그가 형태 이전에 ‘사용자의 신체’를 먼저 고려한 디자이너였음을 보여준다.

가우디 가구의 부활

가우디의 가구는 오랫동안 그의 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대부분 특정 건축물을 위해 제작한 것이고, 공간과 분리된 독립적인 디자인 작품으로 유통된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의자와 벤치들은 오랫동안 카사 바트요나 카사 칼베트 같은 건축 안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가우디 가구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디자인 역사 속으로 끌어낸 건 스페인의 디자인 회사 BD바르셀로나다. 이 회사는 1975년부터 가우디 가구를 재현하며 그의 디자인을 현대 디자인 컬렉션의 일부로 복원하기 시작했다. BD바르셀로나는 가우디 가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작 방식까지 계승하는 데 집중한다. 가우디가 설계한 곡선은 산업적 방식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지닌다. 막스 뒤아르 BD바르셀로나 아트 에디션 디렉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이며, 나무를 다루는 방식과 재료의 촉감은 장인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이 가구들은 오늘날에도 바르셀로나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제작하며, 작품마다 번호와 인증이 부여된다. 형태의 기하학을 분석하고 구조를 해부하는 데는 디지털 기술을 쓰지만, 제작 단계에선 여전히 인간의 손이 중심에 있다. 기술과 장인 정신이 공존하는 영역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의 디자인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인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가구들이 건축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새로운 방식으로 읽히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가우디의 가구는 독립적인 오브제로 제시되며 예술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면서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가우디의 가구는 여전히 인간의 몸과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이며, 건축적 사고가 가장 응축된 형태다. 의자에 앉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가구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 속에 놓이게 된다.

이정민 아르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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