點心, 마음에 찍는 점… 한끼에 담은 쉼[이우석의 푸드로지]
아침·저녁 식사와는 다르게
점심은 원래 안 챙기던 끼니
韓 근대들어 ‘삼시세끼’ 정착
K직장인 메뉴 고르려 회의도
백반·설렁탕·카레·버거 인기
日, 도시락·덮밥류·라멘 즐겨
中은 면요리-홍콩은 딤섬문화

화창하다. 비록 짧은 점심시간이라도 사무실을 나와 빌딩 숲 그림자를 피해 노란 볕 아래 잠시 서 본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만약 점심시간이 없었더라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줄곧 일만 했을 텐데 중간에 점심이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점심(點心)의 뜻이 와 닿는다.
의아하다. 끼니는 보통 세 번 먹지만 점심만 한자어다. 아침과 저녁은 순우리말이다. 게다가 아침과 저녁은 원래 때(時)를 이르는 말에서 그때 챙겨 먹는 밥(食)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넓어졌지만, 점심은 애초 낮에 먹는 식사 행위만을 이르는 단어였다. 점심을 시간의 의미로만 쓰려면 보통은 ‘점심때’라고 붙이게 마련이다. 다음은 더없이 행복한 점심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점심의 역사를 알아보자.
우선, 식사를 말할 때, 그 시간에 중점을 둔 말이 있다면 조식, 중식, 석식으로 쓰는데, 따로 점심이란 한자가 있다. 이것도 의문이다. 아침과 저녁은 조식(朝食), 석식(夕食)이라 하지만 중식에는 ‘낮’이란 뜻이 전혀 없다. 아침과 저녁 그 가운데(中) 먹는 밥이라고 중식(中食)이다. 원래 아침과 저녁 식사만 제대로 된 끼니였다는 뜻이다.
점심만 유독 다르게 부르는 이유는 ‘원래 없던’ 끼니였던 까닭이다.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선 원래 하루 두 끼만 먹었다. 농경민족은 노동을 위해 이른 아침을 먹고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일자리가 멀거나 집에 오기 어려운 상인, 어부, 나무꾼은 상황이 더욱 그렇다. 점심을 제때 챙겨 먹으려면 바깥 노동을 하지 않고 집이나 관청에 있는 귀족(양반)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외식의 중심은 점심이 됐다.
한자어 점심은 조석이식(朝夕二食)을 했던 중국에서 아침과 저녁 사이에 먹는 조촐한 요깃거리를 일러 ‘마음에 점을 찍는다’고 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거나하게 차려 먹는 것이 아니라 점을 찍는 정도의 간단한 음식이란 뜻. 점심이란 말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같은 한자를 쓰는 홍콩의 딤섬 덕이다. 딤섬에 작은 만두 종류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 딤섬을 만두 종류의 요리 이름으로 인식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도 조석 끼니를 제외하고 하루 두 끼가 기본이었다. 그래도 왕은 초조반, 조반, 낮것상, 석반, 야참 등 하루에 5끼를 먹었다. 이 중 낮것상이 점심 격이다. 점심을 먹었다는 기록은 삼국시대에도 등장하지만, 평민들은 제대로 챙기기 어려웠다. 낮에는 간단히 새참으로 때우는 정도였다. 이게 꽤 오래갔다. 여염집에 하루 3끼가 정착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점심은 새로운 식문화였던 까닭에 부르는 말 자체가 달랐다.
하지만 점심을 대하는 태도는 시대와 나라마다 달랐다. 옛날 유럽 농경 사회에선 해가 뜨기 전, 상대적으로 시원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농사를 해야 했다. 아침은 굶었다. 그래서 오전에 노동을 끝내는 문화에선 점심을 저녁처럼 성대하게 차려 먹었다.
18세기 영어 사전에는 디너(dinner)를 정오쯤에 먹는 식사(오찬)라고 나온다. 원래는 디너가 저녁 식사란 뜻이 아니고 가장 잘 차려 먹는 끼니를 뜻한다. 낮에 디너를 먹으면 저녁에는 빵이나 수프처럼 간단한 서퍼(supper)를 먹었다. 이 같은 풍습은 굉장히 오랜 역사를 지녔다. 성경에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식사는 빵과 포도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 상황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묘사한 그림 제목도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이다. 디너가 아닌 서퍼다.
유럽의 점심은 산업혁명 이후에 대중화됐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방직 공장에 붙들어 놓고 온종일 노동을 시키자니 중간에 밥을 먹여야 했다. 이때 생겨난 메뉴가 바로 영국의 요리인 피시앤드칩스(fish & chips)다. 값싼 면실유에 증기선으로 대량 노획한 생선과 감자를 대충 튀겨서 줬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이 역시 고된 몸과 마음에 점을 찍었던 점심이다.

