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빠지면 고통이지만, 없어지면 편해진다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2026. 4. 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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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년)에서 주인공 철호에게 치통과 발치가 고단한 현실의 무게이자 삶의 목표 상실을 상징한다면, 비슷한 문제가 조선시대 정약용에겐 노년의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시인은 당나라 백거이가 쓴 노년 주제 시의 발상과 달관적 의식에 감발하여(시의 부제가 '效香山體·효향산체'이다), 노년을 맞는 여섯 가지 기쁨을 차례로 노래했다.

시인이 든 여섯 가지 즐거운 일은 탈모, 낙치, 시력과 청력의 약화같이 사람을 서글프게 만드는 노화의 징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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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 〈128〉 낙치(落齒) (下)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년)에서 주인공 철호에게 치통과 발치가 고단한 현실의 무게이자 삶의 목표 상실을 상징한다면, 비슷한 문제가 조선시대 정약용에겐 노년의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시인은 당나라 백거이가 쓴 노년 주제 시의 발상과 달관적 의식에 감발하여(시의 부제가 ‘效香山體·효향산체’이다), 노년을 맞는 여섯 가지 기쁨을 차례로 노래했다. 시인이 든 여섯 가지 즐거운 일은 탈모, 낙치, 시력과 청력의 약화같이 사람을 서글프게 만드는 노화의 징표들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극심한 치통에 시달렸음에도 치아가 다 빠지게 되면 그 고통을 잊어버려도 돼서 마음이 편하다고 읊었다. 통념에 대한 전복적 사유가 인상적이다. 지난 회에 다룬 한유의 ‘낙치’와 백거이의 ‘치락사(齒落辭)’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더 초연하고 유머러스하다.
영화 ‘유스’에서 주인공 밸린저(왼쪽)는 오랜 친구 믹과 전립선 노화로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서로의 처지를 농담거리로 삼곤 한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노화에 대한 이런 관조와 해학을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2015년 작 ‘유스(Youth)’에서도 만나게 된다. 여든이 된 주인공 프레드 밸린저는 은퇴한 작곡가 겸 지휘자로, 60년 지기인 영화감독 믹 보일과 전립선 노화로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서로의 처지를 농담거리로 삼곤 한다. 영화에선 노년을 젊음과 대비시키면서도 노화의 과정을 절망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음악계를 떠났던 밸린저는 끝까지 영화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은 보일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자신의 곡을 지휘하기로 결심한다. 71세의 시인 역시 나이가 들어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기에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의 시를 쓰겠다고 굳게 다짐했다(다섯 번째 수).

늙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시인의 낙치와 밸린저의 전립선 문제처럼 노화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송나라 정호(程顥)는 404종에 달하는 육체의 병은 외부 요인으로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지만 마음을 다잡는 일만큼은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近思錄’, ‘存養’). 마음먹기 따라 노화도 내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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