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만 TV브라 착용 돕다 혼나” 백남준 조카 하쿠타 켄
작품 관리 백남준 에스테이트 대표
타계 20주년 협력 전시 위해 방한
“좋은 TV 사줘라” 멋진 삼촌 추억

“삼촌(백남준)과의 추억은 산책으로 점철돼 있어요. 매일 뉴욕 소호에서 차이나타운까지 함께 걸었죠. 그때마다 삼촌은 신문 가판대에 들려 뉴욕타임즈 아침판을 사곤 했는데, 어느날 ‘백남준’이란 이름이 실리자 ‘뉴욕타임즈에 이름 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며 웃으셨죠.”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조카 하쿠다 켄(75)이 1일 백남준 개인전 ‘백남준: 리와인드 / 리피트(Rewind / Repeat)’가 열리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 APMA 캐비닛에서 이렇게 밝혔다. 백남준 서거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그는 한국 취재진들 앞에서 삼촌을 추억하며 내내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전 삼촌을 정말 좋아했어요. 저한테 TV를 많이 보라고 하셨거든요. 심지어 엄마에게 ‘TV를 제일 좋은 걸로 사줘라’라고 했으니까요, 하하.”

백남준의 큰형 백남일의 장남인 하쿠다 켄은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망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TV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무엇보다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을 물려받은 인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백남준 유품을 관리하는 재단 ‘백남준 에스테이트’(Estate) 대표를 맡고 있다.

백남준 에스테이트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협력 전시를 펼치는 건 25년 만이다. 글로벌 대형 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와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는 국내 미공개작을 포함해 ‘미디어 샌드위치’(1961~1964)와 같은 초기작, 그리고 ‘골드 TV 부처’(2005) 등 말년 작품까지 총 11점을 선보인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1982년 작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는 일반적인 우편함 모습을 하고 있지만, 편지를 넣는 구멍에 화면이 있어 영상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니 한국 어느 방송사의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즉, 영상은 백남준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작품이 설치된 지역에서 송출하는 실시간 방송이다. 하쿠다 켄은 이를 현재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백남준은 항상 최신 기술을 작품에 활용하길 좋아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유한 여러 미술관에서 최근 겉모습은 보존하면서 내부는 최신 기술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퍼포먼스 작가 샬럿 무어만의 사진이 한쪽 벽을 가득 채웠고, 그 옆엔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가 진열돼 있다. 브래지어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단 작품으로, 무어만을 위해 백남준이 제작했다. 1969년 무어만은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창조적 매체로서의 TV’ 개막 퍼포먼스에서 이를 처음 착용한 뒤 첼로 연주를 했다. 첼로 연주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텔레비전 화면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장면은 ‘백남준’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각인돼 있다.
하쿠다 켄은 이 작품 앞에 서더니 “재밌는 사연을 품은 작품이다”라면서 무어만이 TV브라를 착용하는 것을 자신이 도운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그는 18살. 이를 나중에 알게 된 백남준은 매우 화가 나 무어만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하쿠다 켄은 “어린애에게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셨다. 삼촌은 꽤나 엄격했다”면서도 “사실 나는 정말 괜찮았다”며 웃었다.

백남준의 대표 연작인 ‘TV 부처’ 중 하나인 ‘골드 TV 부처’(2005)도 나왔다. 금박을 입힌 채색 청동 불상이 TV 앞에서 명상을 한다. 그 표정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겨 불상 앞 TV로 송출되는 작품. 고대의 영성과 현대 미디어, 동양과 서양의 사유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와 함께, 중고 시장과 상점에서 수집한 빈티지 라디오들을 활용한 ‘베이클라이트 로봇’, 조각된 목재 회화 ‘오케스트라’ 등도 볼 수 있다.
앞으로 6년 뒤면 백남준 탄생 100년이다. 이를 기리는 대형 전시 개최 여부에 대해 묻자 하쿠다 켄은 “현재진행형은 없으나 한국에서 열린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면서 “오늘 이 장면을 삼촌이 봤다면 정말 기뻐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 일의 목표는 재단이 사라지는 것이예요. 되도록 많은, 의미있는 장소에 백남준의 작품이 전시·소장되길 바라요. 그리 되면 재단의 업무가 필요 없겠지요. 그게 제 꿈입니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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