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더] 세종학당장 “쿠바, 에너지 부족·최악 전염병… 한글학교에 온정을”

유은규 2026. 4. 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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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현 쿠바한글학교장 겸 세종학당장이 아바나 세종학당 현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쿠바에서 15년 넘게 살았는데, 그런 광경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요즘 새로운 풍경을 자주 봅니다.”

1일(현지시간) 전화 인터뷰에서 정호현(54) 쿠바 한글학교 교장 겸 세종학당 학당장은 걱정과 한숨이 반반쯤 섞인 채 말을 이어갔습니다.

정 교장은 쓰레기통을 뒤지는 분들 보기가 민망하고, 겸연쩍어서 다른 휴지통을 찾아 하루에도 몇 번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배회한다고 했는데요. 며칠 전에는 배가 고프다며 문을 두드리며 음식을 구걸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쿠바에서 노숙자도,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도, 음식을 구걸하는 사람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요즘 보게 됩니다. 여기 와서 지금, ‘최악’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쿠바는 에너지의 60%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특히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 기댔습니다. 그러나 올해 1월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에 압송되면서 지원이 뚝 끊겼고, 정전 등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겪는 중입니다.

정호현, 2011년 쿠바 정착후 2022년 한글학교 출범·학당장 겸임
연료 부족에 청소차도 멈춰… 쓰레기 부패하며 전염병 위험 가중
학생들 2시간 수업 받기 위해 2~3시간씩 걸어 등교… “지원 절실”
2001년부터 캐나다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그는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인 후손 프로그램 제작 때 쿠바를 방문했습니다. 한국과 쿠바를 오가며 생활하다 2011년 무렵, 아예 쿠바에 정착했죠. 그곳에서 한글학교도 키워냈는데요. 2016년부터 조금씩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가 2022년 한글학교를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2024년 한국과 쿠바의 수교가 이뤄지면서 그해 세종학당이 들어섰고, 교장에 해당하는 세종학당장도 겸임하게 됐다고 합니다. 사상 최악의 ‘전력난’도 한국문화에 대한 젊은 그들의 열정을 식게 할 수 없었다고 정 교장은 말했습니다.

“에너지 봉쇄 후에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교통이에요. 연료가 없으니 차가 다니지 않아요. 자전거나 전기 오토바이, 삼발이라 불리는 현지 이동 수단 등을 간간이 이용하죠. 학생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옵니다. 2시간 수업받기 위해 2~3시간씩 걸어오시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렇게 수업에 참관하는 학생들이 전체의 50%가 넘어요.”

에너지난이 가중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쓰레기입니다. 연료 부족으로 청소차가 다니지 못하면서 골목길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돼 가고 있다고 정 교장은 지적했습니다. 특히 덥고 습해지기 시작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는 전염병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덥고 습한데 쓰레기가 쌓이면 굉장히 빨리 썩어요. 그래서 전염병도 돌 것 같아 걱정이에요. 덥고 냄새나면 모기가 들끓거든요. 치쿤구니아, 뎅기열에 걸릴까 봐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심해요. 의료시스템도 무너져 병원에 가도 치료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쿠바 아바나에 있는 한글학교에서 17일(현지시간) 한국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쿠바 현지인이다. [연합뉴스]


정 교장은 전력난 속에 도심이 쓰레기로 뒤덮이는 가운데 전쟁에 대한 불안은 별로 없지만, 인플레이션과 가난에 대한 불안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달러에 24 쿠바 페소였던 환율이 현재는 암시장에서 1달러에 500 쿠바 페소가 넘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어려움의 파고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력난, 식량난, 교통난 등 살아가는데 작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30여가구에 달하는 교민 중에서 쿠바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정 교장은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힘들수록 “웃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고국의 온정은 조금쯤 필요할 것 같다면서요.

“한글학교나 세종학당에 라면이라도 보내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단체들도 있어요. 그냥 보내면 미국의 봉쇄 탓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고, 또한 미국이 허가해 준다고 해도 이 난리 통에 어디로 새어 나갈지 모르니, 외교 행랑에 담아서 먹을 거라도 보내주셨으면 감사하겠어요.”

유은규 기자ekyoo@dt.co.kr

유은규 기자 ekyoo@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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