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주 "ChatGPT는 내 동료"…1인 다역 비결 공개

2026. 4. 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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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업실에는 보이지 않는 동료가 있습니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름까지 밝혔다.

‘도민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오는 인물이다. 400년을 살며 모든 것을 알고,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는 존재다.

“그 느낌이랑 비슷합니다. 늘 곁에 있고, 뭘 물어도 답을 주는…”

그가 말한 동료는 인공지능 ChatGPT다.

팝페라 테너와 AI의 콜라보?

조금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다. 무대 위에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부르던 성악가와 AI라니.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의 임형주는 애초에 한 가지 틀로 묶이는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팝페라 테너, 칼럼니스트, 교수, 공연 기획자, 그리고 문화재단 이사장.

네이버 인물정보란에만 그의 프로필이 5페이지를 넘는다. 스스로도 “요즘은 제 직업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이력만 따라가 봐도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1998년 첫 독집 음반 ‘위스퍼스 오브 호프(Whispers of Hope)’로 데뷔한 그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하월가’ 등을 발표하며 국내 팝페라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에서 역대 최연소로 애국가를 독창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이후 뉴욕 카네기홀 전관 공연과 일본 나루히토 일왕 초청 무대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동을 이어왔다.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 무대에 올랐고, 클래식 음악가로는 조수미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 누적 음반 판매량 100만 장을 기록했다. 현재 미국 그래미상 투표인단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평화예술 친선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 변화는 더 뚜렷해졌다.

지난해 12월, 그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최연소로 용산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에 선임됐다. 음악가에서 문화 행정가로의 확장이다.

“저에게 예술은 무대 안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제가 원해서건 원치 않건 여러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작동해왔습니다.”

그가 나고 자란 용산이라는 공간도 그는 다르게 본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리움미술관, 블루스퀘어 같은 공연장,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 그리고 50여 개의 대사관까지.

“이걸 따로 보면 그냥 ‘시설’인데, 연결하면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그냥 쓰지 말고, 훈련시키세요”

이 ‘연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AI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ChatGPT를 처음 접한 건 1년 반 전쯤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가 “이미 신입 기자보다 글 구조를 더 잘 잡는다”고 말해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이게 뭘 안다고.”

그런데 이어진 한마디가 걸렸다.

“그냥 쓰지 말고, 훈련시키세요.”

그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이름을 붙이고, 지시를 하고, 결과를 고치고, 다시 요구했다. 마치 신입 직원을 교육시키듯.

“시간이 좀 걸립니다. 대신 확실히 달라집니다.”

지금은 역할이 나뉘어 있다. 공연을 준비할 때는 공연장과 레퍼토리를 분석하고, 무대 구성까지 함께 구상한다. 글을 쓸 때는 구조를 잡는 데 도움을 받고, 때로는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놓게 한다.

“가끔은 ‘내 주장에 반박해봐라’고 합니다. 그럴 때는 도구라기보다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 가깝죠.”

‘팬덤’ 전시, ChatGPT와 대화에서 시작된 기획

올해 3월 용산문화재단에서 열린 ‘팬덤’ 전시는 그가 말하는 방식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출발은 그가 한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는 뭘까.”

AI가 내놓은 답은 짧았다.

“공동 창조자.”

그 두 글자가 전시 전체의 뼈대가 됐다. 팬덤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주체’로 보는 시각이다.

전시는 이 개념을 다섯 개의 섹션으로 풀어냈다. 팬덤의 열정을 시각화한 ‘더 펄스(The Pulse)’, 기부와 봉사 등 사회적 가치를 담은 ‘더 라이트(The Light)’, 일상 속 팬덤 문화를 조명한 ‘더 유니버스(The Universe)’,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더 디스커버리(The Discovery)’, 팬덤의 역사를 기록한 ‘더 패션(The Passion)’이다. 이 전시는 4월 15일까지 계속된다.

‘경계’에 서는 일 낯설지 않다

문화예술, 창작의 관점에서 AI의 의미를 묻자, 그는 30년 전 경험을 이야기했다.

팝페라를 처음 들고 나왔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경계’에 있는 장르라는 이유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클래식도 아니고, 팝도 아니다.”

그는 그 말을 오히려 그대로 받아들였다. 경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라고 생각했다. 지금 AI 역시 같은 자리에 있다고 본다.

“논쟁은 있지만,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예술이나 창작 활동에도 예외는 아니고요.”

그래서 질문도 달라졌다고 했다.

“쓸 거냐 말 거냐는 이미 지난 얘기 아닐까요.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데뷔 30주년 프로젝트 구상…“좋은 질문은 임형주의 몫”

그는 곧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이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살짝 털어놓았다. 공연일 수도 있고, 다른 형식일 수도 있다. 아직은 열어둔 상태다.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도민준이랑 열심히 브레인스토밍 중입니다.”

너무 AI에 의지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도민준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건 여전히 임형주의 몫입니다.”

김성혜 한경닷컴 기자 shkim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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