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처럼 끝까지 추적해 처벌’ 제주4.3 국제인권 표준 승화

이동건 기자 2026. 4. 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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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은 기억한다] ② 李 대통령 “국가폭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 발언 의미

제78주년 제주4.3 추념식을 앞둬 제주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형사 공소시효 폐지와 민사 소멸시효 배제를 골자로 하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시국 때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거부권)로 무산된 법률안이 제주4.3 '박진경 국가유공자 지정 논란'으로 재조명받는 모양새다. [제주의소리]는 제78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을 앞두고 국가폭력 공소시효·소멸시효 폐지가 제주4.3에 어떤 영향을 줄지 2차례에 걸쳐 살핀다.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순직·전사 군·경과 소방공무원,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유공자와 유가족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있다.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을 국립묘지에 안치해 그들의 위인적 삶을 기억하기 위함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공헌과 과오를 두루 살펴야 하지만 제주4.3과는 거리가 있다. 

4.3 주범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당시 미국의 미군정, 서북청년단 등이 있다. 더해 최근 국가유공자 지정으로 논란이 된 박진경의 생애가 재조명됐다. 

송요찬, 조병옥, 함병선, 신현준 등 인물도 4.3 피해자들에게 잊히지 않는 이름이며, 이들은 각종 훈장을 받거나 국립묘지에 안장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사진 속 가장 오른쪽 인물이 박진경 제11연대장이다. 이어 순서대로 김종면 중령, 로버츠 준장, 최갑종 소령, 백선진 소령, 임부택 대위. /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발췌.

▲송요찬(1918~1980) – 대전국립현충원 안장

일본군 지원병 입대 1946년 2월 군사영어학교 제1기 졸업 소위 임관.

6.25한국전쟁 때 헌병사령관, 수도사단장, 휴전 이후 3군군단장, 1군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계엄사량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국방위원장, 내각수반 겸 외무부장관 역임.

10.15 대통령 선거 때 자유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옥중에서 야당 후보 단일화 명분으로 사퇴 후 정계 은퇴. 이후 친정부 인물로 전향해 인천제철 사장, 국정자문위원 등 역임.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속 송요찬

박진경 피살 후 11연대장 취임해 이후 재편된 9연대장을 맡아 사실상 제주 군통수권을 가지고 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봄까지 '공비 소탕' 명분으로 강경 작전을 주도했으며, 1948년 10월19일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 통행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한다는 포고문도 발표했다. 

해당 포고문은 소위 '초토화작전'으로 이어졌으며, 제주도경비사령부 부사령관도 역임했다. 

4.3 당시 제주도경비사령부는 제9연대, 제5연대 1개 대대, 제6연대 1개 대대, 해군부대, 제주경찰경비대를 총괄 지휘하고, 수많은 도민들에게 전과자 낙인을 찍은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도 관할했다. 
왼쪽 두 번째부터 미군정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발췌.

▲조병옥(1894~1960) - 서울 강북구 수유동 묘

1912년 평양 숭실중학교 졸업 후 미국 유학. 미국에서 흥사단 결정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 전개. 

미국 콜롬비아대학 박사 학위 취득 후 귀국. 1929년 일제강점기 광주학생항일운동 때 3년 옥고. 1937년 중일 전쟁 앞둔 일제에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2년 복역.

광복 후 미 군정청 경무과장 임명돼 경찰 입직. 1946년 1월 경무국장 취임 후 경무국이 경무부로 승격되면서 1949년 1월까지 경무부장 역임. 당시 경무국장-경무부장은 현 경찰청장.

6.25 한국전쟁 직후 내무부장관 임명돼 치안국 소속 경찰 지휘. 

제3대, 제4대 국회의원 역임하고 1960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됨. 대선을 앞둔 1960년 2월 미국 육군 병원에서 사망. 충남 천안 '유석 조병옥 박사 생가' 기념 중.

△건국훈장 독립장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속 조병옥

4.3의 시발점이 된 1947년 3월1일 경찰 발포 사건에 분개한 제주도민 대다수가 참여한 3.10 총파업에 대한 사후처리를 맡은 조병옥 경무부장은 "공산분자의 흉악한 음모와 계략에 속은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또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발언으로 '3.1절 발포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도민들의 분노를 샀다. 제주에서 각종 가혹행위를 일삼은 민보단의 전신 '향보단'은 조병옥 경무부장의 건의로 조직됐으며, 추후 소위 '응원경찰'이라는 육지부 사람들을 대거 제주로 파견했다. 

더해 제주의 상황이 격화되자 당시 미국 딘 군정장관, 맨스필드 중령,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경비사령관, 유해진 도지사,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등이 모인 '5.5 최고수뇌회의' 때 평화협상을 주도한 김익렬 연대장을 '공산주의 청년'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결국 평화협상을 주도한 김익렬 연대장은 경질됐고, 빈 자리를 채운 인물이 박진경 대령이다.  

▲함병선(1920~2001) – 대전국립현충원 

일제 강점기 지원병 준위 출신,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 졸업.

육군 제2군단장, 기획참모부장, 작전참모부장 역임, 국방대학원 원장, 연합참모본부장 등 역임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장도 맡음. 

군복을 벗은 뒤 한진기계공업 대표이사,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 대우개발 회장, 포항제철 고문, 대한중기 비상임고문, 대한상공회의소 고문 등 기업인으로도 활동. 

1980년대에는 국방부 자문위원, 한국자유총연맹 상임고문.

