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판결문으로 본 정교유착② "저희가 작업중이에요"

조성식 전문위원 (조성식의 훅 대표기자) 2026. 4. 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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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씨에 대한 항소심(서울고법 형사15-2부) 선고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1심 판결문 전문(189쪽)을 입수해 정밀 분석했다. 주요 내용이 부분적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전문이 공개된 적은 없다. 이중 통일교 관련 내용은 정교유착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판결문은 한 종교단체가 국가권력의 심장부에 어떻게 침투했는지, 그리고 권력의 핵심부에 가장 가까이 있던 한 사람이 어떻게 그 침투의 통로가 되었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했다. 종교가 어디까지 일탈할 수 있는지, 그리고 권력이 얼마나 쉽게 부패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주요 내용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재구성해 1편과 2편으로 나눠 공개한다. 판결문 표기대로 인물 존칭은 생략했다. <편집자 주>

통일교 금품 수수 사건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건진법사’ 전성배와 김건희의 특별한 관계다. 2022년 4월 23일 전성배가 김건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윤영호 본부장이 취임식 전에 여사님께 큰일을 상의할 것이 있다고 뵙기를 요청하는데 비밀리에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 역대 어느 정권이든 종교 쪽은 사고가 없으니 큰일을 도모하는 것도 좋을 듯하니 생각해 보고 답을 줘.’

4월 30일에는 김건희를 만나고 싶다는 윤영호의 문자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윤영호 본부장이 UN 한국 유치 문제를 의논하고 싶은가 봐’라고 덧붙였다. 평소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말투다. 법원은 이 일련의 문자 교환을 통해 김건희가 청탁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됐다며 이를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통일교 종교시설 ‘천원궁’의 모습.

“통일교 청탁 인식했다”

법원이 인정한 세 번째 금품 수수는 2022년 7월 29일에 이뤄졌다. 7월 15일 김건희와 통화한 윤영호는 다음날 정원주(전 통일교 총재 비서실장)가 배석한 자리에서 한학자에게 통화 내용을 보고하고 목걸이 선물 계획을 승인받았다. 7월 29일 전성배는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 내 식당에서 윤영호로부터 6,220만 원 상당의 영국제 명품 목걸이 그라프(GRAFF)를 건네받았다. 정식 제품명은 ‘클래식 버터플라이 싱글 모티브 페어 쉐이프 다이아몬드 드롭 펜던트’다. 윤영호가 부인 이OO를 통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구매한 제품이었다. 이OO는 당시 통일교 재정국장을 맡고 있었다.

목걸이 수수에 따른 청탁은, 통일교가 추진하는 국제행사 ‘서밋 2022 & 리더십 콘퍼런스’에 아프리카 청년부 장관 25명 등 60명이 방한하는데 교육부 장관 예방을 주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전성배의 처남 김OO는 다음날인 7월 30일, 이전에 샤넬 가방을 전달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크로비스타로 가서 유경옥에게 목걸이가 든 쇼핑백을 건넸다.

피고인 측은 이에 대해 2022년 4월과 7월 샤넬 가방 등을 두 번 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청탁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설사 청탁이 있었더라도 청탁 내용에 비해 금품 가액이 너무 작아 대가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폈다. 게다가 목걸이는 아예 받은 적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재판부는 첫 번째 알선수재 혐의(802만 원 상당 샤넬 가방 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2022년 3월 30일 김건희와 윤영호의 통화에서 “대선을 도와줘서 고맙다”(김)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윤)는 취지의 대화가 오갔으나 청탁 내용은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김건희는 가방을 받은 지 2주쯤 지난 4월 23일부터 전성배가 보내준 문자 등을 통해 청탁 내용을 인식하게 됐기에 청탁을 전제로 금품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1,271만 원 상당 샤넬 가방 등)와 세 번째(6,220만 원 상당 그라프 목걸이)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는 청탁 인식과 알선 의사가 있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목걸이는 안 받았다”