세계적으로 점심시간은 대부분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정도가 기본이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정한다. 물론 스페인, 프랑스 등 ‘먹는 것이 진심’인 나라들에선 점심을 오래 먹는다. 무더운 중남미 국가 중에는 오후 2시부터 먹기도 한다. 영국, 독일 등의 일부 유럽 국가에선 근무 시간 중 점심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근무 중 짬이 날 때 알아서들 먹는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근로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점심시간이 있다.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준다. 근로계약서로 정한다.
그보다 일찍 먹는 점심은 ‘브런치(brunch)’라고 한다. 아침(breakfast)과 점심(lunch)의 합성어인데 메뉴 내용은 점심 식사에 가깝다. 우리말 준말 ‘아점’과 유사하지만 브런치란 말은 역사가 훨씬 길다. 옛날부터 가톨릭과 기독교에서 주일 아침 식사를 거르고 미사(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야 밥을 먹었는데 이 시간대가 딱 브런치에 맞았다. 그렇게 생겨난 개념이다.
그럼 점심엔 주로 무엇을 먹을까. 직장인들이 가지는 몇 안 되는 낙 중 하나가 점심 메뉴다. 그래서 오전 중에 고민도 많다. 혼자 해결하는 경우도 잦아졌지만, 보통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함께 먹으러 간다. 부서에서 점심시간에 회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같이 먹을 점심 메뉴를 주제로 또(?) 회의를 하는 곳도 있다.

한국의 직장가에서 점심 메뉴를 꼽을 때면 늘 국탕류가 빠지지 않는다. 어느 조사기관이든지 마찬가지며 옛날에도 그랬다. 1990년 6월 9일자 동아일보에는 식품개발연구원의 조사를 인용해 서울 지역 425개 식당의 인기 점심 메뉴를 다룬 기사를 게재했다. 설렁탕과 갈비탕 등 탕류가 40% 이상이었다. 찌개는 20%, 그다음은 비빔밥(14.5%)이 차지했다. 1992년 3월 10일 경향신문이 월간잡지 ‘직장인’ 조사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직장인 인기 메뉴로 비빔밥과 김치찌개가 21.1%, 순두부찌개 12.6%, 된장찌개 11.6%, 칼국수 9.5%, 육개장 4.2% 순으로 조사됐다.
요즘 조사 통계를 보면 인기 점심 식사 메뉴로 백반, 설렁탕, 카레, 파스타, 베트남 쌀국수, 햄버거 등이 동시에 등장한다. 집밥이 그리워 백반을 찾는 이, 평소 먹기 힘든 메뉴를 고르는 이 등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고 있는 시대상이다.
일본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즐겨 먹는 것으로 나온다. 값싸고 든든하다는 이유다. 직장가 인근에는 어김없이 도시락을 파는 벤토(弁當)집이 있고 편의점도 점심시간에 맞춰 갓 만든 도시락을 쏟아낸다. 각종 덮밥도 인기다. 우동, 소바(메밀국수), 라멘을 먹는 경우도 많다.
중국에선 면 종류를 즐긴다. 미셴(米線)이라 해서 점심으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국수다. 작은 요리 몇 개를 골라 밥과 함께 먹는 콰이찬(快餐)도 있다. 우리 백반 같은 개념이다. 대만에서도 뉴러우몐(牛肉麵)을 많이 먹지만, 쌀밥에 돼지고기 볶음을 얹은 러우판(肉飯)도 인기 점심 메뉴다.
홍콩에선 얌차(飮茶)가 대표적인 점심 메뉴다. ‘차를 마신다’는 뜻의 광둥어 얌차는 홍콩의 독특한 식문화인데 딤섬을 파는 곳이다. 딤섬 중에는 만두 종류도 많지만 이뿐만 아니라 찐빵, 창펀(腸粉), 닭발찜, 찰밥, 떡, 죽, 국수 등도 있어 점심 식사 거리로 딱 좋다.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보통 미국 직장인의 점심 식사는 퍽 단출하다. 햄버거나 샌드위치, 핫도그, 타코 등이 그나마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이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본 것처럼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면서 감자칩이나 도넛 몇 개로 때우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인들의 2시간이 넘어가는 점심 식사에 비해 옹색하기 짝이 없다.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말이 있다. 점심은 그만큼 대가를 치른다. 열심히 오전에 일을 했을 테니 점심을 맛있게 먹어도 된다. 봄이니까.
