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시점에 다시 바다로"···'억대 연봉' 받는 이 남자 [강홍민의 굿잡]

강홍민 2026. 4. 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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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 나이에 '제 2의 삶' 시작한 유종현 선장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은 중장년층을 넘어 청년들에게도 크나큰 숙제로 안기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를 넘어 어떻게 하면 부족함 없는 노년을 보낼 수 있는지 말이다. 특히 수십 년을 한 조직에서 몸 담았던 퇴직자들에게 '두 번째 삶'은 생각보다 혹독한 현실로 다가온다. 그 현실 앞에서도 누군가는 포기 대신 도전을 선택한다.

유종현 선장은 27년간의 육상 생활을 마치고 57세의 나이에 다시 바다로 나선 케이스다. 일반적인 이들이라면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유 선장은 제 2의 삶을 시작한 셈이다. 항해를 가르는 선장으로서의 시작을 알린 유종현 선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57세 나이에 다시 항해를 누비는 유종현 선장(본인 제공)

현재 어떤 선박을 몰고 있으신가요.
"현재 3만 5천 톤급 벌크선입니다. 전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나 바다와 함께 성장했고, 20대 중후반까지 배를 타며 전세계를 누비다 육지로 내려와 국제여객선 항로개설 운영과 물류 운송업으로 전향했었죠. 그리고 2022년 다시 배에 올랐고 지난해 선장을 맡게 됐어요. 선장의 책임과 바다가 주는 의미를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선장을 목표로 하셨나요.
"사실 그렇진 않았어요. 집안 사정으로 학비가 비교적 저렴한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진학하게 됐고, 뜻과 상관없이 해운업에 발을 들이게 된 거죠. 1988년에 입학해 대학을 졸업하며 3급 해기사 면허를 취득하고 삼등 항해사로 승선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선장이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선장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선장이 되려면 반드시 1급 항해사 면허를 취득해야 합니다. 저는 3급부터 시작해 법정 승선 경력을 쌓아가며 2급, 1급 면허를 차례대로 취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3급에서 2급까지는 약 12개월, 2급에서 1급까지는 24개월의 해상 경력이 필요해요. 저도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죠. 그런데 20대에 컨테이너선을 타며 세계를 누비다, 험한 해상 생활에 지쳐 육상 근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육지에서 다시 바다로 나오기까지 27년 걸렸네요."

선장이라는 직업의 장단점은 뭔가요.
"우선 장점부터 말씀드리면, 임금 수준이 높고 승선 중에는 지출이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육상처럼 식비나 교통비, 생활비를 쓸 일이 없으니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돈이 많죠. 또 세계 곳곳을 항해하며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 직업이 주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전문성이 인정받는 직업이라는 점도 큰 장점이고요. 반면 단점은 역시 가족과의 이별입니다. 한 번 승선하면 수개월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하고,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나 가족 행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폐쇄된 환경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스타링크 덕분에 가족과 화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그게 실제 곁에 있는 것을 완전히 대신하진 못하죠. 그 부분은 이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감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퇴직 후 메모장을 꺼내 내 장점을 하나하나 적었다···그중에 다른 사람에겐 없는 자격증이 있었다“

27년 만에 다시 바다로 돌아 온 계기가 궁금합니다.
"2022년, 나이와 회사에서 임원직을 내려놓고 나오게 됐습니다. 퇴직 후 두 번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어요. 주변에서 들려오는 퇴직 후의 현실, 제한된 기회와 낮은 임금 수준이 더욱 암담하게 느껴졌죠. 그러다 메모장을 꺼내 제 장점과 능력, 자격증, 인맥을 하나하나 적어 가며 정리했습니다. 그중에 다른 사람에겐 없는 항해사 자격증이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됐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계획을 곧바로 세웠어요."

