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딸의 손바닥 그림·100년 전 안동 풍경 생생히

김한수 기자 2026. 4. 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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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기록관, 홀·웰본 선교사와 전택부 자료 7000점 온라인 공개
로제타 홀 일기에 수록된 딸 에디스의 손바닥 그림. 3살 생일 때 손바닥을 대고 둘레를 펜으로 그린 그림. 로제타의 딸인 에디스는 이 그림을 그린 몇 달 후 이질로 서울에서 세상을 떠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역에 잠들었다. /양화진기록원 제공

일기장에 아기 손바닥을 대고 둘레를 따라 펜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 설명엔 ‘3살 에디스의 손(Edith’s hand, 3 years old)’이라고 적혀 있다. 다른 사진엔 여자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담은 사진 8장이 격자형으로 배치돼 있고 아래엔 ‘아름다운 3년의 모습들(Three Beautiful Years)’이라고 적혀 있다.

손과 사진의 주인공은 에디스 홀. 1895년 1월 윌리엄 홀·로제타 홀 부부의 딸로 태어나 3살이 막 지난 1898년 5월 이질로 세상을 떠난 아기다. 일기를 쓴 주인공은 로제타 홀(1865~1951) 여사. 최초의 여성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온 그는 남편 윌리엄을 1894년 청일전쟁 와중에 선교지인 평양에서 병으로 잃었는데, 유복녀인 에디스마저 잃게 된 것. 딸에 대한 사무치는 사랑과 애틋함이 일기장과 사진 앨범에서 생생히 전해진다.

로제타 홀의 수첩. /양화진기록관 제공

19세기말부터 1970년대까지 선교사와 개신교 인사들이 수집한 귀한 자료들이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양화진기록관은 최근 로제타 홀 가족과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웰본(1866~1928·한국명 오월번) 선교사, 그리고 ‘오리(吾里)’라는 호로 잘 알려진 전택부(1915~2008) 선생의 유족이 기증한 자료 7000여 점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 공개하고 있다.

안동 지역에서 사역한 웰본 선교사의 성경과 안경. /양화진기록관 제공

양화진기록관은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과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의 관리와 운영을 위해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이 2005년 설립한 기관. 2012년 전택부 선생의 유품을 시작으로 2013년 로제타 홀 선교사와 웰본 선교사 가문의 유품과 기록이 기증됐다. 기록관은 그동안 분류와 사진 촬영,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거쳐 이번에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택부 선생의 친필 원고와 필기구. /양화진기록관 제공

이번에 온라인에 공개된 자료는 유품, 편지, 일기, 사진, 보고서, 친필 원고 등이다. 웰본 컬렉션에는 명성황후 장례식 사진과 1910년대 초반 안동선교부 사진, 1947년 해인사 설경(雪景) 등이 포함됐다. 전택부 선생 컬렉션에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보존 운동과 YMCA 등 선생이 참여한 시민사회 운동 관련 자료가 대거 포함됐으며 존 로스와 서상륜 등이 번역한 ‘누가복음’, 1927년 월남 이상재 선생 사회장(社會葬) 사진도 포함됐다. ‘성서조선’ 1942년 3월호에 실린 김교신의 글 ‘조와(弔蛙)’ 원문 스크랩도 볼 수 있다. 김교신은 이 글에서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은 개구리를 보며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라고 적어 조선 민족의 불굴의 생명력에 비유했다. 이 글을 문제 삼은 일제에 의해 ‘성서조선’은 폐간됐고 김교신 등은 투옥됐다. 글의 원문 옆에는 ‘김교신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김교신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자료는 홈페이지(yanghwajinarchives.org)에서 검색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묘원에 안장된 모든 선교사에 대한 자료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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