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운명을 견디는 마음, 삶을 다시 묻다
부딪히고 풀어지는 삶의 이치
원망을 넘어서는 태도의 힘

운명(運命)이란 무엇일까?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한다. 당신의 운명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운명에 대한 자세가 중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까. '운명에 순응하고, 운명에 맡겨야 한다'고들 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맡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말이다.
도종환의 '운명'이란 시에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시적 화자는 어떤 상황이든 원망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들판의 풀들은 바람을 원망하지 않고/ 산벚나무는 구름을 원망하지 않는다'에서 보듯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의 환경은 늘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변하는 것은 기본값이고 삶을 위협하는 것들이 늘 존재한다. 위협하는 것들로 인해 '부딪치고 얽히고/ 상처받고 풀어지는/ 그게 네 운명이었다'라고 한다. 그래서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처만 받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인해 풀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풀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견뎌야 할까. 그 견디는 시간 동안 원망하면서 에너지를 쏟아내고 나면 앞으로 나갈 원동력을 잃는다.
앞으로 나갈 힘을 잃어버리면, 다시 운명의 굴레에 갇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일어나는 역경들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비축한 동력으로 선순환의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현실은 '산불이 온 숲을 휩쓸고/ 산사태에 산허리 끊어져/ 다 쓸려 내려간 듯한 밤도 있다'. 그래도 시적 화자는 '원망하지 마라'고 한다. 이런 현실이 곧 삶이니까. 세상은 음과 양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불행은 도처에 널려 있다. 불행의 이유는 일어나는 사건의 수만큼 많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울다가 울다가 세상을 보낼 것인가. 담담한 태도로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열중하며 살 것인가는 결국 선택이다. 선택을 강요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자 받아들일 것이고, 원망의 회로를 돌릴 자는 또 그 바퀴를 굴리며 세상을 살 것이다.
도종환의 시 '운명'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운명이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한다.
운명
바람을 원망하지 마라
구름을 원망하지 마라
들판의 풀들은 바람을 원망하지 않고
산벚나무는 구름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그늘지게 살았지만
구름 때문에 네가 살아온 땅이
사막으로 변하지 않았다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
달빛을 원망하지 마라
산불이 온 숲을 휩쓸고
지나간 듯한 날도 있었고
산사태에 산허리 끊어져
다 쓸려 내려간 듯한 밤도 있었지만
부딪치고 얽히고
다 쓸려 내려간 듯한 밤도 있었지만
부딪히고 얽히고
상처받고 풀어지는
그게 네 운명이었다
원망하지 마라 사람을
원망하지 마라 하늘을
- 도종한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2025, 열림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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