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동맹 흔드는 트럼프 ‘나토 탈퇴’ 강수… 美 안보 억지력 ‘자충수’ 우려

유진우 기자 2026. 4. 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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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 해제 거부한 유럽에 분노
유럽 내 미군 기지 존치 여부 불투명
“나토 탈퇴 시 美 방산 경쟁력 저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 카드를 다시 꺼내 들며 동맹 체제를 압박하고 있다. 그린란드 매입 논의 때부터 불거진 나토 무용론이 현재 진행 중인 이란 전쟁을 기점으로 더욱 거칠어지는 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유럽 회원국들이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한 함정 파견을 거부하자 나토 탈퇴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나토 회원국 지위 유지를 재고하느냐는 질문에 “재고 단계를 넘어섰다”며 “탈퇴를 강력 검토 중(strongly considering)”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나토에 수조 달러를 쏟아붓고 있지만, 일부 회원국은 ‘나쁜 동맹’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란 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미국을 돕지 않는 유럽 국가들을 향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종이 호랑이(paper tiger)인 걸 알고 있었고, 푸틴(러시아 대통령)도 그걸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통행 안전을 확보하려는 미 군사 작전에 유럽이 동참하지 않는 점을 탈퇴 고려 배경으로 꼽았다고 전했다. 나토에서 미국 다음 역할이 큰 주요 회원국 대다수는 현재 중동 분쟁 늪에 빠지기를 꺼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프랑스는 이란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수송하려는 이스라엘에 영공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영국과 독일은 “더 큰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라며 지원에 선을 그었다. 최근에는 스페인 정부가 미국 군용기의 자국 영공 통과마저 불허했다.

그렇다고 중동이 혼란한 와중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한 것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1일 루한스크주 점령을 완료했다고 밝혔다.루한스크주는 도네츠크주와 함께 돈바스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동부 요충지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전쟁 종식 조건으로 요구해왔다. 나토는 이 지역이 러시아 손에 넘어가는 동안, 중동과 우크라이나 양쪽에서 모두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이 빠지면 사실상 독자적인 전쟁 수행력과 억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허수아비’ 조직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확산하는 이유다.

미 해군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가 지난달 29일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 정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한 대로 오로지 대통령령에 기반해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기란 쉽지 않다. 미 의회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돌출 행동을 방어하기 위해 2023년 국방수권법(NDAA)에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나토를 탈퇴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항을 명문화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나토 탈퇴를 위해서는 상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거나 의회 별도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CNN은 전문가를 인용해 “대통령이 조약 종료 권한을 가졌다는 법무부 의견서가 존재하지만, 의회가 명시적으로 제한한 법률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 국방부 관계자들과 외교관들을 인용해 “아직 행정부 내부에서 구체적인 탈퇴 프로세스나 관련 논의가 시작된 징후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나토에서 가장 주된 역할을 차지하는 미국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탈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내부 결속력에는 손상이 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보 달더 전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승인이 필요한 공식 탈퇴 대신 미군 병력을 철수하거나 지휘 체계에서 빼는 방식으로 나토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나토라는 다자 안보 틀을 약화시키면 가장 먼저 타격받는 대상이 역설적으로 미국 자신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로이터는 나토가 단순히 유럽을 지켜주는 군사 동맹일 뿐 아니라, 미국 억지력을 전 세계에 투사하는 핵심 네트워크라고 평가했다. 나토 동맹 하에 독일과 터키 등 유럽 전역에 퍼진 미군 기지와 보급망은 중동과 북극, 대서양 작전을 수행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나토 탈퇴 시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이안보 자산을 동맹국 도움 없이 다시 구축해야 한다.

경제적 손실도 간과할 수 없다. 보잉과 록히드 마틴 등 미국 방산 거물들은 유럽 재무장 흐름에 맞춰 신무기 체계를 개발해 왔다. 미국이 나토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유럽 국가들은 자체 무기 체계 개발이나 다른 공급처를 찾아 떠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 방산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와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폴리티코는 전문가를 인용해 “동맹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면 미국이 향후 다른 국제 분쟁에서 우방국 협력을 끌어내기는 더 힘들어진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나토 압박이 미국 안보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가진 유·무형 전략적 자산에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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