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나 되는 호남 ‘의향’ 온전히 되새긴다

한경국 2026. 4. 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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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한국학호남진흥원 공동기획
남도의병열전 프롤로그
2000년 전 마한시대 정신부터
12·3 불법계엄, 내란 극복까지
이순신의 ‘약무호남 시무국가’
단순한 찬사 아닌 역사로 증명
영웅 신화에 가려진 민초 초점
분절된 기억 넘어 승리 재조명
의병과 수군 등 호남의 얼굴들
피와 땀 흘린 이들 기록 낱낱이
무명동학농민군 묘역 장흥석대들 1699명 무멍열사가 모셔져 있다. 현재 전라남도는 이 묘역을 성역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가 마침내 ‘전남광주특별시’로 새롭게 탄생한다. 한 뿌리 정통성을 지녔음에도 ‘전라도 정신’이니 ‘광주 정신’이니 하며 이를 구분하려 한 소모적인 논쟁은 과거의 유물이 됐다.

우리 전남, 광주를 의로운 고장이라 해 ‘의향’이라 부른다. 하지만 ‘의향’이라는 말은 충청도에서도 사용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사용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전남·광주 지역민이 유독 ‘의향’이라는 단어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나라가 위란(危亂)에 처해 있을 때면, 분연히 일어나 이를 극복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일찍이 언급한 이야기는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완도 약산에 있는 항일운동 기념탑.

대한민국은 외세에 짓밟히고, 분단으로 얼룩진 질곡의 현대사를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12·3내란도 위대한 ‘대한국민’의 힘으로 평화적으로 극복했다. 이러한 전통의 원동력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강조했던 2000년 전의 마한의 시대정신으로부터, 외침에 분연히 일어선 1592년 임진왜란과 1894년 가을의 2차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전쟁, 그리고 빛나는 독립운동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러한 시대 정신의 중심지가 바로 광주·전남이었다. 때문에 ‘의향’이라는 단어가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민족사의 큰 줄기를 형성한 빛나는 역사를 분절적으로만 이해하고 있거나, 특정 사건, 또는 특정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다 보니 전체적인 담론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가령 한산도 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 이순신의 빛나는 전공에는 우리 지역민들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아니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실상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다.

사실 이순신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관군 지휘관, 의병 지도자는 셀 수 없이 많다. 해군사관학교 제장명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순천 부사 권준, 보성군수 김득광, 녹도 만호 정운, 발포 만호 황정록, 여도 권관 김인영을 비롯해 거북선을 만든 나주 출신 나대용, 최대성, 배응록, 이언량, 변존서, 김효성, 이설, 이봉수, 이응화, 주몽룡, 이춘, 유섭, 박영남, 송한련, 고안책, 송성, 진무성, 의승장 삼혜·의능·성휘·신해·지원 등이 이순신을 도왔던 핵심 인물이라고 했다. 이들 가운데 당포해전과 노량해전에서 빛나는 공적을 세운 고흥 출신 진무성, 한산도 대첩과 행주대첩에서 이름을 빛낸 보성 출신 선거이, 이순신의 전공을 빛낸 흥국사의 의승, 해남 옥천 만인의총의 주인공으로 해남 의병을 대표하는 윤신, 고흥 출신 신여랑, 그리고 역시 고흥 출신으로 이순신을 도왔던 송희립, 송정립의 큰형 송대립 등 이순신과 함께 활동한 인물을 살펴보려 한다. 이순신의 부장(副將)급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루다 보니 유난히 고흥 출신이 많이 보인다. 이는 흥양, 현재의 고흥은 이순신이 관할하고 있던 전라좌수영의 5관5포 중 1관 4포가 포진한 핵심지역으로 흥양수군이 전라좌수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고흥 수군 지휘부와 현지 출신으로 선무원종 1등 공신에 책록된 인물만 해도 흥양현감 배홍립, 녹도만호 정운과 송여종, 산도첨사 김완, 정유재란 당시 흥양현감 최희량, 송대립, 송희립 형제, 진무성, 신여량, 송상보, 신제윤, 신여탁, 박륜 등 다수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임진전쟁기 해전에서 고흥 지역, 그리고 지역민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숙종때 세워진 해남 문내연에 있는 명량대첩비.

