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솔라시도 대한민국 에너지 심장으로 솟구치다 <1>
AI·RE100 전초기지 상전벽해
70년대 간척 사업 식량기지로 태동한 부지
여의도 면적 7배 산이면 일대 2090만㎡
J프로젝트 야망, 금융위기에 물거품 위기
대기업 떠난 자리 BS그룹의 사투와 집념
정부, 축구장 3000개 규모 부지 활용


전남 목포에서 영암호를 가로지르는 솔라시도 대교를 건너면,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질적인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 일대 2090만㎡(632만평). 서울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이 광활한 대지는 지금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과거 섬과 갯벌이 어우러진 남도의 땅끝이었던 이곳은 이제 ‘솔라시도(Solarasido)’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과 AI 데이터센터의 메카로 탈바꿈하고 있다. 1970년대 식량 자급을 위해 바다를 메웠던 삽질 소리가 5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첨단 산업의 박동으로 치환되는 현장이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바다를 땅으로 바꾸다=솔라시도의 역사는 대한민국 고도성장기의 상징과도 같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산강 유역 종합 개발사업’이라는 거대 국책 사업을 밀어붙였다. 당시 농업용수 확보와 농지 확장은 국가 존립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20년간 이어진 이 대역사는 영암군 삼호면에서 해남군 산이면을 거쳐 화원면을 잇는 거대한 방조제를 건설하며 서남해안의 지도를 완전히 바꿨다. 3개 군, 11개 읍면에 걸친 총 190k㎡의 간척지가 조성됐고, 이는 현재 세종시 전체 면적의 40%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당시 해남 산이면 구성리의 갯벌을 메우던 인부들은 이곳이 수십 년 뒤 인공지능(AI)과 태양광 에너지가 결합한 ‘꿈의 도시’가 될 것이라곤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오직 쌀을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겠다는 일념으로 쌓아 올린 방조제는 훗날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든든한 보루가 됐다. 지금도 산이면 구성리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준공 기념탑은 당시 흘린 땀방울이 이 거대한 도지의 초석이 되었음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J프로젝트’의 야망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2000년대 들어 농업 생산 위주의 간척지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농산물 개방과 농촌 인구 감소로 인해 광활한 간척지는 점차 유휴지로 변해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는 서남해안을 동북아 대표 관광·레저 도시로 조성하겠다는 이른바 ‘J-프로젝트(서남해안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기획했다.
당시의 구상은 화려했다. 인천 송도 개발의 주역이었던 글로벌 도시 설계 전문가들이 가세했고, 싱가포르와 홍콩에 버금가는 해양관광도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사업 초기, 정권 실세의 연루설이 불거진 ‘행담도 의혹 사건’ 등으로 추진 동력에 급제동이 걸렸고, 설상가상으로 2007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사업의 숨통을 조였다.
투자 환경이 악화되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대림산업(현 DL이앤씨), 금호건설, 롯데건설, 한화, 한국관광공사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공기업 11곳이 약속이라도 한 듯 사업권을 반납하고 철수했다. 언론은 연일 ‘미완의 국책사업’‘좌초된 서남해안의 꿈’이라며 비판적 기사를 쏟아냈다. 수조 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거대 프로젝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지역 사랑 일념으로 중견기업의 고독한 집념, 멈췄던 시계를 다시 돌리다-모두가 등 돌린 황무지에 홀로 남은 것은 중견 건설사인 보성그룹(현 BS그룹)이었다. 당시 재계에서는 “공룡들도 포기한 사업을 중견기업이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토지 매입 대금과 초기 기반 조성 비용 등 수천억 원의 리스크는 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막대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BS그룹은 포기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정부와 지자체를 설득하고, 인허가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당시 경영진 사이에서는 “이 땅은 국가의 자산이자 지역의 미래다. 우리가 포기하면 전남의 꿈은 영영 잊힐 것”이라는 비장한 결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고의 시간 끝에 2013년 12월, 마침내 새로운 도시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와 박준영 전남지사가 참석한 자리에서 도시의 새 이름 ‘솔라시도(Solarasido)’가 공표됐다. 태양(Solar), 바다(Sea), 대지(Do)의 의미를 결합한 이 이름은, 단순히 노는 도시를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의 정체성을 담았다. 2018년에는 드디어 공유수면 매립 준공과 소유권 등기를 마쳤다. 지적도에도 존재하지 않던 유령의 땅이 대한민국 영토로 정식 편입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AI와 에너지가 만난 ‘RE100의 성지’로=현재 솔라시도는 과거의 아픔을 뒤로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에너지 경제 도시’로 부상했다. 특히 현 정부의 ‘AI 3대 강국’ 도약 정책과 맞물려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솔라시도의 가장 큰 강점은 ‘에너지 자립’과 ‘직접 공급’이다. 수도권은 현재 데이터센터 과포화와 전력 계통 포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반면 솔라시도는 단지 내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인근 데이터센터에 직접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이는 글로벌 IT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RE100을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정부는 이곳에 축구장 3000개 규모의 부지를 활용해 ‘국가 AI 컴퓨팅센터’와 대규모 데이터센터 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여기에 자율주행 셔틀, 스마트팜, 친환경 주거 단지가 결합된 정주 인프라까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과거 식량 자급을 위해 갯벌을 메웠던 땅이, 이제는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을 지탱하는 ‘데이터 식량 기지’로 진화한 셈이다.
◇끝나지 않은 여정, 국토 균형발전의 이정표=솔라시도의 성공은 단순히 한 기업의 성취를 넘어 대한민국 국토 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을 타개할 유일한 해법이 에너지와 일자리의 지방 분산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솔라시도가 보여주는 ‘에너지-산업 일체형 도시’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거대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광역 교통망 확충과 인근 광주·목포권과의 연계성 강화, 그리고 우수한 인재들이 머물 수 있는 정주 여건의 질적 향상이 필수적이다.
서남해안의 차가운 바닷바람과 대기업의 외면, 정치적 부침을 온몸으로 견뎌낸 솔라시도. 50년 전 조상들이 일군 간척의 역사는 이제 인공지능과 재생에너지라는 새 옷을 입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다.
해남 산이면의 광활한 대지 위에는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기적을 만든다”는 명제가 증명되는 중이다. 전남광주특별시와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심장이 될 솔라시도의 대서사시는 이제 막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BS그룹 관계자는 “서남해안 간척지에서 출발한 척박한 황무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너지 미래도시가 되기까지, 솔라시도는 수십년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너지 미래도시로서 수도권 전력 집중과 송전망 지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라시도만의 ‘에너지 자립’ 강점은 기후·에너지라는 국가적 난제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밝혔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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