재승선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겠군요.
"아무것도 쉬운 게 없었죠. 6개월을 집중적으로 준비해 항해사 자격을 다시 확보했지만, 진짜 어려움은 그 이후였습니다. 90년대와 달리 요즘은 선사들이 외국인 선원을 많이 고용하면서 승선 자체가 쉽지 않았고, 저처럼 장기간 공백이 있는 사람에겐 기회가 더 제한적이었어요. 그래서 첫 재승선은 아주 작은 한·중·일 항로 화물선에서 일등 항해사로 시작했습니다. 대한해협을 넘어가며 몇 달간 멀미로 고생하며 식사와 근무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바다 위에서 위험했던 순간들도 많았겠어요.
"90년대 세계 일주 컨테이너선에 승선했을 때입니다. 뉴욕을 출항해 프랑스 르아브르로 향하는 대서양에서 세 개의 허리케인이 발생했고, 그중 하나의 허리케인이 본선 항로와 겹치게 됐죠. 약 일주일 동안 악천후 속에서 항해를 이어가야 했는데,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허리케인을 지나며 컨테이너 40개 이상이 분실되고 50개 이상이 파손됐습니다. 그때는 정말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감사했고, 지금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무서운 순간이었어요."

선장의 하루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선장은 단순히 배를 모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원 관리와 교육, 선내 질서 유지, 각종 검사와 점검 총괄, 화물 감독, 기상 정보 확보, 해외 대리점과의 교신 등 모두 선장 책임 아래 이뤄집니다. 입출항이나 좁은 수로 통과 같은 중요한 순간엔 직접 조선을 수행하고,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대응 계획을 지휘해야 하죠. 선박 생활은 단조롭지만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긴장된 환경입니다. 그래서 위계 속에서도 허용 가능한 유연함을 유지하며 선원들과 함께 안전하게 항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폐쇄된 환경이라는 점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겠군요.
"가장 힘든 건 외부와의 단절로 인한 교감의 부족이에요. 가족, 특히 아내와 자녀와의 일시적인 이별이 가장 크게 다가옵니다. 다행히 요즘은 스타링크 시스템 덕분에 선박에서도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이 가능해졌어요. 한국·필리핀·케냐 등 다양한 국적의 선원들이 가족과 화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됐고, 젊은 항해사들에겐 공부와 자기 개발에도 도움이 되고 있죠. 또 부식비 인상으로 식사의 질도 높아지고, 체육관이나 노래방 같은 편의 시설도 갖춰지면서 예전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됐죠.”


유종현 선장과 함께 항해를 누비는 선원들(본인 제공)

선박 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자리가 선장이군요. 선장으로서 갖춰야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연함이라고 생각해요. 선박은 군 조직과 유사한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어 명령과 규율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선장이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사람이라면 오래가지 못해요. 한·중·일·필리핀·케냐 등 국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선원들이 좁은 공간에서 수개월을 함께 지내야 하거든요. 그 안에서 서로 신뢰를 쌓으려면 선장이 먼저 귀를 열어야 합니다. 제가 롤모델로 삼는 선배 선장님들도 직급을 앞세우기보다 주변을 살피고 어려운 이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분들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바다는 늘 변수가 생기거든요. 기상이 악화되거나 장비가 고장 나도 선장이 흔들리면 선원 전체가 흔들립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게 선장이 가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선장의 연봉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연차나 경력 그리고 업무에 따라 연봉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억대 연봉입니다. 여기에 승선 중에는 숙식이 제공되고 지출 자체가 거의 없으니, 실질적인 경제적 여건은 육상의 동급 직업보다 낫다고 봐야 하죠. 항해사 직급에서도 경력이 쌓일수록 임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젊은 해기사들이 꾸준히 경력을 쌓아간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됩니다."

(사진3) "행동하는 도전자가 되자···복잡하고 걱정하고 피하는 순간 모든 게 어렵다"

선장을 꿈꾸는 청년들과 도전하는 모든 청년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도전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구나 꿈은 있지만 조금만 복잡해지면 '나는 그 학교를 나오지 못해서', '능력이 부족해서' 같은 변명을 먼저 만들고 멈추곤 하죠. 저도 다시 도전할 때 주위에서 '결과가 안 좋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이어갔어요. 때로는 단순하게 목표와 방향만 정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위치에 도달해 있을 겁니다. 저는 늘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태도를 만들고, 긍정적인 태도는 긍정적인 행동을 만들며, 긍정적인 행동은 결국 긍정적인 결과를 만든다'라는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믿고 도전해 본다면 시간이 지나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나이로 보면 은퇴할 시점이지만, 저는 다시 도전해 선장이 된 만큼 건강이 허용되는 순간까지 바다로 나오는 후배들의 성장과 지금 회사의 중추적 역할을 위해 헌신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도선사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제 두 번째 항해의 길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끝까지 도전하며 성장하는 삶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유영훈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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