△태극무공훈장 △무공포장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속 함병선

1948년 제주 주둔 제9연대와 제2연대가 교체될 때 제2연대장 자격으로 제주에 입도했다. 함병선은 작전 수행의 차질을 빚는다며, 제주를 참혹한 현실에 놓은 계엄령 해제 조치에 반대하고 재선포를 요구했다. 

4.3 때 함병선은 제2연대장 자격으로 제주에서 벌어지는 강경작전을 주도했다. 

1949년 2월4일 당시 함병선 연대장은 육해공군 합동작전을 지휘해 제주읍 봉개지구(현 제주시 봉개동·용강동·회천동)에서 무장대 360명을 사살하고, 130명의 포로를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무장대라고 알려진 사람 대부분은 무기도 없는 민간인으로 밝혀졌다. 

마을이 모두 불에 타 초토화된 이후 일부 살아남은 주민들이 마을 재건을 할 때 '함명리'라는 이름을 지었다. 함명리는 함병선 연대장의 '함', 김명 작전참모의 '명'을 딴 이름이며, 나중에 '봉개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더해 수많은 도민을 전과자로 낙인시킨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 직인에 제주도계엄지구사령부 사령관 육군중령 '함병선'이라고 명시돼 있다. 당시 사령관은 유재홍 대령임에도 참모장 신분인 함병선이 실질적인 권한도 행사했다. 

▲신현준(1915~2007) -국립대전현충원

일제강점기 일본이 만주에 세운 '봉천군관학교' 졸업. 항일 조직 소탕하는 부대 소위 '간도특설대' 장교로 근무했으며, 창씨개명 당시 일본식 이름은 우다가와 요시히토(宇田川義人). 

해방 후 조선해안경비대 장교로 근무하다 대한민국 초대 해병대 사령관에 임명됨. 

6.25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과 도솔산전투 등 해병대가 주요 공을 세우게 되면서 초대 제1여단장, 국방부 차관보 역임. 

해병 중장으로 예편 후 모로코 대사, 바티칸 대사, 세계반공연맹 사무총장 등 역임했으나, 2009년 친일반믹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 

△태극무공훈장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속 신현준

제2연대 임무를 이어받은 독립 제1대대(김용주 중령)가 제주에서 철수함에 따라 1949년 12월28일 대신 파견된 해병대 사령관 자격으로 제주에 왔다. 

6.25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신현준 해병대 사령관은 제주도지구 계엄사령관을 겸임하면서 예비검속을 주도했다. '북한에 도움 줄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평소에도 '빨갱이' 취급을 받던 도민들이 예비검속으로 대규모 학살됐다. 

또 4.3 때 '유지사건'이 특히 유명하다. 

당시 김재천 제주지방법원장, 원복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홍순원 제주도 총무국장, 전인홍 제주도 지방과장, 최남식 제주농업학교장, 이인구 전 제주도 사회과장, 백형석 제주적십자사 지부장, 최원순 변호사, 김차봉 제주읍장, 김무근 변호사, 김재홍 제주도립병원장, 이윤희 제주조흥자동차부 대표, 김영희 주정회사 사장, 장용문 총후보국회 서기, 제주농업중학교 한상용 준교사·조규환 훈련교관 등 제주 지역 유지 16명이 소위 '제주도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며 계엄사령부로 연행됐다. 

신현준 사령관이 주도해 물 고문과 구타, 총살 위협 등 반인권·반헌법적인 행위가 자행됐으며, 결국에는 군경합동수사대 조사를 토대로 전혀 실재조차 하지 않는 조직으로 밝혀졌다. 

제주지역 유지들이 한꺼번에 끌려가는 상황이 발생하자, 제주에서는 '계엄군'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 
갈옷을 입어 무장대로 가장한 제2연대 특공대(대장 김명). 이들은 마을을 찾아가 "왜 산 사람(무장대)를 돕지 않느냐"고 위협한 뒤, 주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학살했다. 심지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서 무장대와 거리를 둔 마을 주민 70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발췌.

앞서 언급된 이들 뿐만 아니라 함병선 연대장의 작점참모를 맡아 소위 '함정토벌' 특수부대 대장을 맡은 김명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으며, 4.3 때 '탁 대위'로 악명을 떨친 탁성록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 가수의 삶을 살기도 했다.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문봉제는 서북청년단 단장을 지낼 때 조병옥 경무부장에 요청으로 제주에 서청 수백명을 파견한 인물이다. 문봉제는 추후 한 잡지사와 인터뷰에서 "좌익이 날뛰어 도와달라고 할 때 서청을 파견했다. 정치적 라이벌끼리 '저 사람이 공산당이다'면 처단했다. 누군지도 모르고 객관적 근거도 없었다. 대표적인 지역이 제주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제주4.3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평화공원을 방문해서는 방명록에 "제주4.3을 기억하며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민형사 시효제도를 폐기하겠습니다"라고 남겼다. 유족들에게도 이를 약속했다.

이튿날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도 4.3을 언급하며 "나치 전범에 준하는 국가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약속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TV 화면을 통해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는 과거의 국가 행위를 '진압의 공로'가 아니라 '범죄에 대한 포상'으로 재규정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유족들은 이제 "제주 4.3이 국제인권 표준으로 승화"되길 소망하고 있다. 

4.3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록에 그에 합당한 대가를 돌려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4.3 양민학살 범죄자들에게 수여된 훈포장 박탈과 국립묘지 파묘는 만시지탄이다. <끝>
1948년 제주비행장에서 촬영된 사진. 뒷줄 오른쪽부터 한영주 작전참모, 미군조종사, 김정무 군수참모, 탁성록 정보참모, 앞줄 오른쪽부터 미고문관, 안광수 경비대 작전과장.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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