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풀을 만지라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2026. 4. 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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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터치 그라스(Touch grass), 한때는 인터넷에서 상대를 향해 던지는 가벼운 농담이었다. 너무 온라인에만 몰입하지 말고, 밖에 나가 풀이라도 만지라는 뜻. 그런데 이 말이 어느 날, 대학의 수업 속으로 들어왔다. 싱가포르의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College(이하 NUS 칼리지)는 '터치 그라스 주간'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화면을 내려놓고 세계를 만져보라고 제안했다. 노트북 대신 종이 교재를 펼치고, 키보드 대신 손으로 글을 쓰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 그들은 기술을 거부하거나,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 이런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술이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점유하고, 주의를 어떻게 끌어당기며,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잠시 멈추어 돌아보려는 시도였다. 

터치 그라스 주간의 핵심 행사로 NUS 칼리지는 지난 1월 28일 '제로 테크 챌린지(Zero Tech Challenge)'를 운영하였다. 이날 학생과 교수진은 24시간 동안 긴급 상황이나 필수적 경우를 제외하고 이메일, 파워포인트,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등 화면 기반 활동을 최소화하도록 안내받았다. 처음에는 모두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문득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 인터넷 자료를 검색하고 싶은 마음 등 화면이 사라지자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생겼고, 대화는 더 길어졌으며, 수업에 머무는 시간이 깊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자신이 얼마나 자주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디지털을 줄인 것이 아니라, 디지털을 사용하는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경험이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문득 최근 강의실의 풍경이 겹쳐진다. 아이들은 점점 더 능숙하게 화면을 넘기고, 정보를 찾고, 결과를 정리한다. 실제 종이책이나 종이노트 보다는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편다. 불필요한 종이 사용을 줄이고, 시간을 더 알차게 활용하는 등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최근의 강의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만지는 경험'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으로 종이를 넘기며 느끼는 질감, 연필이 종이를 긁으며 남기는 미세한 떨림, 서로의 표정을 읽으며 이어지는 대화 같은 것들 말이다.

초등학교에서 미각, 후각, 시각을 포함하여 촉각 즉 만지는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과목은 실과다. 실과 수업에서 아이들이 바느질을 배우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바느질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자신이 입을 옷을 마련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바늘을 잡은 손이 서툴러 몇 번이고 실을 놓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늘에 꿰인 실이 천을 통과하며 이어지고, 아이의 손은 조금씩 리듬을 찾아간다. 그때 배움은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손과 몸 전체에서 일어난다. 이해는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스며든다. 이런 경험은 화면 속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화면은 결과를 빠르게 보여주지만, 과정 속에서 몸이 배워야 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넓게 배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조금씩 양보해 온 것은 아닐까.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지만, 무엇인가를 천천히 익히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생각은 점점 더 빠르게 정리되지만, 오래 붙들고 머무는 힘은 약해지고 있다. 

그래서 '풀을 만지라'는 이 단순한 말이 낯설게 다가온다. 그것은 단지 자연으로 나가라는 권유가 아니라, 세계와의 접촉을 회복하라는 요청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끼고, 타인과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배움은 정보를 획득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도 가끔은 화면을 닫아야 할 순간이 있다. 설명을 줄이고, 속도를 늦추고, 손을 쓰게 하는 시간. 아이들이 스스로 만지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그 느린 시간을 허락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배움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풀을 만지는 일처럼 사소하고, 그래서 더욱 근본적인 일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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