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쏜 암살 미수범 용서… 두 차례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한수 기자 2026. 4. 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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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05년 4월 2일 85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는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다. 한국 땅을 찾은 첫 교황이자 두 번 방문한 유일한 교황이다.

첫 방문은 한국 천주교 전래 200년을 맞는 해인 1984년 5월 3일부터 7일까지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3일 오후 2시 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특별기 트랩을 내려와 곧바로 땅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 옆에서 들릴 정도 소리로 “순교자의 땅”이라고 두 번 되뇌었다.

1984년 5월 4일자 1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땅에 엎드려 입 맞춘 3일, 170만 가톨릭 신자는 물론 온 국민이 평화와 축복이 내려지길 기원했다. 인자한 얼굴, 조용한 미소, 하얀 수단 차림에 두 손을 차창 밖으로 흔들며 그가 지나는 거리마다 태극기와 교황청기가 물결쳤고, 연도를 메운 시민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높이 들고 그를 맞았다. 경찰은 이날의 환영 인파를 150만명으로 추산했다.”

1984년 5월 6일자 5면.

교황은 한국어로 첫 인사말을 전했다.

“교황은 내한사 앞부분을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말로 말했고 중간에는 영어로, 마지막에는 다시 “한반도 모든 가족들에게 평화 우의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빈다”며 우리말로 끝을 맺어 환영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1984년 5월 4일 자 조간 11면)

교황은 첫 방한에서 절두산 성지 참배, 광주·소록도 방문,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순교 복자 103위 시성식을 집전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10월 7~9일 다시 방한했다.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했다. 교황은 7일 열린 ‘젊은이 성찬제’와 8일 장엄미사에서 강론을 제외한 모든 전례를 우리말로 진행했다.

1989년 10월 8일자 1면.

“교황은 오전 10시 30분 미사 개회를 알리는 성호경을 또렷한 우리말로 시작, 강론을 뺀 전례 일체를 우리말로 진행했다. (…) 교황은 강론 시작 전에도 “여러분의 서울에 또 왔습니다” “찬미 예수”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라고 우리말로 인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1989년 10월 10일 자 14면)

첫 방문 때인 1984년 5월 6일 예기치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 22세 대학생 이 모씨가 교황 전용 방탄차 앞에 뛰어들어 장난감 권총을 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장난감 권총은 소리만 날 뿐 탄환이 나가지 않는 것이어서 교황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 이군은 경찰에서 “축포를 터뜨렸는데 왜들 야단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군이 2년 전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였고, 최근에는 서울 근교의 절에서 요양을 받았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1984년 5월 8일자 11면)

1989년 10월 10일자 14면.

단순 해프닝일 수 있었지만 외신은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많은 사람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교황은 앞서 1981년 5월 실제로 저격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60)가 13일 오후 5시 17분 성 베드로 광장의 주례 일반 접견식에 참석하기 직전 권총으로 무장한 괴한으로부터 3발의 총탄을 맞고 부상했다. 바티칸 방송은 교황이 피격 직후 바티칸 북쪽 3㎞ 떨어진 폴리클리니코 제멜리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1981년 5월 14일 자 1면)

1981년 5월 14일자 1면.

총탄은 위험한 장기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범인은 튀르키예 출신 청년이었다. 배후에 소련이 있다는 말이 나왔으나 밝혀내진 못했다. 교황은 사건 직후 범인을 용서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2000년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범인을 만나 손을 잡고 범행을 용서했다. 범인은 사면을 받아 석방됐다.

교황은 자신이 총격을 받고도 죽지 않은 것을 ‘기적’으로 여겼다. 1917년 포르투갈 리스본 북부 파티마에 양치기 어린이들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파티마 성모 발현’에서 성모가 남긴 예언 세 가지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두 가지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해석되는 지옥의 모습과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몰락이었다. 교황청은 세 번째 계시에 대해서는 함구하다가 2000년 5월 공개했다.

2004년 3월 15일자 A27면.

“로마 교황청이 이른바 ‘파티마의 세 번째 계시’를 83년 만에 공개했다. 안젤로 소다노 바티칸 국무장관은 1917년 포르투갈의 양치기 어린이들이 성모 마리아로부터 들었다는 3개의 파티마 계시 가운데 비밀로 남아있던 마지막 계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저격 기도”라고 13일 밝혔다. (…) 소다노 추기경은 “세 번째 계시는 십자가와 순교자들에게 다가가던 흰 옷차림의 사제가 총격을 받고 땅에 쓰러지는 모습이었다”며 “교황이 지난 81년 파티마 성모 마리아의 첫 현신 기념일인 5월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격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은 성모 마리아 덕분”이라고 말했다.”(2000년 5월 15일자 9면)

1978년 10월 16일 즉위한 요한 바오로 2세는 2005년 4월 2일 서거해 26년 5개월 17일 재위했다. 앞서 2004년 3월 14일 재위 25년 5개월을 넘기면서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의 기록을 넘어 역대 재위 기간 3위에 올랐다.

“역대 최장수 교황은 약 34~37년간 재위한 초대 교황 사도 베드로로 교황청 문서에 기록돼 있으나 적지 않은 학자들이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사실상 최장수 재위 교황은 1846년부터 1878년까지 약 31년 7개월을 재위한 비오 9세다.”(2004년 3월 15일 자 A27면)

2005년 4월 4일자 A1면.
2005년 4월 4일자 A4면.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오랜 기간 투병했다. 2004년 12월 건강 악화에도 서거 전 마지막 성탄 미사를 집전하면서 끝까지 교황으로서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 또한 행복하시오. 울지 말고 우리 함께 기쁘게 기도합시다.” 임종을 지키던 고국 폴란드 출신 신부와 수녀들에게 남긴 메모는 유언이 됐다. 그는 광장에서 기도하는 신자들을 위해 오른팔을 힘겹게 들어 올려 ‘강복(降福)’의 몸짓을 보였다. 기도가 끝나자 온 힘을 다해 “아멘”이라고 한 뒤 광장 쪽 창문을 보며 눈을 감았다.”(2005년 4월 4일 자 A1면)

선종 6년 후인 2011년 5월 가톨릭 역사상 최단 기간에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에 이어 2013년 7월 성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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