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기차가 오지 않는 간이역에서

신유진 작가 2026. 4. 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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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드르(Attendre)’는 ‘기다리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아드-텐데레(ad-tendere)’로, ‘~을 향해 몸을 뻗다’라는 역동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말의 ‘기다림’이 정적이고 수동적인 인내를 연상시킨다면, 아탕드르는 무언가를 향해 몸과 마음을 뻗는 능동적인 움직임을 전제한다. 즉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자신을 확장하는 유연한 운동인 셈이다.

인구 소멸 지역인 우리 동네에서 쓸쓸함이 차오를 때면, 나는 춘포역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늘 두셋 모여 사진을 찍거나 간이역의 정취를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나들이객의 화사한 옷차림과 들뜬 목소리는 정체된 마을에 작은 생기를 불어넣고, 그 활기는 이내 내게도 전해진다. 이제 이곳에서 즐겁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1914년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세운 이 목조 역사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기다림을 목격해왔다. 1970~1980년대만 해도 통학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던 이곳은 2011년 전라선 선로가 직선화되며 폐역이 됐다.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목적지에 닿기 위해 기차들이 춘포라는 간이역을 생략한 채 달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곳은 속도가 지배하는 ‘직선의 세계’에서 비켜난 ‘곡선의 세계’다.

이 폐역에서 내가 기다리는 것은 스쳐가는 사람들, 철길 위를 노니는 고양이, 혹은 적막을 채우는 바람 같은 것들이다. 오늘은 만경강을 지나 마을 골목을 훑고 도착할 봄소식을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언제 올지 모르는 것’을 고대하는 초조함이 아니다. 역사 구석에서 먼지 섞인 햇살이 춤추는 모습이나, 담벼락에 기대어 피어난 들풀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종의 ‘상태’에 가깝다. 아름다운 것이 이미 가까이 있음을 알기 위해 그쪽으로 마음을 뻗어보는 것 또한 기다림이 아닐까.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오지 않고 뜻밖의 손님을 맞이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진짜 좋은 선물은 그 ‘뜻밖의 것’이다. 그런 것은 우리를 직선의 질주가 아닌, 곡선의 산책으로 안내하니까. 최단 거리로 내달리는 대신 풍경을 천천히 껴안는 굽이진 삶. 조금 더 큰 원을 그리며 나아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세상을 품게 된다.

직선의 세계가 ‘도착’이라는 단 하나의 점을 향해 돌진한다면, 곡선의 세계는 ‘머묾’이라는 넉넉한 면적을 가진다. 기차는 오지 않지만, 나는 이 곡선의 시간 속에서 기다림을 껴안는 법을 연습한다. 어쩌면 내 앞에 도착한 가장 귀한 ‘뜻밖의 것’은, 오지 않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다시 좋아하는 것을 향해 몸과 마음을 뻗는 나 자신이 아닐까.

춘포역 앞에 서서 옛 풍경을 그린다. 기차를 기다리던 학생들에게 이 역은 미래를 향해 몸을 뻗던 활기찬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녹슨 철길만이 누워 있지만, 이 풍경 또한 속도에서 해방되어 대지의 일부로 안착한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오래 바랐던 것들은 기차처럼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패나 뒤처짐이라 부르지 않겠다. 이 기다림 자체가 내게는 능동적인 유희가 되었으니까. 그러니 이 곡선 위에서라면 더 오래 기다려도 좋겠다.

이제 고양이가 온다. 바람이 분다. 봄이 손을 뻗는다.

신유진 작가

신유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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