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쿠바한글학교장 "암흑천지, 쓰레기 더미…최악의 난리통"
전염병 위험 높지만 병원에 가도 '약' 없어…아프면 '큰일'
쿠바 한글학교 학생들 2~3시간 걸어서 등교…"지원 절실"
![정호현 쿠바한글학교장 겸 세종학당장 [정호현 교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4511cukd.jpg)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쿠바에서 15년 넘게 살았는데, 그런 광경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요즘 새로운 풍경을 자주 봅니다."
정호현(54) 쿠바 한글학교 교장 겸 세종학당 학당장은 걱정과 한숨이 반반쯤 섞인 채 말을 이어갔다.
그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분들 보기가 민망하고, 겸연쩍어서 다른 휴지통을 찾아 하루에도 몇 번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배회한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배가 고프다며 문을 두드리며 음식을 구걸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정 교장은 1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쿠바에서 노숙자도,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도, 음식을 구걸하는 사람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요즘 보게 된다"며 "여기 와서 지금, '최악'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휴지조각이 된 쿠바페소 [AP=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4688jczd.jpg)
쿠바는 에너지의 60%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특히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 기댔다.
그러나 올해 1월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에 압송되면서 지원이 뚝 끊겼고, 정전 등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
정 교장은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처음 왔었을 때의 쿠바의 정경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2001년부터 캐나다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그는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인 후손 프로그램 제작 때 쿠바를 방문했다. 사람들은 느긋했고, 순박했다. 누군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 한국이나 캐나다에서 싸움이 나겠지만, 쿠바 사람들은 그저 따뜻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여기에 공해 하나 없는 듯한 깨끗하고 맑고 날씨, 주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경쾌하고 때로는 끈적이는 쿠바 음악, 밤바다와 어울리는 술 한잔까지. 쿠바는 "시간이 멈춘 듯한"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낭만적인 옛 풍경의 도시였다.
그는 단숨에 그 매력에 빠져 버렸다. 현지인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으며 아이도 낳았다. 한국과 쿠바를 오가며 생활하던 정 교장은 2011년 무렵, 아예 쿠바에 정착했다. "신의 선물"이라는 쿠바의 바다를 잊을 수 없었고, 대체로 가난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의 눈빛도 그리웠다.
!["신의 선물"이라 불리는 쿠바의 바다를 보며 자전거를 타는 남성 [AFP=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4850davp.jpg)
그곳에서 한글학교도 키워냈다. 2016년부터 조금씩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가 2022년 한글학교를 공식 출범시켰다. 2024년 한국과 쿠바의 수교가 이뤄지면서 그해 세종학당이 들어섰다. 그는 교장에 해당하는 세종학당장도 겸임하게 됐다. 한인 후손들 일부가 한글학교를 다녔지만 대부분 쿠바 현지인이 강당을 채웠다. 어린이와 장년층은 주로 한글학교로, 청소년은 대부분 세종학당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대부분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들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꿈을 꿨던 이들이었다. 사상 최악의 '전력난'도 한국문화에 대한 젊은 그들의 열정을 식게 할 수 없었다고 정 교장은 말했다.
"에너지 봉쇄 후에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교통이에요. 연료가 없으니 차가 다니지 않아요. 차들은 대부분 주차장에 서 있습니다. 자전거나 전기 오토바이, 삼발이라 불리는 현지 이동 수단 등을 간간이 이용하죠. 학생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옵니다. 2시간 수업받기 위해 2~3시간씩 걸어오시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렇게 수업에 참관하는 학생들이 전체의 50%가 넘어요. 이 난리 통을 생각하면 결석률이 정말 낮은 겁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AFP=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5082gpsz.jpg)
사실 쿠바는 팬데믹 이후 정전이 빈번한 편이었다. 특히 여름에는 잦은 허리케인으로 전력망이 붕괴하면서 정전이 자주 발생했다. 수도인 아바나에도 3일, 길게는 일주일까지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 석유 원조가 끊긴 지난 1월 9일 이후, 요즘처럼 상황이 안 좋은 경우는 없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정 교장은 "통상 하루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은 8시간 정도"라며 "그나마 우리 집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서 나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태양광이 없거나 비수도권, 또는 격오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을 전기 없이 보낼 거라고 그는 설명했다.
전기가 자주 끊기니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는 것도 골머리였다. "오늘 해 먹을 음식만 조금씩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습니다. 이제 덥고, 습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순 없어요."
![쿠바의 상징 '삼발이' [EPA=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5303hzil.jpg)
에너지난이 가중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쓰레기다. 연료 부족으로 청소차가 다니지 못하면서 골목길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돼 가고 있다고 정 교장은 지적했다. 특히 덥고 습해지기 시작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는 전염병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덥고 습한데 쓰레기가 쌓이면 굉장히 빨리 썩어요. 그래서 전염병도 돌 것 같아 걱정이에요. 덥고 냄새나면 모기가 들끓거든요. 치쿤구니아, 뎅기열에 걸릴까 봐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심해요. 의료시스템도 무너져 병원에 가도 치료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일단 약을 구할 수 없으니……."
뎅기열은 고열과 함께 안구 통증이 동반되며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일으킨다. 치쿤구니아도 몸을 굽힌 채 걷게 된다는 병명처럼 관절통과 여러 부작용을 동반한다. 모두 모기에 의한 전염병이다.
![쓰레기로 뒤덮인 쿠바 아바나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2310061cyjx.jpg)
전력난 속에 도심이 쓰레기로 뒤덮이는 가운데 최근에는 전쟁 위험까지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다음은 쿠바'라고 지목하며 쿠바에 대한 무력까지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교장은 미국이 침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느끼는 게 일반적인 쿠바인의 인식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침공 가능성에 대해 외부에선 말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미국이 쳐들어올 거라고 믿진 않아요. 한반도 밖에선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이 위험한 나라라고 보지만 실제로 우리는 '설마 북한이 쳐들어오겠어'라면서 그냥 일상을 살아가잖아요. 쿠바도 딱 그 정도예요. 쿠바에는 핵도 없고, 마약도 없으며, 테러리스트도 없잖아요. 그저 휴양지가 있을 뿐이죠."
![쿠바 아바나 한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6629stti.jpg)
전쟁에 대한 불안은 별로 없지만, 인플레이션과 가난에 대한 불안은 있다고 정 교장은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달러에 24 쿠바 페소였던 환율이 현재는 암시장에서 1달러에 500 쿠바 페소가 넘는다고 한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 쿠바인들은 해외에서 보내주는 친지들의 '달러'와 '유로'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그러다 못 버티면 결국 떠난다. 지난 1년간 온갖 어려움 속에 250여명의 한글학교와 세종학당 학생 가운데 해외로 떠난 학생은 10명 남짓이다. 쿠바처럼 고립된 곳에선 이례적으로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쿠바 한글학교에 붙은 태극기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6898zhsw.jpg)
문제는 어려움의 파고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력난, 식량난, 교통난 등 살아가는데 작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30여가구에 달하는 교민 중에서 쿠바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정 교장은 전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힘들수록 "웃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고국의 온정은 조금쯤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한글학교나 세종학당에 라면이라도 보내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단체들도 있어요. 그냥 보내면 미국의 봉쇄 탓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고, 또한 미국이 허가해 준다고 해도 이 난리 통에 어디로 새어 나갈지 모르니, 외교 행랑에 담아서 먹을 거라도 보내주셨으면 감사하겠어요. 만약 가능하다면 말이죠."
![정호현 한글학교장 [정호현 교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2/yonhap/20260402091637078uwqr.jpg)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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