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잠과 꿈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2026. 4. 1. 19: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거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긴 시간, 우리는 언뜻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상태로 인생을 낭비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외부 세상을 인식하지 못해 공격에 취약하고, 음식을 먹지도, 책을 읽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바로, 매일 밤 잠잘 때 우리 모두 겪는 일이다. 잠도 신기한데 꿈은 더 기이하다. 내 몸은 여전히 침대 이불 속에 머무는데, 꿈속의 나는 싸우고 뛰고 날아다닌다. 게다가 내가 하늘을 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사실 자체를 꿈속에서는 깨닫지 못한다.

지렁이도 일종의 잠을 잔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잠은 생명 진화의 과정에서 상당히 이른 시기에 출현했다. 거의 모든 동물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잠을 잔다면 잠이 제공하는 생물학적 이점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밤새운 다음날 느끼는 강한 수면 욕구도 잠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맞다. 잠이 부족하면 우리 몸에 온갖 문제가 생기며 극단적 수면 박탈은 치명적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잠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전혀 시간 낭비가 아니다.

꿈꾸는 사람의 감긴 눈을 보면 눈꺼풀이 움찔움찔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빠르게 눈동자가 움직이는 수면 단계가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 눈동자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수면이 비렘수면이다. 밤에 잠들어 다음날 아침 눈뜰 때까지, 건강한 사람은 90분 정도 이어지는 수면주기를 5~6회 반복한다. 수면주기가 시작되면 잠이 점점 깊어진다. 깊은 비렘수면에 도달한 다음에는 점점 잠이 얕아지다 마지막에 렘수면이 등장하는 것이 전형적인 한 번의 수면주기다.

잠든 직후의 수면주기에는 깊은 비렘수면이, 기상 직전의 수면주기에는 렘수면의 비중이 크다. 스마트워치로 내 수면 패턴을 살펴보니 잘 알려진 일반적인 수면 패턴과 비슷했다. 깊은 비렘수면이 줄고 각성 상태가 자주 발생하는 등, 수면의 질이 하락하는 노년의 전형적인 증상을 나도 예외 없이 보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렘수면 단계의 꿈을 꿀 때 우리 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몸의 근육으로 이어지는 운동 신경 경로가 차단된다. 꿈에서 내가 누군가를 공격할 때 실제로도 옆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을 공격하면 큰일이다. 우리 뇌는 이런 위험을 피하려 꿈꿀 때 몸의 움직임을 막는다. 뒤통수 쪽 시각 피질은 강한 활성을 보여준다. 직접 눈동자를 통해 외부의 정보가 들어온 것이 아닌데 꿈속의 나는 여러 장면을 시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잠잘 때 나는 보지 않고도 보는 셈이다.

또한, 우리 뇌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에 관여하는 부위인 이마 쪽 전전두엽의 활성은 줄어든다. 꿈에서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도, “어, 이상한데. 날개가 없는 내가 어떻게 날지?”라는 의구심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렘수면 때 일어나는 운동 신경 경로 차단과 전전두엽 활성 저하로, 가위눌림과 간혹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외계인 납치 경험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이지 못하니(운동 신경 경로 차단), 어떤 존재가 나를 짓누르거나 묶어놓았다는 비논리적인 판단(전전두엽 활성 저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면은 정말 중요하다. 잠은 우리 몸을 회복시켜 다음날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뇌에서는 새로운 기억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고 전날의 경험을 넓은 맥락 안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알고 있는 여러 지식 사이에 새로운 연결을 형성해 놀라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도 수면 중에 일어난다.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푹 자고 일어나면 놀라운 해결책이 떠오르곤 하는 이유다.

꿈은 또 일종의 심리 치료 기능도 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기억해야 이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고통 자체가 기억과 함께 끊임없이 다시 떠오른다면 정말 끔찍한 일일 수 있다. 어른이 되어 돌이켜보면 어려서의 나쁜 경험은 내용은 기억해도 심리적 고통의 강도는 그때보다 훨씬 줄여 기억한다. 잠과 꿈은 중요한 경험의 내용은 기억하되 고통의 강도는 줄인다.

지금까지 매슈 워커의 책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의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혹시 일이 많아 잠을 줄여야 한다고 믿었다면 거꾸로 생각하라고 저자는 당부한다. 당신이 낮에 일을 효율적으로 모두 마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지난밤 잠이 부족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충분한 잠은 우리 삶을 건강하게, 현명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