재판부는 7월 5일 두 번째로 샤넬 가방이 전달될 때는 김건희가 전성배와의 문자와 통화 등을 통해 통일교 측의 민원을 인식했다고 봤다. 즉 통일교가 원하는 UN 제5사무국 유치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전성배에게서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김건희가 윤영호와 통화하면서 “늘 그렇게 해주셨던 것처럼 좀 힘이 되어 주시면 저희가 여러 가지로 지금 많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나 문화 여러 가지가... 이제 이런 많은 업적이 훼손되지 말아야 되잖아요?”라고 말한 것은 통일교의 청탁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알선 의사로 봐야 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금품 액수와 청탁 실현 비용(정부의 ODA 지원금 등)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해서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그라프 목걸이 수수 여부는 항소심 쟁점 중 하나다. 피고인 측은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통일교로부터 그라프 목걸이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선물이 실제 전달되지 않았을 ‘배달사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을 보면, 샤넬 가방 수수 때와는 다른 정황이 있기는 하다.

2022년 8월 1일, 윤영호는 전성배에게 ‘여사님 선물은 괜찮으신지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전성배는 윤영호에게 ‘여사님이 큰 선물이라 놀라셨지만 별다른 말씀은 없어요. 내용 주신 거 그대로 보냈으니 알아보시고 답을 주실 텐데 아직은 없네요’라고 답신했다. 8월 5일, 윤영호가 ‘일전에 여사님께 드렸던 선물의 개런티 카드가 나왔는데 어떻게 전해드릴런지요’라는 문자를 보내자 전성배는 ‘당분간은 조심해야 될 듯요’라고 답했다.

두 사람 간 오간 문자에 비춰보면, 김건희가 샤넬 가방 수수 때와는 달리 통일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교 민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데다 윤영호에게 문자나 통화 등의 방법으로 선물에 대한 감사의 뜻도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김건희 주장이 거짓이라면, 선물만 받고 청탁은 들어주지 않은 셈이다. 사실이라면, 배달사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심 재판부는 9가지 정황증거를 내세워 피고인 측 주장을 배척했다. ▲윤영호가 김건희에게 직접 연락해 수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에 중간에서 착복하기가 어려운 점 ▲2013년부터 김건희와 매우 가까운 사이인 전성배가 양측을 중개하는 일만으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김건희와의 신뢰가 깨질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 ▲전성배가 나중에 김건희로부터 가방과 구두, 목걸이를 돌려받아 자기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 ▲전성배가 수사기관에서 목걸이를 김건희에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은 김건희의 사주 때문으로 보인다는 점 등이다.

재판부는 목걸이가 전달된 날 전성배가 윤영호로부터 받은 청탁성 문자를 그대로 텔레그램을 통해 김건희에게 전달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처럼 청탁을 인식한 상태에서 다음날 목걸이를 받았기에 금품과 알선 행위 사이에 대가관계가 인정된다는 게 재판부 논리다. 재판부는 윤영호의 교육부 장관 예방 청탁은 김건희의 알선 없이 권성동의 도움으로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알선수재는 실제로 알선했는지와 관계없이 성립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9월 17일 김건희 특검에 출석하는 통일교 한학재 총재의 모습.

공익을 가장한 사익 추구

이번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국가 외교정책이 종교기관의 청탁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UN 제5사무국 유치, 아프리카 ODA 규모 확대, 캄보디아 EDCF 차관 제공, 한-캄 우정의 다리 사업 지원 등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고 국가 신인도와 관련된 공적 정책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윤영호가 2022년 3월 22일 윤석열 당선인을 한 시간 독대한 자리에서 이 같은 사업들의 국가정책화를 요청했고, 청탁의 일부는 실제로 정책에 반영됐다.

종교가 선거에 직접 개입하고, 자신들이 지원한 후보가 당선된 후 국가 예산과 외교정책을 청탁 대상으로 삼아 고가 명품을 건넨 행위는 신앙의 이름을 빌린 종교권력의 부패다. 통일교가 추진한 각종 국제사업은 언뜻 공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에는 통일교의 조직적 이해관계와 재정적 이익이 있었다. 통일교는 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배우자를 통한 국정 개입을 시도했다. 공익을 가장한 종교의 사익 추구, 그것이 법원이 인정한 정교유착의 실체였다.

뉴스타파 조성식 전문위원 (조성식의 훅 대표기자) bluein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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