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90만 배럴 유출’ 괴담의 실체…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권순우 기자 2026. 4. 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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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공사 여수비축기지에 UAE 아부다비 국영석유사의 원유 200만배럴이 입고되는 모습. [사진=석유공사]

‘북한 90만 배럴 유출’ 괴담의 실체…추가 110만 배럴도 베트남에 파는 이유

한국 정부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원유 90만 배럴을 북한에 넘겼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의 위기 대응 노력과 관련해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허위 가짜 정보들이 유포되고 있다”며 “이 점에 대해서도 수사기관들도 엄정하게 신속히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국민적 우려를 자극하는 허위 사실이다.

한국에 보관된 원유 90만 배럴이 판매가 된 것은 사실이다. 이 사안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다보니 가짜뉴스가 혹세무민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 사안은 현재 에너지 안보와 함께 외교적 협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챙겨야 하는 어려운 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에는 약 1억90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유가 있다. 이중에는 국가 비축유와 민간 비축유, 그리고 국제공동비축유가 있다. 국제공동비축유는 산유국 원유를 우리나라에 유치해 저장 수수료를 받고 보관해주는 원유다. 석유 수급 위기 상황이 되면 저장 원유를 우선 구매하는 권한을 갖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석유회사들의 원유가 보관돼 있다. 한국 비축 창고에 보관 돼 있긴 하지만 소유권은 해당 석유회사들에 있다.

문제가 된 90만 배럴은 울산 비축기지에 저장된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PC) 소유 물량이었다. 전체 비축 물량은 200만 배럴이다.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는 3월초 자회사인 베트남 응이선정유에 판매하기로 했다. 쿠웨이트 원유를 자회사에 판매하는 계약이다.

정부는 18일 자원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올리며 국제 공동 비축분에 대한 우선 구매권 행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물량은 우선 구매권 발동 이전에 계약된 물량이다. 이후 물량의 절반은 국내에 판매하겠다는 등의 논의가 진행됐는데, 원유를 보내도 되냐 안되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고 90만 배럴은 반출이 됐다.

베트남은 동남아 3위 산유국이지만 대부분 원유를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에는 쿠웨이트석유공사가 최대주주인 응이선정유와 빙선정유가 있다. 응이선정유는 설립 단계부터 쿠웨이트 원유를 수입해 정제를 하도록 만들어졌다. 빙선정유는 베트남산 저유황 경질유를 사용해 왔으나 경제성을 위해 중동의 저렴한 고유황 중질유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비 현대화를 하고 있다. 자국 원유는 수출을 하고 정제할 원유의 약 80%는 수입을 하는 구조다.

베트남이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원유를 수입하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저유황 경질유는 황 함량이 매우 낮은 고품질 저황유라. 중동의 저렴한 중질유를 처리하면 더 경제성 있게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중동산 중질유를 구할 수 없다보니 자국산 원유가 있어도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제공동비축유 반출에 제동이 걸리자 베트남 정부는 한국 정부에 원유 수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원 요청을 했다. 정부는 우선 90만 배럴을 반출했고, 울산 비축기지에 남아 있는 110만 배럴에 대한 반출을 허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국도 원유 수급이 원활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급이 막혀 있는 상황은 아니다. 쿠웨이트가 자기 원유를 자회사에 판매 계약까지 한 부분을 막으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원유를 일정 기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베트남, 쿠웨이트와의 외교 관계를 감안해 반출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다. 서로 힘든 상황에서 계약대로 진행을 해주면서 원유가 있어도 석유제품을 만들 수 없는 베트남 원유를 도입하는 등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 볼만 하다는 의견도 있다.

에너지 안보와 외교 협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에너지 수급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외교 협력에 차질이 생기면 다시 에너지 수급 문제로 번질 수 있다.

호주는 아시아 지역에 주로 판매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활용해 원유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맨들린 킹 자원부 장관과 페니 웡 외교부 장관은 한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과 만나 LNG 선적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호주로부터 LNG를 수입하는 국가들이면서, 호주에 석유제품을 수출하는 국가들이다.

웡 장관은 호주방송공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LNG를 공급하고 있으며 석유제품 공급의 지속적인 안정성을 기대한다.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원이라고 믿으며 그에 상응하는 안정성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호주는 지난주 열대성 사이클론으로 인해 주요 LNG플랜트 3곳의 생산량을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가 LNG를 안정적으로 공급할테니 LNG 수입국들은 석유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달라는 메시지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에너지와 원자재를 두고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정유사 4곳을 통해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한국은 그나마 잘 대응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각자도생이 더 심해질 경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긴급 도입하기로 약속한 총 2400만 배럴의 원유 중 지난달 6일 합의된 원유 600만 배럴의 국내 공급이 조만간 완료된다. 400만 배럴은 이미 왔고, 나머지 200만 배럴은 5월초중에 하역될 예정이다. 모두가 원유를 원하는 와중에 한국에 가장 우선으로 주겠다며 보내준 원유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