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

칼럼니스트 강백수 2026. 4. 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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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곰은 뚱뚱해] 일상 속에서 만나는 친절한 사람들
이웃들의 친절 덕분에 아이는 오늘도 넓은 세상을 본다

사람이 새로운 이름과 역할을 부여받으면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아빠가 되는 것은 그 변화의 폭이 상당히 큰 축에 속하는 일이다. 뉴스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감각이 이전과 많이 다르다. 며칠 전에도 어느 기관에서 일어난 아동 학대의 장면이 찍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빠가 되기 전이었더라도 당연히 화가 날 만 한 영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끔찍하고 두렵고 참담한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꼭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니더라도 내 자식이 언젠가 살아가게 될 세상의 모든 부조리한 일들이 훨씬 더 생생한 분노와 안타까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미디어 속 세상은 너무 험난하다. 뉴스에는 좋은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그들 속에서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어른으로 내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지금의 천진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강인하면서도 내면의 순수를 지켜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욕망과 폭력으로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이 과연 세상이 그것을 허락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무 것도 모른 채 뛰어 노는 아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렇지만 미디어를 벗어나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래도 꽤 자주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여전히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믿음을 지켜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 세상의 예절을 아직 모르는 아기들과, 그 미숙함에 타인이 불쾌해하지 않도록 노심초사 하지만 완벽하게 해내기는 어려운 부모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가득한 줄 알았다. 그렇지만 막상 아빠가 되어 만난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서면 우리들의 서투름을 나무라는 사람들보다 애정 어린 눈으로 이 작은 아이를 바라봐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이웃들의 친절 덕분에 아이는 오늘도 넓은 세상을 본다. ⓒ강백수

우리 가족은 혹시나 우리가 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층간 소음에 대한 걱정을 늘 갖고 있다. 아직 아들이 어리고 쿵쿵거리며 뛸 수 있을 정도의 발달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그리고 그런 민폐를 예방하고자 거실 전체에 두툼한 매트를 깔아 놓기는 했다. 그렇지만 놀이 과정에서 아무런 소음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세상에 부모가 완벽하게 케어할 수 있는 아이란 있을 수 없다. 주의를 줄 새도 없이 뛴다거나 물건을 떨어뜨린다거나 할 때는 마음 속으로 아랫집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품곤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가족들을 만났다. 연로하신 할머니와 나보다 윗 연배의 따님이었다. 아기를 안고 인사를 건넸다니 할머니께서 아기를 너무나도 귀여워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집에서 마음껏 뛰고 놀아. 다 그러고 크는 거지 뭐." 우리 가족은 그 말씀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해야 하는 게 공동주택 거주자의 의무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분명했다.

동네에는 아기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아랫집 할머니 말고도 참 많다. 어디서든 아들과 함께 어르신을 마주치면 한결같이 "고놈 참 잘 생겼다." 하시며 반갑게 말을 걸어 주신다. 요즘 같이 아기가 귀한 시대에 장한 일 한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물론 아기 양말 제대로 안 신겼다가 모르는 어르신께 호통을 들은 적도 있고, 다 큰 아이를 안고 다닌다고, 걷는 연습 시켜야 한다고 한 소리 하시는 어르신을 만난 적도 있었다. 가끔 그런 상황이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모두가 애정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기에게 보내는 세심한 관심이다.

어린이집에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안다. 어떤 사건이 뉴스에 나온다는 것은 그런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보육교사가 흔하다면 일일이 뉴스에 소개될 일도 없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직업적 사명감으로 일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런 것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육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아들 한 명 돌보는 것도 나는 힘든데 매일 여러 아이들을 케어 하는 그 일을 어떻게 숭고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린이집 갈 시간이 되면 신발을 신겠다고 현관에 앉고, 주말에도 어린이집 가방을 집어드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들 뿐이다.

가끔은 공공장소에서 아들이 작은 소란을 만들기도 한다. 요즘 들어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큰 소리로 떼를 쓰기도 하고 물건을 툭툭 떨어뜨리거나 휙 던지기도 하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그런 행동을 할 때면 주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아들이나 내게 항의를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시는 분들은 정말 드물다. 아기니까 그럴 수 있다며 귀엽게 봐 주시는 분들, 귀찮은 기색 없이 다시 새 식기를 가져다주시는 직원 분들, 소란이 싫어도 내색하지 않아 주시거나 모른 척 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아들은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풍경을 보며 자랄 수 있다.

아이 하나를 잘 키워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넓어져 온 마을을 넘어 온 사회가 보듬어줘야 아이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 주려고 애쓰는 수많은 친절한 이웃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내 아이 역시 언젠가 다른 아이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착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길러내는 것이다. 만약에 아들이 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생각이다. 우리 주변에 나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 그 말의 증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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