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 안보질서, 점진적 해체 시작···호르무즈 방기·나토 탈퇴 협박 ‘동맹 자산’ 갉아먹는 트럼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안보 질서의 점진적인 해체가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를 고려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계 재정립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나토 탈퇴를 “절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면서 “당신이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이 호르무즈에 파병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나토가 움직이지 않자 탈퇴라는 초강경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나토에서 탈퇴하기는 쉽지 않다. 미 연방 상원 3분의 2 찬성 없이는 나토에서 탈퇴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방수권법이 조 바이든 전 정권 때 통과됐기 때문이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 탈퇴 절차에 착수했다는 징후도 아직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허풍’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위협,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거치며 이미 균열이 생긴 대서양 동맹의 관계 재정립은 이란 전쟁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카를라 노로뢰프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 글에서 “호르무즈 봉쇄 사태는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리더십을 뒷받침해 온 동맹 체제의 점진적인 붕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줬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논란 많았던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40개국의 연합군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동맹들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뿐 아니라 미군의 자국 군사 기지 이용이나 미군 항공기의 영공 통과도 거부했다. 노로뢰프 교수는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허가를 받기 위해 이란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며 ‘각자도생’에 나선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적대국과의 개별적인 협상은 대서양 방위 동맹의 근간인 집단 안보 개념 자체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걸프 동맹의 관계 역시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국 안보를 위해 미군 기지를 유치한 걸프국들은 미·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킨 이후 미군 기지로 인해 오히려 이란의 공격에 노출됐고, 미국은 이들 국가에 충분한 요격 미사일을 지원해주지 못했다. 이란 전쟁의 결과와 관계없이 걸프국들은 ‘미국의 안보 우산이 여전히 가치가 있는가’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것은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페트로 달러의 암묵적인 거래 조건은 걸프국이 석유 수출입 대금 결제를 달러로 하는 대신 미국은 걸프 지역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보호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쥔 이란이 해협 통행료를 위안화로 받는다면 이는 걸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부상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노로뢰프 교수는 “미국의 힘은 일방주의가 아닌 연합을 통해 발휘돼 왔다”면서 “중국의 안보 동맹은 북한뿐이고 러시아의 5개 동맹국(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아르메니아)은 강압으로 묶여 있지만, 미국은 수세대에 걸쳐 자발적으로 미국의 안보 시스템에 협조해 온 50개 넘는 동맹국 및 안보 파트너를 거느려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 군사력보다 중요한 동맹이란 자산”이 이란 전쟁을 계기로 빠르게 분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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