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피로 물들어도 아프지 않아”…뜨거운 열일곱의 선율 [인터뷰]

고승희 2026. 4. 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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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예종 입학한 첼리스트 이재리
우연처럼 시작한 첼로, 이젠 필연이 돼
“경험 못한 감동 주는 연주자가 되고파”
열일곱 살 첼리스트 이재리는 올해 26학번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생이 되니 제 연주에 더 책임감이 생겨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엘프처럼 새하얀 피부, 청록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 첼리스트는 내내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콩쿠르 무대에서 클로즈업됐다. K-팝 걸그룹의 ‘엔딩 요정’도 아닌데,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한 편의 서사 그 자체였다.

곡이 종지를 향해갈 때였다. 지판 위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이질적 색채가 스며 나왔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 손톱 사이에서 번지던 붉은 피는 연주가 격정적 피날레를 향해가자 선명해졌다. 생중계 화면을 가득 채운 선혈과 지판 위의 어렴풋한 얼룩을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가 숨죽여 지켜봤다. 이미 유수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팬까지 생긴 ‘스타 연주자’는 또 하나의 전설을 완성했다. 이 콩쿠르에서 첼리스트 이재리(17)는 2위와 박성용 영재 특별상을 받았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첼리스트 한재민이 받은 바로 그 상이다.

“정작 연주하는 동안엔 통증이 느껴지진 않았어요. 음….”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무대에서의 이재리 [유튜브 생중계 캡처]

이재리는 마음이 복잡한 듯 말을 골랐다. 쇤벨트 국제 콩쿠르에서의 우승 이후 다시 도전한 무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콩쿠르 무대에서의 ‘부상 투혼’이었으나, 어린 연주자는 세상의 찬사 대신 스스로에게 채찍을 들었다. 그는 “연주하다 보니 손의 한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음악에만 집중했는데, (당시) 살짝 따갑긴 했다”며 그제야 웃었다. 음악 앞에 서는 ‘태도’까지 증명한 순간이었다.

2009년생, Z세대(1990~2000년 중반에 태어난 세대)와 알파 세대(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 사이. 5세대 걸그룹의 평균 나이보다도 어리고, 멤버라 해도 이질감이 없는 비주얼. 말간 얼굴로 걸어들어와 인사를 건네는 이재리는 온몸으로 수줍음을 발산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작았다. MBTI는 ISTP. 실제로도 “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이 많다”고 한다. 담대한 연주와 음악 속에 푹 빠져든 황홀경의 순간을 만드는 무대와는 영 딴판이다. 그래도 “이젠 대학생이니 이런 성격을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며 웃는다.

겨우 열일곱이지만, 그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26학번 신입생이 됐다. 학교에서도 단연 막내 라인이다. 엄격한 학사 일정과 쏟아지는 연주 요청 사이에서 학업과 공연을 병행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면 봄날을 즐겼겠지만, 이재리의 머릿속은 온통 음악 생각뿐이다. 소녀 첼리스트가 만들어내는 무대 위의 세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재리는 “대학생이 돼 선배들과 생활하다 보니 더 성숙하게 행동하려 노력하고, 연주에서도 더 깊게 고민하는 것 같다”며 “내 연주에 더 책임감이 생겨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신동, 영재로 불리지만 이재리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활동을 좋아해 실내악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대단하고 잘하는 분들과 함께 할 때 나도 연주자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상섭 기자
신동의 등장, 우연이 빚은 필연

이재리는 가는 곳마다 화제의 중심이었다. 윤이상 국제 음악 콩쿠르 이전, 이미 중국은 그에게 열광했다. 하얼빈에서 열린 세계적인 콩쿠르인 쇤펠트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 ‘우승 레이스’를 이어가는 동안 ‘이짜이리’를 부르는 팬덤이 만들어졌다.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인 시시 예 쇤펠트 국제 현악 콩쿠르 대표는 “유튜브 중계와 인스타그램 소개, 인터뷰 영상 등이 확산하며 인기가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영락없는 Z세대의 외형 뒤엔 지극히 ‘고전적인 심장’이 뛰고 있었다. 소녀 첼리스트는 지독할 만큼 예술가적 근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쉽게 만족할 줄 모르고, 만족이 될 때까지 첼로를 놓지 않는다. 그는 “시간을 정해두는 건 아니지만,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연습한다”며 “대략 3~4시간 정도는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첼로는 우연처럼 찾아온 ‘필연’이었다. 해금을 전공한 어머니를 뒀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은 모두가 ‘DNA’ 덕분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친구가 첼로를 연주하는 것이 재밌어 보여 호기심에 잡게 된 악기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무대에서의 이재리 [유튜브 캡처]

