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냐?”

기호일보 2026. 4. 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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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유머화술(김진배)에 한 선비가 조선 숙종 임금의 따귀를 때린 이야기가 나온다.

숙종이 민정을 살피러 평복차림으로 저잣거리에 나섰는데 남루한 모습의 한 선비가 당황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매우 다를 것이다.

그것을 보는 막사이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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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전 인하대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전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매직 유머화술」(김진배)에 한 선비가 조선 숙종 임금의 따귀를 때린 이야기가 나온다. 숙종이 민정을 살피러 평복차림으로 저잣거리에 나섰는데 남루한 모습의 한 선비가 당황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숙종이 사연을 묻자 그는 시골에서 벼슬하러 올라왔지만 낙방하고 노자까지 떨어져 어떻게 하나 궁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숙종은 아무 벼슬이라고 주어지면 하겠냐고 물으니 그는 "시켜준다면야 얼마든지 하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군수, 판서 자리까지 제안했더니 그가 하겠다고 하자 이번엔 "그럼 임금 자리를 주면 그것도 하실 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가 갑자기 숙종의 뺨을 치며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야 이런 후레자식 놈아! 나보고 역적질을 하란 말이냐? 이런 천하에 못된 놈 같으니."

뺨은 맞았지만 이 선비의 행동에 숙종은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 믿음이 갔겠지. 그래서 그런지 책에서는 숙종이 그를 위채 특별과거까지 열어 급제시킨 후 정승의 반열까지 높여주었다고 한다.

당시 선비들은 임금 자리까지 탐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는 자기가 앉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앉을 자리를 명확히 아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사례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에도 나온다. 저자는 예수회 신부인 앤소니 드멜로가 들려준 우화를 전해준다.

어느 여인이 중병에 걸려 생사를 헤매는데 아득한 먼 곳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그러자 그녀는 "저는 쿠퍼 부인으로 이 시의 시장 아내"라고 말했다. "나는 너의 이름이나 남편에 대해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라고 재차 물었다. "저는 사랑하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또 "나는 누구의 엄마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니 "저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너의 직업을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하니 "저는 기독교인이고 남편을 잘 내조했습니다"고 답했다. "나는 너의 종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그 여인은 알 수 없는 음성과의 대화 후 병에서 회복됐고 그 후에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매우 다를 것이다. 전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임금의 뺨까지 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의 좋은 사례로 필리핀의 전 대통령 막사이사이를 들 수 있다. 교통단속에 걸린 그에게 경찰이 운전면허증을 요구하자 그는 옷을 갈아입느라 잊었다며 사과했다. 이름과 직업을 말해달라는 경찰에게 그는 "나는 막사이사이이고 직업은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경찰은 놀라며 부동자세를 취하고는 "제가 미처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각하께서는 교통규칙을 위반하셨으니 법에 따라 정해진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벌금 고지서를 건넸다.(「유머와 화술」, 이득형)

그것을 보는 막사이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고 한다. 물론 벌금도 냈다. 그런데 이 소식이 신문에 보도돼 알려지자 시민들은 오히려 감동했다. 그런 대통령이었기에 돌아가신 후 그의 업적을 추모하는 뜻으로 제정한 막사이사이상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전자만이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은 생사를 오가던 여인에게 건강을 되찾게 해준 질문 즉 '너는 누구냐?'에 대한 깊은 사색과 통찰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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