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다] 고향을 딛고 선 발레리나, 활발하게 ‘나빌레라’

주성희 기자 2026. 4. 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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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창원서 활동하는 발레 전공자 정은혜 씨

발레로 지역에서 자리 잡기 쉽지 않은 현실
코로나19 시기 고향 돌아와 힘겨운 나날
현재 교육자·발레복 브랜드 대표로 종횡무진
“발레로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 만들고파”
정은혜 씨가 발레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주성희 기자

지역발상'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여기'를 살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지역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언어로 지역을 말해온 예술인들이 있습니다. 문화체육부 신년기획 '여기, 있다'에서는 이런 예술인을 주목합니다. '여기'는 지역, 현재를 뜻하고, '있다'는 존재한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고단한 길이지만, 지금도 지역의 어느 예술가는 자신이 사는 곳을 꾸준히 기록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만나 '여기, 있는' 이유를 들어봅니다.

발레가 전문가만의 예술에서 취미 운동이 된지 10년도 더 넘었다. 동시에 화려한 예술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 사이 지점에서 발레 전공자는 발레 지도자·교육자, 공연기획자 등으로 활동한다. 우리나라 국공립 발레단은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으로 단 두 곳이기 때문에 발레 무용가로만 살아가기엔 쉽지 않다. 게다가 모두 서울로 향하는 상황에서 지역에 있는 경우는 더더욱 적다.

와중에 창원부터 김해 장유까지 종횡무진으로 발레를 교육하는 정은혜(28) 씨가 있다. 낮에는 선생님이고, 밤에는 발레 용품을 만드는 브랜드 대표로서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가 우리 지역에서 발레로 뻗어나가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끝내 포기하지 않은 발레

정 씨는 다리 모양을 교정하려고 5세에 발레를 시작했다. 말이 없고 조용하지만 뚝심있는 성격은 타고난 것이었는지, 발레가 좋아서인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발레 학원을 꾸준히 다녔다.

중학생 때부터는 학업에 집중하고자 발레를 그만뒀다. 고등학생 1학년이 되자 마음에서 발레가 다시 싹텄다. 교생선생님 한 분이 발레 전공자였는데, 그를 보니 발레를 거둘 수가 없었다. 발레 전공자가 처할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았던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끝까지 설득했다.

입시에 들어서자 현실의 벽이 바로 보였다. 우리가 매체에서 보던 국립발레단이나 세계 유수의 발레단은 상위 1%에서만 있는 일이었다. 국공립 발레단이 전국에 많지도 않았다. 대부분 한국무용단이었기 때문에 발레리나로 사는 게 다른 예체능인보다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럼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죽기 살기로 버텼다.

그는 방향을 바꿔서 발레를 가르치는 일을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인 창원으로 와서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려던 때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대면 수업이 전부 사라졌고, 다시 기회를 얻게 될 시기도 기약이 없었다.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처음 맡게 된 발레 수업에 정원이 5명인 적도 있었다.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완화되고 나서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수업을 맡았다. 그때 함께 했던 회원들과 '어떻게 하면 발레를 더 많이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같이 나누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나중에는 창원을 중심으로 마산, 진해, 김해 장유까지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이제는 주마다 만나는 회원이 160여 명이다.
정은혜 씨가 발레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주성희 기자
정은헤 씨가 수업 때 알려주는 발레 기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주성희 기자

한 발짝 나아가게 하는 나의 발레

회원들이 그와 함께 발레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이유에는 발레가 가진 매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건강한 신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발레를 배우면서 아픈 게 낫기도 하고, 키가 다시 자라는 등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을 안고 간다.

그렇게 3~4년을 숨 가쁘게 거치고 나니, 올해 들어서는 이제 사회 초년생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응 단계를 마쳤으니 한 단계 더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월부터는 주중에 서울에서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의 교수법 교육을 받고 있다.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단기적 목표인데 국내에서는 전문성과 정통성을 인정받는 자격증이다. 지역에서는 이 과정을 교육하는 곳이 없어서 서울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1~3단계를 올해 상반기 내에 수료하고, 4~6단계를 하반기에 마치는 과정이다.

