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울진 매화리 황춘섭 이장…“마을을 바꾼 건 사람입니다”

김형소 기자 2026. 4. 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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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서 시작된 공동체…주민 손으로 만든 변화
“혼자가 아닌 우리 힘”…속도보다 사람을 택한 마을
▲ 황춘섭 매화마을 이장. 김형소 기자

울진군 매화리에 60여년 뿌리내린 황춘섭 이장은 마을을 변화시킨 사람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주민들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골 동네는 젊은 세대가 빠져나가면서 쇄퇴해졌다. 그러나 조용했던 골목은 이제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으로 변했다. 세월에 바랜 담벼락은 벽화로 채워졌고, 집집마다 걸린 꽃 화분은 계절을 알린다. 그 변화의 본질은 그림이나 꽃이 아니라 '사람'이다.

△꽃 한 송이에서 시작된 공동체

처음 페트병 2000개를 모아 꽃을 심었을 때, 마을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주민들이 스스로 꽃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옆집 꽃은 피는데 우리 집 꽃은 시들어 있으면 가만있지 못하죠.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 매화마을의 벽화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손님이 오면 인사를 건네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졌다. 황 이장은 "마을이 변했다기보다 주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또 "변화는 조금은 답답하지만, 스스로 천천히 조금씩 마음이 움직여야 비로써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화 거리도 '함께' 만든 공간

이현세 작가를 설득해 조성한 만화 거리 역시 개인의 결단만으로 이뤄진 일은 아니었다. 주민들의 동의와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벽화를 그릴 때도, 관광객이 늘었을 때도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해 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매화마을이 있는 겁니다."

방송에 소개되고 외지인이 찾아오면서 마을은 활기를 띠었지만, 황 이장은 늘 '주민의 속도'를 먼저 생각했다.

"마을이 사람보다 앞서가면 안 됩니다."

▲ 매화만화마을전시관

△실패도 다음 걸음의 밑거름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결과도 있었다. 웹툰 영화제는 당초 매화마을에서 개최하려 했지만, 경상북도 사업으로 전환되며 타 지역에서 열리게 됐다.

"외부 여건 때문이라기보다, 예산 확보나 행정적인 부분도 결국 저희 몫이었는데 그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를 실패로 보지 않는다.

"아쉬움은 남지만, 다음 걸음을 더 단단히 내딛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준비하려 합니다."

△사람 냄새나는 마을

그가 꿈꾸는 매화마을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다.

"주민들이 먼저 인사하고, 손님이 오면 따뜻하게 맞이하는 곳. 그런 사람이 중심이 되는 마을이었으면 합니다."

그는 특히 어르신들이 작은 수입이라도 얻으며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를 바란다.

"마을 일이 곧 생활이 되고, 웃음이 되는 구조. 그게 진짜 변화 아닐까요."

▲ 황춘섭 이장(왼쪽 첫번째)이 마을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만화거리 그 이후의 꿈

황 이장은 잠시 생각한 뒤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마을의 빈집들을 복원해 '옛집'이라는 이름의 만화 공간으로 조성하고 싶습니다. 만화와 어울리는 아날로그적인 공간을 만들고, 여건이 된다면 게스트하우스로도 활용해 보고 싶습니다."

그는 마을의 오래된 집들이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바라본다. 누군가 머물 수 있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장소로 바꾸는 것이 그의 다음 구상이다.

또 한때는 마을 경관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드라마 촬영 제안도 들어왔었다.

"코로나로 결국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많이 아쉬웠죠. 하지만 다음에 비슷한 기회가 온다면 꼭 실현하고 싶습니다."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그 과정 자체가 마을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더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제가 활동하면서 이룬 결과는 혼자 만든 게 아닙니다. 주민들이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협조해 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앞으로도 혼자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마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매화마을은 거창한 개발 논리로 성장한 공간이 아니다. 한 사람의 열정이 불씨가 되었고, 주민들의 마음이 모여 불꽃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불빛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따뜻하게 이어지고 있다.

매화마을은 지금도 거창하게 변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사람 냄새나는 마을'로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