한편 장성 남문창의를 이끈 김경수와 입암산성 전투 주인공 윤진 등 우리 지역을 빛낸 의병들의 활약도 ‘의(義),’ 열전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1894년 6월 하순, 일본군이 경복궁에 쳐들어 우리 국왕을 겁박했다. 이를 국권피탈로 여기며 ‘의병’을 자처한 동학농민군들이 곳곳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 전쟁은 조일전쟁, 청일전쟁 등 동아시아 3국 사이에 일어난 국제전이 됐다.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최정예 군대를 증파해 동학군을 압박했다.

2차 동학농민전쟁의 중심지는 단연 전남 지역이었다. 순천에 근거를 둔 영호도회소는 2차 동학농민전쟁 때 결성된 최초 전투부대였다. 영호도회소를 포함해 전남 여러 지역에서 결성된 동학농민군들은 50여 회가 넘는 대전투를 일본군과 치렀다. 국권을 수호하고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항전은 그동안 한말 의병과 분리되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이들의 빛나는 항전은 독립전쟁이었다. 이들의 투쟁을 근대 항일 운동의 기점으로 새롭게 평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전쟁의 중심에 있던 영호도회소를 이끈 김인배, 무안 동학을 이끈 배상옥, 장흥 석대들 전투의 영웅 이방언을 비롯, 이미 동학농민전쟁 초기부터 주도적 역할을 하며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쟁을 지휘한 손화중, 김개남, 그리고 고흥의 유복만, 함평의 장경광, 구례의 임정연 등 지역을 대표하는 동학농민군 지도자를 만날 계획이다. 특히 보성, 장흥 지역에서 처절하게 치러진 동학농민전쟁의 원동력이 됐던 고흥 지역의 동학농민군 훈련소 훈련대장인 오윤영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

이들의 빛나는 항전은 1907년 의병전쟁으로 발전했다. 대한제국기의 전남 의병들은, 국권을 지키려 한 마지막 보루로써 소임을 다했다. 이미 본보는 2024년과 2025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제국기의 의병 항전을 주도한 우리 지역 의병들을 조명한 바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고자 해서다.

먼저 전남 3·1운동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했다. 1894년 2차 동학농민전쟁, 그리고 1907년부터 2년 동안의 의병전쟁의 중심지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러 항전을 이끌 동력이 소진됐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하지만 실증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광주, 전남 3·1운동의 규모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전쟁의 중심지로 기능한 우리 지역 운동의 동력을 두려워한 일제가 의도적으로 축소, 왜곡한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는 한 연구자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3·1절에 비로소 서훈이 된 광주 3·1운동 기획자 김범수, 무안 3·1운동을 이끈 김득근을 만나러 갈 것이다. 특히 김득근은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사촌 김한근은 무안, 신안 지역 3·1운동을 촉발한 인물이고, 김득근의 두 아들 영찬과 도찬은 광주학생운동의 핵심 인물이다. 김득근의 조카는 광주여고보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면서 독립운동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데, 이를 체계화한 강석봉, 지역의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지만, 실은 1927년 서울에서 결성됐던 신간회 창립을 주도한 유혁, 목포노동운동을 이끌었지만 실은 대사상가였던 김영식, 완도약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박성래, 진도 출신으로 농민, 노동운동을 이끈 소진호,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촉매 역할을 한 1928년 대맹휴 사건의 주인공 이경채, 1940년대 학생비밀결사를 이끈 곽이섭, 광복군으로 인도미얀바 전선에 파병됐던 최봉진 등을 만날 것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임진의병, 제2차동학농민전쟁, 일제강점기의 세 시기를 빛낸 우리 지역의 빛나는 인물을 조명하는 작업으로, 우리 지역 정체성의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의’의 가치와 공동체를 지키려 한,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선열들의 숨결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격려를 부탁한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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