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루터'는 잊어라… 한국인 역사학자가 쓴 '종교개혁의 오점'
1008쪽 신간 '종교개혁' 통해 '근대의 종교성' 추적
'타락vs개혁' 틀 벗어나 '16세기 유럽사' 관점서 조망
"현재도 이데올로기화된 종교 범람… 종교인에 추천"

16세기 유럽에서 중세 가톨릭의 폐단에 저항해 일어난 종교개혁은 프로테스탄티즘의 형성과 함께 근대를 열어젖힌 기폭제로 평가된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종교개혁의 신성한 결실로 꼽히고, 그 중심엔 1517년 면죄부 남발을 비판해 '95개 조문'을 발표한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가 있다. 루터가 부르짖은 부패하고 부조리한 교회의 쇄신·개혁·정화,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개혁 서사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실제로는 국가권력이 종교를 매개로 개인을 통제하고 또 다른 배제를 낳는 결과로 이어졌다면? 루터의 영웅적 이미지가 19세기 독일이 통일이라는 민족적 목표를 위해 조성했고 나치 치하에선 '반유대주의자이자 정치적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애국자'의 표상으로 동원됐다면? 우리는 여전히 프로테스탄트 진영을 '성공한 대안 종교 세력'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도서출판 길 발행)은 이런 질문에 대한 고민을 1,008쪽 방대한 분량에 담은 책이다. 영국 버밍엄대에서 영국 중세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서 서양사와 교회사를 가르치는 최종원 교수는 '유럽적 편견이 없는 역사가'를 자처하고 종교개혁에 접근한다. 종파적 구분에서 벗어나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16세기 전후 유럽사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전공인 15세기가 아닌 16세기를 배경으로 종교개혁을 다룬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한국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자본주의 이행이나 근대 국민국가 형성 논쟁이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종교개혁 역시 15세기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종교개혁을 유럽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책에서 특히 강조되는 건 "종교개혁을 '중세와의 단절'이란 전형적 틀에서 벗어나 서술하자"는 것이다. 개혁의 기수인 루터만 해도 농민전쟁과 유대인 문제에 반동적 입장을 취하며 중세 사회문화 풍조에 얽매여 있었지만 "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보편적 발전 단계로 일반화한 '근대주의의 진보 서사'가 역사 서술에 깊이 작용하면서 종교개혁에 규범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최 교수는 지적한다.
이처럼 종교개혁에 사회사의 렌즈를 비추려는 시도는 2차대전을 계기로 근대의 성격 자체에 의문이 제기된 1960년대부터 주류적 경향으로 자리 잡았지만, 사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여러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는 보다 일찍이 포착됐다. 루터교가 유럽의 많은 지역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종파 갈등으로 인한 전쟁과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기 때문.

무엇보다 종교개혁은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 종교성을 향유하던 시대'에서 '개별 국민국가의 군주가 종교를 결정하는 시대'로 이행을 촉발했다. 다시 말해 국가권력의 강화에 일조했다. 최 교수는 "종교개혁 이후 종교는 국가권력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며 "'근대는 자유의 확대와 동시에 규율사회의 심화를 동반했다'는 미셸 푸코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고 밝혔다.
21세기 탈종교화 시대에 우리가 굳이 종교개혁에 주목할 필요는 무엇일까. 최 교수는 "오늘날에도 국가주의와 결합한 '이데올로기화된 종교'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한국 사례를 언급하기도 한 그는 "한국 기독교의 보수주의 역시 종교와 권력, 집단 정체성이 결합해온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처럼 종파적 신념에서 벗어난 '근대 다시보기'를 강조하는 최 교수이지만, 일견 아이러니하게 그 역시 개신교 신자다. 최 교수는 "개신교적 서사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서사에 깊이 접근할수록 종교개혁을 선악 대립이란 도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단순화된 것인지 분명하게 느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추천 독자를 묻자 최 교수는 '연구자'와 '종교인'을 들었다. "해외에선 해석사의 변화가 이미 진행됐지만 국내에선 논의 자체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요. 서양 중세와 근대를 연구하는 역사학도나 사회학자, 근대성을 새롭게 이해하고 기저를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문제제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종교인들에겐 종파적 틀을 성찰하고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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