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을에 홀로 남은 누렁이… 전쟁·재난 속 동물들을 기록한 사람들
전쟁 폐허 속 기약도 없이 남겨진 동물들
영문 모른 채 굶어죽거나 살처분되기도
2차 대전 중 개·고양이 40만 마리 학살
전쟁 한가운데 동물의 삶 기록한 작가들

2022년 2월 24일 새벽 5시 30분.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는 폭파 소리에 잠을 깼다. 폭격이었다. 작가는 바로 어린 두 아이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었다.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나겠다는 슬픈 대책이다. 자신의 팔에도 적었다. 사망하게 되면 식별이 필요하다. 친정엄마와 남편, 두 아이, 개, 고양이와 살던 작가는 그날 이후 지하실에서 지내다가 전쟁 9일이 되는 날 집을 떠났다. 두 아이와 반려견 미키, 가방 하나를 들고서. 계엄령으로 기차에 함께 타지 못한 남편을 두고 오른 기차에는 여자와 아이들만 가득했다.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의 한 아이가 뉴스에서 가족들과 모두 같은 방에서 잔다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저 나라는 다 같은 방에서 자는 모양이지?"
인터뷰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는 잠시 후 깜짝 놀라며 어차피 죽을 거면 가족이 함께 죽기를 바란다는 얘기 아니냐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전쟁은 가족 중 누가 죽고 살아남는지,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생지옥이다.

'전쟁일기'는 올가 작가가 전쟁 시작 후 16일간의 상황을 짧은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전쟁의 시작, 일상의 파괴, 가족을 지키려는 간절함을 담았다. 작가가 이 책을 쓴 것도,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2022년. 그 전쟁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찾아보니 타국에서 평화를 기다리는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고, 작가 곁에는 두 아이와 반려견 미키가 있었다.
전쟁은 모든 사람의 삶을 바꾼다. 전쟁 초기에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이 국경을 넘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한 10대 소년은 반려견이 들어가 있는 이동장을 소중하게 안고 탈출하고 있었다. 소년의 가족이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가기를 기도하면서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반려견이 소년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2025년 국내 공개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다큐멘터리 '전쟁 속 동물(Animals in war)'에는 전쟁이 모두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한 여성은 대형견을 놓치지 않으려 꼭 안고서 간절하게 국경을 넘었다. 전쟁이 곧 끝날 거라고 믿어서 집에 반려동물을 두고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남겨진 개, 고양이는 굶어 죽거나, 박스까지 뜯어 먹고 견디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되기도 하고, 살았지만 공포심에 이상 증상을 보이는 개도 있었다. 동물들이 울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동물 보호소를 만들었다. 반려동물, 야생동물 가리지 않고 돌보고 다른 나라로도 입양을 보냈다. 동물원에 있던 사자, 호랑이, 코끼리 등도 안전한 나라로 갔다. 비슷한 상황일 때 나는 이들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두려움보다 동물에 대한 연민이 큽니다. 미사일도 두렵지 않아요."
"전쟁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동물을 돕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을 리가 없는데 '이렇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 '내가 사는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동물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얻는다. 사실 사람이 동물을 구하는 것 같지만 동물들도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군인들 곁에 동물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군인들에게는 위로였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점점 느는 최악의 기후재난,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등 끊이지 않는 거대 재난은 명분과 상관없이 진행 과정이 다 비슷하다. 일반인과 동물은 딱히 대처할 방법도, 시간도 없어서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원전 폭발 후 동물들을 남기고 떠난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이 그랬고, 모든 전쟁이 그랬다. 그사이 일을 저지른 이들은 머리를 굴리며 손익 계산을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반면 살아있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폐허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 분쟁지역을 취재했던 다큐멘터리 사진 기자 오오타 야스스케는 원전 폭발 사고를 접하고 피폭을 예상하면서도 바로 후쿠시마로 갔다. 고양이 집사여서 한 생명이라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본 것은 지옥이었다. 공동체의 붕괴, 가족의 붕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죄 없는 동물들. 작가는 죽어간 생명들을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면서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에 기록했다.
'그 집에는 개가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 목줄이 풀어져 있으니 어디든 가려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착한 누렁이는 집을 지키고 있었다. 가족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돼지들이 가까이 다가오기에 가져간 개 사료를 주며 기운 차리고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가보니 모두 살처분당했다. 정부는 방사능에 노출된 동물은 모두 처분한다고 했다.'
'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버려져 굶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사체 사이에서 오물에 뒤범벅이 되어 굶어서 죽어가는 곳. 최소한 안락사라도 해주었으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생명들의 죽음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 자들의 청소다. 이 외에도 약자들의 스피커가 되어준 작가들이 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체르노빌 원전 폭발 후 군인과 사냥꾼이 들어가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을 총으로 쏴 죽인 동물 학살을 알렸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는 전쟁에 참전하고도 40년간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군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힐다 킨 작가는 '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을 통해 2차대전 당시 영국인들이 4일 만에 개, 고양이 40만 마리를 학살하는 등 인간의 전쟁에서 지워진 동물 학살의 역사를 기록했고 사랑스럽고, 당당하고, 어른스러웠던 전쟁 중의 동물들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앞으로 더 많은 약자의 삶이 역사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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