정 씨는 "최근 발레 교육은 입시·전공생이 없고 일반인의 취미 운동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면서 "그 중간 단계인 자기 계발로서의 예술 전문 교육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하게 놓고 보면 발레 교육자는 지역에 많이 없고, 발레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자는 많으므로 일거리가 적지는 않다. 알던 대로 하던 대로 해도 일을 계속할 수 있지만, 정 씨는 지금의 젊음을 발전하는 데 쓰고자 마음먹었다.

상표 '발그레'로 밝게 웃고파
정은혜 씨가 자신이 개발한 발레 용품을 선보이고 있다. /주성희 기자

앞서 언급했듯 그에게 발레 수업 회원은 소중한 존재다. 단순히 수업을 듣는 이들이 아니라 그를 발전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원동력을 발판 삼아 그는 발레 용품을 만드는 브랜드를 창업했다. 상표명 '발그레'도 회원 중 한 명이 추천한 것이다. 발레 상품이라는 각인도 확실히 심어지기도 하고, 기분 좋게 상기된 얼굴과 표정이 연상됐다. 발그레에서 만든 토슈즈는 왠지 발도 편할 것만 같다.

평소 회원들과 발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다 보니, 전공자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불편함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리고 전공자로서 수만 번의 동작을 하면서 느낀 불편함까지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 이런 과정으로 회원들이 평상복으로도, 수업할 때도 입기 좋은 반팔 발레복을 먼저 제작했다.

회원들의 응원에 힘입은 덕분에 지난해 7월에 사업 구상을 해 10월에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상품 개발이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활동에 임할 생각이다.

그가 최근에 개발 막바지에 있는 웃옷을 펼쳐서 보여줬다. 한 가운데에 바뜨망 데벨로뻬 자세를 취한 발레리나가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아라베스크 자세가 그려져 있다. 발레를 상징하는 토슈즈, 발그레를 상징하는 복숭아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배치했다.

발레를 호수 위에 떠 있는 고니로 표현하고는 한다. 그만큼 위에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뒤따른다는 의미다. 발레 훈련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땀을 정말 많이 흘린다고 한다. 자기 자리 앞에 수건을 하나씩 놓아가면서 할 정도다. 그때 쓰기 좋은 스포츠 타월도 제작했다. 스포츠 타월은 마치 프랑스에서 만든 스카프처럼 고급스러워 보인다.
정은혜 씨가 자신이 개발한 발레 용품을 설명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요즘 개발에 가장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은 레오타드다. 발레 훈련할 때 입는 옷이다. 전문 발레복은 다리를 잘 보여주기 위해서 구멍이 골반까지 깊게 파여있다. 상체 가슴 부분, 등 부분도 마찬가지다. 발그레는 부담스러운 발레복보다 일반인이 입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정 씨는 "이곳에서 하는 발레는 삶에 밀착된 건강한 일상이 되길 바란다"면서 "화려함보다 활동성을 고려한 실용적이고 단단한 선을 강조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정 씨는 'For your precious ballet life balgre'라는 문구를 반팔에 새겼다. 발레를 함께하는 이들의 시간이 소중하고 값지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올해 정 씨는 발레 공부에 더 매진해서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을 수업으로 전하고자 한다. 그에 더해 자신의 상표를 잘 운영하고자 한다. 5년 뒤 경남 청년에게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는 '발그레'로 성장하고자 한다. 정 씨는 "발그레는 지역 예술의 거점이 되길 희망한다"면서 "회원들이 발레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무용실, 그 옆에는 국내외로 퍼져나간 무용복 상표 '발그레'의 사무실이 함께 놓여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웃었다.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