놀고먹기연구소장
◇설렁탕= 명인설렁탕.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이 최고로 치는 점심 고깃국이 설렁탕이다. 고민이 필요 없다. 진한 국물에 만 쌀밥이 입에 짝짝 붙는다. 사골뿐만 아니라 수육용으로 업진살, 사태, 양지 등을 삶아내 국물 자체가 다르다. 밥을 말면 국물이 스며들면서 밥알을 매끈하게 코팅한다. 뽀얗게 우러난 진한 국물이 대파 향과도 잘 어울린다. 여기다 김치, 깍두기 척 올려서 한술 뜨면 하루 종일 든든하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8길 43 1층.
◇비빔밥= 마산집. 비빔밥 역시 빨리 허기를 채우고 남은 오후를 버텨낼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점심상. 육회비빔밥을 양은 냄비에 내온다. 선홍색 육회를 듬뿍 올리고 무생채와 배추를 다져 곁들였다. 고기가 있지만 밥 비빌 때는 계란 프라이도 빼놓을 수 없다. 살짝 달짝지근하고 깊은 맛을 내는 장을 넣고 비벼 놓으면 색이 곱다. 장을 충분히 넣어 매콤하게 먹어도 부드러운 된장 국물이 중화시켜준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로 67 경창종합상가.
◇장어덮밥= 우나다이. 일본에선 점심 식사의 최고 호화스러운 메뉴로 꼽힌다. 아주 부자나 임원들이나 먹는 메뉴로 미디어 속에 등장한다. 나고야식 장어덮밥(히쓰마부시)을 판다. 본점은 나고야에 있고 한국에 분점을 차렸다. 양념을 발라가며 바싹 구워낸 가바야키 한 마리를 통째로 잘게 잘라 밥 위에 얹었다. 겉은 바삭하고 살점은 혀로도 씹힐 만큼 부드럽다. 진한 양념(쓰유)이 밥알을 흠뻑 적셔 풍미를 더한다. 우나동(장어덮밥)도 판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83길 36 2층.
◇김치찌개= 굴다리식당. 괜히 점심 메뉴 스테디셀러가 아니다. 언제 먹어도, 일주일에 두 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식단이 김치찌개다. 특히 이 집은 가정식으로 끓여낸다. 생선조림 등 곁들인 찬이며 찌개의 모양새가 마치 집에서 차린 상 같다. 비계가 붙은 큼지막한 돼지고기를 뭉텅 썰어 넣고 오랫동안 끓여 고깃덩어리에 김치맛이 제대로 배 들었다. 김치를 찢어 턱 얹은 밥술을 들어도 좋고, 국물만 떠먹다가 밥을 말아도 좋다. 당장 입맛이 살아난다. 서울 마포구 새창로 8-1.
◇라멘= 멘야서울.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일본인들의 대표 식사 메뉴. 우리 인스턴트 라면과는 달리 설렁탕처럼 기름진 국물에 푸짐한 면발이 든든한 하루를 책임진다. 보디감 있는 국물에 매끈한 면을 말았다. 풍미가 진한 국물까지 들이켜면 에너지를 충전한 기분. 아주 얇게 저며낸 고기도, 젤리처럼 부드러운 달걀도 면발과 찰떡궁합이다. 얼큰한 국물도 있다. 중림동 언덕에 위치한 작은 라멘집이라 외졌는데도 어찌들 알고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6길 34 성요셉아파트.
◇햄버거= 데일리픽스. 미국인의 점심이다. 당장 지금도 아마 1000만 명 이상이 햄버거를 베어먹고 있을 듯하다. 서울 다동에 위치한 수제 햄버거집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강민경’식 베이컨 치즈버거도 있다. 직접 빚은 한우 패티와 채소, 베이컨, 치즈를 폭신한 번에 끼웠다. 두꺼워 씹히는 맛이 좋은 패티엔 불향이 가득하고 베이컨은 녹진한 기름맛을 낸다. 머스터드와 케첩이 맛을 증폭시키고 한없이 부드러운 번이 각 재료의 개성을 잡아준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9길 24.
◇딤섬= 모트(Mott)32. 딤섬, 점심의 어원이다. 광둥식 레스토랑 모트32에선 딤섬을 위시해 화려한 홍콩의 식문화를 조용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 현지에서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따내는 등 홍콩 식도락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곳이다. 점심값치고는 다소 비싼 감이 들지만 블랙 트뤼프와 메추리알을 넣은 ‘블랙 트러플 메추리알 샤오마이’ 등 국내에선 생소한 딤섬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176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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