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도 이어지는 삶, 경남도립극단 새 연극 <반야삼촌>

주성희 기자 2026. 4. 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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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극단 정기공연 미리보기

9~11일 경남문화예술회관 공연
장봉태 예술감독 취임 후 첫 작품
“무너질 듯 살아 가는 우리 이야기”
<반야삼촌> 등장인물 단체사진. /경남도립극단

경남도립극단이 9~11일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올해 첫 정기공연으로 <반야삼촌>(서해 각색·장봉태 연출)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원작이다. 올해 초 부임한 장봉태 예술감독은 이 연극을 보는 관객이 '내 인생이 어디쯤 와 있나'를 돌아보도록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경남도립극단 <반야삼촌> 연습 현장을 들여다보면서 작품 내용, 연출과 배우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러시아 <바냐 아저씨>에서 경남 <반야 삼촌>으로

서울에 살던 서준형 교수는 죽은 부인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 부인 윤예나와 함께다. 집 안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중충하다. 퇴직한 서 교수는 연구로 명예를 얻길 기대하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듯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고통도 그의 기분이 나아지는 걸 방해한다.

윤예나는 서 교수가 있던 학교의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서 교수를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지금 생활을 권태롭게 느낀다. 예민한 서 교수의 비위도 맞춰야 하고, 서 교수의 전 처남인 이반야의 구애도 난감하다. 서 교수 첫 부인이 낳은 딸 서수연과 사이가 껄끄러운 것도 불편하다.

죽은 누이의 남편인 서 교수가 서울에서 승승장구하도록 뒷바라지한 건 이반야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고 간 농지의 빚을 갚고, 농지를 일궈 번 돈을 보내줬다. 서 교수는 고맙다는 말도 없고, 도리어 누이가 죽고 나자 새 부인을 데리고 왔다. 서 교수를 향한 이반야의 불평불만, 신세 한탄이 점점 늘어만 간다.

이반야는 농촌사회에서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만 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밀스러운 사랑을 품고 있다. 그는 윤예나를 사랑하고 있다. 10년 전에 봤을 때, 바로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비밀스러운 사랑을 품고 있는 건 그의 조카이자 서 교수의 딸 서수연도 마찬가지다. 그는 마을 보건소에서 일하는 의사 김민호를 6년 동안 홀로 좋아하고 있었다.
경남도립극단이 9~11일에 선보이는 정기공연 <반야삼촌>의 한 장면. /주성희 기자
경남도립극단이 9~11일에 선보이는 정기공연 <반야삼촌>의 한 장면. /주성희 기자

서수연은 윤예나와 화해한 후 마음을 터놓는다. 윤예나가 김민호의 마음을 대신 확인해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윤예나와 김민호가 만나 대화하는데, 오히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 모습을 이반야가 보고 충격을 받는다. 윤예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서 교수는 집안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자신과 윤예나가 도시로 나가 살고자 하니 농지와 집을 파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자 이반야가 순간 이성을 잃고 엽총을 들고 와 서 교수를 겨눈다. 서 교수를 죽이는 일이 실패에 돌아가자 그는 크게 좌절한다. 이후 서 교수와 윤예나가 떠나고 이반야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조카 서수연과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복잡한 감정 지닌 인물, 경험으로 표현한다
<반야삼촌> 등장인물 단체사진. /경남도립극단

작품은 원작 구성을 그대로 가져간다. 다만 배경이 많이 바뀌었다. 장소 배경은 경남의 어느 농촌마을이고 시대적 배경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던 당시로 추측된다.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조용한 일상을 재미나게 담아냈는데, 안톤 체호프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야삼촌>은 극적인 사랑을 이루지 고통받는 인간을 통해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장 연출은 배우들에게 인물이 관계 속에서 살아있도록 주문했다. 무엇보다 언어, 말맛을 중요하게 여겼다. <반야삼촌>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통영·거제를 중점으로 경남 배우들이 출연하면서 경남 말씨를 써 한층 친숙하다.

작품은 등장 인물들에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선택을 관객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장 연출은 극중 비극을 어둡고 무겁게 밀어붙이려 하지 않았다. 실제 우리 삶을 돌아보면 힘들수록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버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이 전개될수록 인물의 웃음 속에 숨은 허무와 외로움이 크게 다가올 것"이라면서 "하지만 작품은 절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무너질 듯 또 하루를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경남도립극단이 9~11일에 선보이는 정기공연 <반야삼촌>에서 이반야 역을 맡은 통영 이규성 배우. /경남도립극단

이반야 역을 맡은 이규성 배우는 통영 극단 벅수골 소속이다. 이 배우는 이반야를 통해 첫사랑을 만난 듯 설레는 20대 청년부터 삶의 끄트머리에서 위기를 겪는 중년까지 폭 넓은 인간상을 그려낸다.

그가 바라보는 이반야는 자신이면서, 자기 주변에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다. 외환위기를 지나던 1997, 1998년에 20대를 거쳐 30대로 나아가던 그와 친구들이 거쳐 온 상황들, 그들이 헤쳐나가던 과거와 현재가 떠올랐다. 그는 "친구 간에 어려운 상황을 가볍게 툭툭 터놓고 말했던 것들이 생각났다"면서 "나 또한 이반야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몰입하면서 연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작을 먼저 접했다면, 이 작품에서 바뀐 이름을 알고 간다면 작품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퇴직한 교수 세레브랴꼬프가 서준형, 옐레나 안드레예브나는 윤예나다. 각각 박승규 배우, 이은주 배우가 분한다. 이반 빼드로비치 보이니쯔끼, 바냐라고 불리는 인물은 이반야로 바꿨다. 소냐, 소피아 알렉산드로브나는 서수연으로 불린다. 임수연 배우가 연기한다. 바냐의 어머니이자 세레브랴꼬프 장모인 마리야는 이정숙으로 김현수 배우가 맡았다. 의사이자 바냐의 친구인 아스뜨로프는 김민호로 불린다. 박진수 배우가 연기하게 됐다. 유모 마리나는 이현옥 배우가 맡으면서 이번 극에서는 할매로 불린다. 원작에서 쩰레긴은 몰락한 지주로 나오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반야의 집에 얹혀 지내는 이일구로 나온다. 송준승 배우가 무대에 선다.

차근차근 준비해 경남 연극 활력 돋는 조직될 것
장봉태 경남도립극단 예술감독. /경남도립극단

이번 작품은 장 연출이 이전에 연출했던 작품으로 경남도립극단 예술감독으로서는 처음 선보인다. 2020년 경남도립극단 창단공연 <토지> 연출부에 있었던 그는 6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장 연출은 "앞으로 관객이 쉽게 다가가고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을 선보이고자 한다"면서 "고전 작품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고 한편으로는 동시대 관객이 현실적으로 공감할 이야기를 펼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민이 원하는 장르가 뮤지컬, 음악극 분야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다. 경남도립극단의 여건과 역량에 맞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서 도민 즐길 수 있는 좋은 작품 보여드리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돌아온 경남이 지닌 사람 간 정, 연결성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면서 "경남도립극단은 경남 연극계와 따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닌, 서로 자극해 성장하는 창구가 돼야 한다"면서 "경남 연극과 실제 창작 과정에서 협력할 구조를 만들도록 고민하고 경남 연극 전체에 활력이 돋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경남도립극단 정기공연 <반야삼촌>은 9·10일 오후 7시 30분, 11일 오후 3시에 공연한다. 전석 1만 원. 문의 055-254-4696.
경남도립극단 <반야삼촌> 홍보물. /경남도립예술단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