‘신동의 삶’은 늘 그렇듯 한 끗이 다르다. 첼로를 배운 지 두 달 만에 첫 스승은 ‘전공’을 권했다. 부랴부랴 ‘첼로 선생님’을 수소문하다 첼리스트 이정란을 만나게 됐다. 그렇게 만난 이정란은 이재리의 길을 연 ‘결정적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스스로 첼리스트의 길을 가고 싶다는 확신을 하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한국예술종합영재원에 다니면서다. 그는 “친구들과 경쟁도 해보니, 생각보다 자극이 되고 잘 맞았다”며 “그때부터 욕심이 생겼다”고 돌아봤다.

나의 색깔, 나의 소리 찾기

엄지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메시지를 보낼 줄 아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나, 연주 전엔 휴대폰을 멀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세계와는 단절한다. 오직 악보와 소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연습하며 저만의 것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연습할 때, 제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가장 큰 행복이에요. 음악 안에서의 자유로움과 정교한 테크닉, 파워풀하면서도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가 어우러졌을 때 저만의 색깔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스승인 이강호 교수는 이재리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재리는 “선생님이 내 음악을 믿어주기에 나 역시 나를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며 “내 음악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나이다. 원하는 음악을 만들고,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결합하면 나만의 음악적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첼리스트 이재리는 “연습할 때, 제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다. 이상섭 기자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은 “피지컬을 능가하는 힘”이다. “단단하면서도 내성적인 소리”를 선호하는 이재리에게 힘 있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표현의 밀도를 높여주는 강력한 무기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영재’, ‘신동’이라는 수사는 이재리에게도 부담이자 동력이다. 그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 좋은 연주를 차근차근 쌓을 수 있는 것은 최고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과정을 거쳐 내 생각들이 음악으로 나오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겐 너무도 엄격하다. 음악에 한해서는 만족할 줄 모른다.

“100%를 준비해도 70%밖에 하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아직 제게 만족하는 무대는 없어요. 아직은 보여드릴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도 커요.”

‘대학생 연주자’가 된 이재리는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린 나이는 무한한 가능성이나, 그는 “지금 나이라서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첼리스트 이재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사랑의 감정을 아직 제대로 느껴 보지 않아 그런 깊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조금 한계를 느껴요. 영화나 드라마, 책 같은 간접 경험을 통해 많이 상상해서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조금 더 성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런 감정들을 상상이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베토벤이나 라흐마니노프 같은 곡들이요.”

‘핫하다’는 음악은 휴대폰 안에 모조리 들어있고, ‘두쫀쿠’는 진작에 먹어 이젠 사양이며, K-팝 그룹은 웬만하면 다 안다는 10대 소녀다. 그에게 음악가의 길은 험난하다. 첼로를 처음 시작할 땐 지금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어느덧 여섯 살에 잡은 첼로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신체의 일부가 됐다.

“어렸을 때는 종종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좋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흐려지더라고요. 결국엔 음악가가 될 운명인가 봐요.”

첼리스트 이재리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10년 전의 꼬마 이재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첼로도 좋지만 첼로 외적인 경험도 중요하니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소녀 첼리스트의 시선은 다시 먼 곳을 향한다. 10년 후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먼저 협업을 제안하는 연주자를 꿈꾼다.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연주자로 서고 싶은 마음이다. 오는 3일 서게 될 앙상블 오푸스 공연(예술의전당)에선 ‘실내악 장인’들과 한 무대에 선다.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타케자와 쿄코, 비올리스트 김상진, 그리고 스승인 첼리스트 이정란도 함께 한다. 이재리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활동을 좋아해 실내악을 좋아한다”며 “이렇게 대단하고 잘하는 분들과 함께 할 때 나도 연주자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먼 훗날 사람들이 저를 떠올릴 때 또다시 연주를 들어보고 싶고,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감동을 주는 연주자라고 기억되면 좋겠어요. 이건 AI(인공지능)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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