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도 억울한데 재판·보상은 ‘하세월’···“법원이 미루면 구제수단이 없다”
재판소원도 도움 못 돼···“시민은 어떻게 하나”

1970년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간첩 조작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이방택씨는 1년째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자신과 공범으로 함께 기소됐던 한삼택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당시 법원이 “한씨와 이씨에 대한 불법구금이 있었다”고 판단한 점을 재심 청구 사유로 들었다. 검사 측도 ‘법원에서 이미 불법구금이 인정됐다’며 재심 결정을 인용해달라는 의견을 냈지만, 법원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 사건이 접수된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재판장 소병철)는 이날까지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재판이 기약 없이 미뤄져도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전혀 없어 “억울한 누명을 벗지 못한 유족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이씨 사건처럼 재심 청구 사유가 명확해도 법원 결정이 하염없이 늦어지는 사례가 많다. 전두환 정권 안기부가 기획한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고 문철태씨와 아들 문영석씨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4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후 아들 문영석씨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아버지 문씨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사법정책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형사재심의 현황과 운용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과거사 재심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 나오기까지 평균 414.77일(약 1년2개월)이 걸렸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221603001
재판 진행이 더딘 걸 넘어 ‘법원이 법을 어기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인 1973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한 고 송세근씨의 유족은 2022년 재심을 청구해 3년 만인 2025년 무죄 판결을 받았고, 같은 해 7월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그런데 약 8개월이 지난 이날까지 형사보상을 받지 못했다.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면 6개월 안에 형사보상 결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이 별다른 설명 없이 법정 기한을 넘기면서, 법원 판결로 누명을 벗었는데도 그에 따른 보상은 제때 받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재심을 청구한 당사자가 “재판을 빨리해달라”고 요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1970년대 ‘납북 귀환 어부’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고 김달수의 유족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형사보상을 청구했지만, 1년 넘게 결정이 나오지 않자 ‘신속한 결정을 내려달라’는 의견서를 수 차례 제출하다가 결국 법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보상 결정 기한을 넘긴 게 불법은 아니다’라고 봤다. 유족 측은 법원행정처가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지 않은 ‘사법행정권 불행사’가 위법하다는 주장도 폈지만, 당시 법원행정처는 “개별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독려나 지시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원론적 견해만 밝혔다. 김씨의 유족은 이 소송의 1심과 2심에서 모두 졌다.

최근 시행된 ‘재판소원제’도 구제수단이 되지 못했다. 김씨의 유족은 법원의 판결로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지난달 21일 재판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은 뒤에 낼 수 있다”며 각하 결정했다. 사건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법원이 재판을 미루면서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법원과 헌재도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어떻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느냐”며 “법원이 결정을 미루면 아무런 구제 수단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현실적 어려움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형사 재심 사건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구속 피고인 사건은 구속기간 내 판결하는 게 원칙이고, 과거사 재심 사건은 기록이 아예 없는 일도 있어 엄격하게 요건을 따지다 보면 (사건 심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며 “다만 재심 청구 사유가 명확한 사건이라거나, 당사자가 고령일 때 신속한 결정이 나올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7221442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310600021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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