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철새는 날아가고 / 양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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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는 날아가고는 이채로운 시편이다.
화자는 어느새, 란 철새라고 말한다.
철새는 철을 따라서 살 곳을 바꾸는 새다.
철새는 날아와 열두 달 나뭇가지 있는 대로 흔들며 도대체 왜 이러고 있니, 라면서 가슴을 콕콕 쪼아댄다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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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란 철새/ 섣달 초하루 날아와// 열두 달 나뭇가지 있는 대로 흔들며/ 도대체/ 왜 이러고 있니/ 가슴 콕콕 쪼아댄다// 이럴 걸 저럴 걸/ 또 그럴 걸 중얼대며/ 하나라도 이룰까, 기를 쓰고 울다가/ 그믐날/ 새해를 향해/ 날아간다, 어느새
『정음시조』(2019, 창간호)
「철새는 날아가고」는 이채로운 시편이다. 착상이 새롭다. 새해가 왔다 싶었는데 어느새 3월 말을 지나고 4월이다. 한 해 열두 달 중에 석 달을 보낸 것이다. 아직도 초등학교 다닐 적의 추억들이 생생한데, 어느덧 인생 후반기다. 세월을 이길 길이 없기에 저속노화라는 신조어도 나온 듯하다. 서서히 나이 들어가자는 주장이다.
화자는 어느새, 란 철새라고 말한다. 철새는 철을 따라서 살 곳을 바꾸는 새다. 후조(候鳥)다. 철새는 날아와 열두 달 나뭇가지 있는 대로 흔들며 도대체 왜 이러고 있니, 라면서 가슴을 콕콕 쪼아댄다고 노래한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로 고민을 많이 하고 때로 끝없이 번뇌한다. 오래 망설이다가 그만 때를 놓치기도 하고 그로 말미암아 자책을 일삼기도 한다. 결단력이 없어 머뭇거리다가 이것도 저것도 이루지 못하여 속을 썩이기도 한다. 사는 일이 만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럴 걸 저럴 걸 또 그럴 걸 중얼댄다. 그 하나라도 이룰까 기를 쓰고 울다가 그믐날 새해를 향해 날아간다. 어느새 그리된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가 일생인 셈이다. 무심코 보내는 하루가 모이고 모여서 일생을 이루니 그 하루를 보람있게 보낼 일이다.
「그 집」이다.
개망초 무성한 당산나무 아래 빈집/ 대숲이 어제처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윤나던 쪽마루는 삭아 기우뚱 낯설다// 사람도 집도 사람 온기로 산다고/ 그 온기 그리운가 흙벽도 부슬부슬/ 정지문 열어놓은 채 누구를 기다리나// 처마 밑 돌절구는 방아 찧던 손을 놓고/ 빈 적막 덩그러니 시렁대 꽃이불 한 채/ 자굴산 노을빛 들여 사랑방을 꿈꾼다.
「그 집」에는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다. 텅 비어 있기에 온기가 없다. 사람이고 집이고 온기로 사는데 사람이 기거하지 않으니, 집은 집의 구실을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삭아간다. 흙벽도 부슬부슬해지고 정지문은 열려 있지만 발걸음은 전혀 없다. 개망초만 무성할 뿐이다. 대숲만이 무심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빈집은 점점 묵어가면서 폐허에 이르게 될 것이다. 피할 길이 없다. 사람이 다시 기거하지 않는 이상 그 집은 낡아간다. 자굴산 노을빛 들여 사랑방을 꿈꾸지만 그것은 끝까지 꿈일 따름이다. 그 집을 찾게 되면 상실감만 더할 터다. 그렇기에 개망초 무성한 당산나무 아래 빈집은 허허한 적막 한 채와 같다. 더는 머물 수 없는 곳이어서 애틋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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