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람의 법스타그램] [6] 법조인끼리만 아는 MBTI의 비밀

서아람 변호사·前 검사 2026. 4. 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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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법복을 입은 신임검사가 주먹을 굳게 쥐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사님, T죠?”

사건 상담 중 의뢰인이 갑자기 던진 질문이다. 검사 출신이냐, 이런 사건을 많이 해봤느냐, 승소율이 어떠냐 같은 질문도 아니고 MBTI라니. 옆에 있던 아내가 “어휴, 이 화상아. 지금 그게 왜 궁금해!”라며 남편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렸지만, 의뢰인은 계속 궁금해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T 같다며, 자기는 T들과는 영 상성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어딜 가나 MBTI 이야기다. 소개팅에서도 나이보다 MBTI를 먼저 묻고, 자기소개서에도 당연하다는 듯 MBTI를 쓴다. 오죽하면 ‘A 기업에서는 어떤 어떤 유형을 선호하고 어떤 어떤 유형은 기피한다’며 ‘신입사원 공채에 유리한 MBTI, 숨겨야 할 MBTI’ 설까지 돌겠는가.

MBTI를 구성하는 네 글자 중에서도 T와 F의 차이는 극명하다. 이성적, 논리적, 분석적이며 원리 원칙과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T. 추상적, 포괄적, 감성적이고 타인의 감정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F. 사실과 증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철저히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법조인 하면 T와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의사나 회계사, 세무사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50여 명의 현직 변호사를 상대로 MBTI를 조사해 본 결과, T가 70%를 차지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물론 변호사가 그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T적인 성향이 필요하다. 사건 기록을 검토했을 때, 사건 당사자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슬픔과 아픔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지금 당장은 쓴소리를 가차없이 내뱉더라도, 장기적으로 사건에 있어서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게 진짜 돈값 하는 변호사다.

어느 누군들 사람 면전에 대고 “이 사건은 집행유예 가능성은 1%도 없으니, 변호사에게 돈을 낭비하지 말고 신변 정리를 하세요” 같은 말을 던지고 싶겠는가. 아니면 가혹한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에게 “시간이 오래 지났고 증거도 전혀 없어서 고소해 봤자 처벌할 가능성이 없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망 없다”고 잘라 말하고 싶겠는가. T 중의 T인 나조차도 그런 말을 할 때면 천하의 악역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감정에 휩쓸려선 안 된다. 아무리 의뢰인의 사정이 딱해도, 업무 수행에서의 효율성이나 중립성을 해친다면 그 마음은 단호히 지워야 한다. 누가 봐도 억울해 보이는 의뢰인들도 종종 있다. 범죄를 저지른 건 맞지만 그 경위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경우도 있다. 의뢰인은 그런 사정을 법정에서 2박 3일간 하소연하고 싶어 한다. 아무리 그 심정이 이해가 가도, 그게 도움이 안 된다면, 의뢰인의 입에 단호하게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법조인들끼리만 아는 비밀이 하나 있다. 우리 중에는 사실 F인데 T인 척하는 ‘샤이F’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이들을 알고 있다. 법정에선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아이를 데려오는 피고인이 있으면 다정하게 말투를 바꾸는 A 판사님. 조사실에서는 살벌하게 피의자를 추궁하지만, 변사 현장에 다녀올 때마다 남몰래 집무실 문을 잠그고 울던 B 검사님. 수임료를 떼먹은 의뢰인이 뻔뻔하게 상담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돈이나 달라고 타박하면서도 꼬박꼬박 대답해주는 C 변호사님.

MBTI로 세상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법정에서는 T가 필요하지만, 사건을 맡는 순간 변호사는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F’ 법조인들이, 조용히 T의 가면을 쓰고 일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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