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과 베를린 

박선후 2026. 4. 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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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② 이름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제주4.3을 다룬 정지영 감독의 화제작 '내 이름은' 개봉을 앞두고, 영화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가 영화화 추진 배경과 순탄치만은 않았던 과정, 국제영화제 초청 무대였던 베를린에서의 단상, 역사적으로 베를린과 제주가 미묘하게 교차되는 지점 등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영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글쓴이는 아직 4.3의 이름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부르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시작'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기에.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4.3 극영화 <내 이름은> 
② <내 이름은>과 베를린

영화는 2026년 2월,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부분에 초대되었다. 처음부터 목표로 기대했던 영화제였다. 겨울의 베를린은 구조적 힘도 더 분명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베를린이다. 처음은 여행자였고, 두 번째는 전시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며, 이번에는 한 편의 영화에 묻어가는 사람이 되었다. 같은 도시지만, 사람의 위치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이번 베를린은 유난히 낮게 깔린 회색 하늘과 젖은 공기의 냄새로 시작되었다. 도시는 이성적으로는 건조하고 감정적으로는 차분했다. 이 들뜨지 않음 속에 나는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췄다. 이 도시는 간단한 설명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몸으로 지나가야만 이해되는 구조였다. 이번 베를린 방문은 영화의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는 어떤 질문을 다시 마주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도착한 다음 날, 독일주재 한국문화원에서 감독님 첫 인터뷰 일정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포츠담 광장이 내려다보였다. 넓게 트인 공간, 정리된 건물들, 평범하게 구획된 도로. 그 풍경 한가운데, 짧은 길이의 벽이 하나 의도적으로 서 있었다. 주변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분명하게 남아 있는 형태였다. 조금 더 자세히 보니, 바닥에는 선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벽은 베를린 장벽의 일부였고, 바닥선은 한때는 넘을 수 없었던 장벽의 경계였던 자리였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 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 걷는다. 경계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은 채, 그냥 일상의 자연스러움으로 건너간다. 경계는 사라진게 아니라,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남아있었다. 벽은 줄어들었지만, 경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베를린의 거리를 걷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구조를 돌아보게 되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연결들. <체크포인트 찰리> 앞에 서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하나의 문장이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당신은 지금 아메리칸 섹터에 들어가고 있다' 이 한 줄의 문장이 공간을 나누고 있었다. 건너편 가설벽에는 과거의 이 공간의 기록을 탱크 사진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장벽은 없어졌지만, 그 장벽의 역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도시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눈이 얇게 쌓인 거리, 반복되는 건물의 창문들, 평범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히려 더 낯설었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 도시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드러내고, 그 위에 현재를 쌓는다. 그 방식은 인상적이었다. 기억을 설명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우리 영화의 최초 월드 프리미어 상영은 우연치 않게 Cinema Paris(주독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지금은 중심지가 이동되었지만, 과거 서베를린의 가장 상징적 거리였다고 한다. 가장 피해를 많이 받았던 프랑스의 문화원이 가장 중심이 되는 구조. 역시 독일이라는 시민들의 정체성은 영화관에서의 진지한 태도로 충분히 설명되었다. 끝까지 앉아 있으면서 정중하게 절제된 그러면서 멈추지 않는 박수들, 그리고 수많은 질문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에서 일어나는 특별하고 뜨거운 반응들. 그런 장면들 속에서 우리가 오히려 뿌듯한 감격과 따뜻한 연대감에 위로 받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그 무엇이 존재했다. 그 순간, 이 영화는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보편적인 질문이 되었다. 

출발 전 미리 몇 군데 방문지를 검토했었다. 그중 하나가 유대인박물관이고, '내 이름은' 때문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빛을 통제한 폐쇄적인 연출 공간, 의도적인 사선축의 활용, 기울어진 바닥면 등 건축 구조적 의미 전달은 탁월했다. 그중에서도 반드시 관람객이 지나쳐야 하는 외부이면서 내부인 통로 동선은 잊기 어렵다. 눈이 있고, 입이 있지만, 표정은 모두 지워진 수많은 금속 얼굴들을 바닥에 깔고 그 위를 걸어가게 한다. 발을 디디는 순간, 금속 얼굴들은 짧고 거친 마찰음을 낸다. 무언가가 눌리고, 겹쳐지고, 억눌린 채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몇 걸음 걸으면 불편해서 멈추게 되지만, 또 다시 걸어야 한다. 밟고 지나가는 감각은 금속이 아니라 사람에 가깝다. 그 공간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몸에 불편한 기억을 새겨 넣는다.

또 한 가지, 베를린의 가장 중요한 거리이며 훔볼트 대학 정문 옆에 특별한 조각상이 하나 있다. 유명한 케테 콜비치의 조각이다. 그 앞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고개를 깊이 숙여 한 사람을 끌어안은 무너진 몸의 어머니. 천장은 뚫려 있고, 공간은 과장되어 더 무거운 침묵을 드러낸다. 이 형상은 익숙한 장면을 연동시켰다. 제주4.3공원의 마지막에 놓여있는 잔뜩 웅크린 야외의 조각. 전혀 다른 역사에서 온 두 형상이 이상하게도 같은 감각을 갖고 있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무게, 버티고 있는 몸, 놓지 못하는 기억은 국가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태로 드러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모든 인간의 언어가 되어 있었다.

체류 기간 중, 베를린 한인회에서 마련한 작은 환영 자리가 있었다. 처음 100여명 정도 참석자를 예상했는데, 200여명이 넘는 큰 행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주연인 염혜란 배우의 힘이었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가져온 기억을 꺼냈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의 삶 속에서 다시 꺼내지는 현재형의 언어였다. 영화에 대한 질문은 곧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졌고, 4.3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맞닿아 있는 감각으로 확장되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인회장은 대학 시절의 후배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4.3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통일을 꺼냈다. 그것은 이념이나 구호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삶의 문제처럼 들렸다. 이 도시에서 통일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이 모든 장면을 지나며, 나는 다시 4.3을 떠올렸다. 우리는 오랫동안 4.3을 비극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그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4.3의 시작은 비극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다른 이름이 있었다. 자주, 독립, 그리고 통일. 그 이름들은 시간이 지나며 지워졌고, 우리는 결과로서의 비극만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름을 다시 부른다는 것은, 결과를 다시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시작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베를린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도시였다. 이곳은 분단의 결과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그 이전의 가치들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장벽은 결과다. 그러나 그 벽을 만든 것은 그 이전의 선택들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기억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영화 '내 이름은'에서 이름은 하나의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또한 4.3의 이름을 규정하거나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많은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건의 시작과 끝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름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결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장벽의 흔적, 그 경계를 지나가는 사람들, 지우지 않는 기억, 구조화된 방식, 금속 얼굴의 마찰음, 끝까지 손을 놓지 않던 형상. 베를린 곳곳의 다른 장소에서 경험한 장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 흐름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되며, 다시 질문한다.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기억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시작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시작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에서, 이름은 다시 불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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