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독서출판] 짧게, 영상과 함께…독서 생태계 변화 추동할까
[한국독서교육신문 백원근(독서출판평론가) 대기자]
국민 독서율 저하는 종이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급성장하던 국내 웹툰과 웹소설 시장 역시 성장률 둔화에 빠졌다. 인쇄 매체와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각종 읽기 매체와 콘텐츠들이 처한 상황은 비슷하다. 왜일까. 성인 여가 활동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동영상 등이 다른 콘텐츠 이용을 흡수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활자 읽기'에서 '숏폼 영상 보기(시청)'로의 패러다임 변화는 스마트폰과 빅테크 기업이 만들어낸 문명사적 전환인데, 능동적 읽기 활동에 의한 생각하기와 창의력 대신 수동적인 킬링타임 콘텐츠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입시정보업체인 진학사가 2026년 2월에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3,525명 응답) "특별한 목적 없이 습관적으로 숏폼 앱(유튜브 쇼츠, 릴스 등)을 켠다"는 비율이 과반수(57.9%)였고, 전체의 78.4%는 본인 의도보다 오랜 시간 시청하게 된다고 답했다. 또한 "길게 읽어야 하는 글을 10분 이상 집중해서 읽기 힘들다"고 응답한 비율이 3명 중 1명꼴(30.6%)이었다. 이처럼 장문의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현상은 일상화된 짧은 영상물의 시청 습관과의 상관성이 높다. 이제 긴 글을 읽는 훈련과 독서 습관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다. 책을 읽지 않는 비독자나 가끔씩 읽는 간헐적 독자들이 짧은 글이라고 읽도록 독서환경을 만드는 일이 긴요해졌다.
1분 만에 읽는 500자 소설의 등장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대응해 짧은 글로 독자를 이끌려는 움직임이 있다. 최근 출판된 책 『문수림의 500자 소설』은 말 그대로 500자 길이의 이야기 101편을 모은 책이다. 분량이 208쪽인 엄연한 소설집이다. 각각의 글은 이야기의 시작 또는 한 장면, 결말에 해당한다. 설명과 정보가 충분치 않은 짧은 글은 그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주어진 이야기보다도 훨씬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기존의 초단편 소설보다 더 짧은 글이기에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라고 자칭한다.
작가는 누구나 500자 소설을 쓰고 공유하기 위한 웹 기반 창작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글의 분량은 강점이나 단점이 아니다. 단지 특정한 형식이자 특성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흥미를 돋우는 재미있는 내용일 것이다. 500자의 제한을 스스로 만들고 도전하는 자세가 참신하다. 대구에서 1인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작가의 '초초단편' 문학 실험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500자 소설보다는 길지만, 5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분량(200자 원고지 20~30매)의 초단편 소설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년 전부터이다. 분량이 짧고, 쓰기와 읽기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진 온라인 소통 환경에서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법한 초단편 작법서가 나와 인기를 끌었다. 초단편 소설 작가이자 『회색 인간』으로 이름난 김동식이 쓴 『초단편 소설 쓰기』(2021)는 국내 최초의 초단편 소설 작법서로 일컬어진다. 책을 펴낼 당시까지 900편의 초단편을 썼다는 김동식은 "초단편은 근본적으로 '사건'이 있는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그가 짧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늘어지는 전개를 싫어해서 짧게 쓰고, 중요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다음 이 시간에'를 못 참아서 매회 완결성을 띤 단편을 쓴다"고 밝혔다.
초단편은 아니지만 긴 글 읽기에 부담을 느끼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의 '위픽' 소설 시리즈, 청소년을 위한 짧은 소설 기획 시리즈를 펴낸 사계절 출판사의 '독고독락',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짧은 소설' 시리즈 등은 짧지만 울림이 있는 글을 원하는 신세대에 맞춤한 기획물이다. 최근 '마음산책 짧은 소설'의 29권째로 발행된 소설가 김지연의 『꿈 목욕』은 꿈과 현실, 기억과 현재를 오가는 열네 편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초단편은 창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전적인 등용문을 여는 데 제격이다. 그래서 영화계처럼 다양한 초단편문학상 운영자들이 등장하여 꾸준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북 군산의 서점들이 합심하여 2023년부터 2년간 상금을 만들어 주최했던 '군산초단편문학상'은 외부 후원이 끊기며 중단되어 안타까움을 안겨준 바 있다.
영화관에서 책 읽기 프로젝트
영화계의 초단편에 대한 관심은 오래되었다. 지난해 17회째를 개최한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는 3분 30초 이내로 상영하는 초단편 작품을 공모해 시상했다. 상영 시간이 20분까지인 단편 경쟁 부문, 영화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는 AI 경쟁 부문, 영화제 상영 이력이 없는 신진 연출자들이 20분 내외의 단편을 출품하는 뉴제너레이션 경쟁 부문으로 구성된다. 본선 진출작은 해외 유력 단편영화제에 자동 출품되는 특전도 주어진다.
지난해 16회째를 맞이한 '서울교통공사 국제지하철영화제'는 81개국 1,790편의 작품이 출품될 만큼 호응이 높았다. 210초(3분 30초) 이내 분량의 국내 경쟁 및 국제 경쟁 부문, ESG 특별경쟁 부문(환경을 주제로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구성된다. 한국철도공사에서도 2017년에 '초단편 철도영화 공모전'을 시작하여 수년간 운영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인 CGV는 화제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원작 도서 읽기를 함께 하는 'CGV 북클럽 위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개최했다. 공상과학소설(SF) 원작 도서를 직접 읽음으로써 영화 몰입도를 높이려는 시도다. 근래 청년 세대의 텍스트힙(text-hip) 트렌드를 반영하여 극장에서 책을 읽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3월 27일 씨네드쉐프 용산 스트레스리스 시네마에서 두 차례 운영했다. 참가자들에게 원작 도서를 제공하고 2시간 동안의 독서 시간을 가지며, 우주를 주제로 삼은 영상과 음악을 제공했다. 또한 극장 특성을 감안해 미식을 결합하여 1회차에는 휘낭시에, 쿠키와 아메리카노를 제공하고, 2회차에는 샌드위치와 나초, 새우칩, 아메리카노를 제공하는 등 눈과 입이 즐거운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 사람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2021년에 번역판이 국내에 소개된 스테디셀러인데, 3월 18일 영화의 개봉과 함께 판매량이 늘었다. 영화 제작비만 약 2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화제작인데, 이 같은 영화의 세계관을 경험하게 하는 원작 독서와 극장 분위기 조성으로 차별화된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CGV는 지난해 독서와 식사를 함께 즐기는 '씨집책방 독서 전용관'을 운영해 호평을 받았다.
짧은 호흡의 이야기들을 묶은 책은 단문의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대응하는 출판 양식이다. 독자가 달라졌으니 변화된 독자에 맞춤한 출판 수요를 창출하는 것, 출판사와 저자가 기울이는 노력의 산물이다. 한편, 숏폼이 지배하는 미디어 지형에서 영화관 책 읽기는 원작과 영상 콘텐츠의 차이를 즐기는 방식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나 기업 차원에서는 콘텐츠의 원 소스 멀티 유스이자 지식재산권(IP)의 확장 전략이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질주 속에 영화관이 쇠락하는 분위기에서 차별화된 복합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