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식 순대와 당면순대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한겨레 2026. 4. 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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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얘기를 해볼까.

피와 부속을 넣어 만드는 거친 음식을 누구나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한 데에는 당면순대가 일등 공신이다.

휘황찬란한 요식업 세계에서 피를 버무려 만든 마니악한 순대가 여전히 살아남아 풍성한 생태계를 이뤘으니, 우선 당면순대에 박수를 보내준다.

서울 대림동에서 먹은 연변식 찹쌀순대가 내게는 이남 최고의 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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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순대 얘기를 해볼까. 국밥에 몇점 들어가는, 고명으로서의 순대 말고. 오직 순대만을 생각하며 딱 알맞게 삶아진 뜨끈뜨끈한 것이 접시에 고이 담겨 나오는 순대로서의 순대 말이다.

이쯤 떠오르는 순대가 있으신가. 동네마다 가끔 들르는 순대 트럭에서 숭덩숭덩 썰어내는 당면순대는 어떠신지. 음식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에게 으레 무시되고 ‘전통성’ 없는 제품으로만 취급되기 일쑤인 분식집 순대 말이다. 피와 부속을 넣어 만드는 거친 음식을 누구나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한 데에는 당면순대가 일등 공신이다. 휘황찬란한 요식업 세계에서 피를 버무려 만든 마니악한 순대가 여전히 살아남아 풍성한 생태계를 이뤘으니, 우선 당면순대에 박수를 보내준다.

순대를 말하며 당면만 떠올리는 건 아쉽다. 메밀가루 넣은 제주도식, 전라도 피순대, 야채 듬뿍 들어간 백암식, 대창 순대, 소창으로 만든 병천순대, 함경도 사람들 속초로 피난 내려와 만든 아바이순대, 이북식 찹쌀순대 등등. 무얼 넣었느냐, 무엇에 넣었느냐로 갈리고 뭘 찍어 먹느냐로 지역마저 갈리니 엄밀히 따지자면 족히 백가지는 되지 않을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김치만큼이나 유별나게 자기 색깔 따지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역과 민중의 삶에 뿌리 박은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내게 최고의 순댓국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고민을 깊게 할 것이다.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고의 순대’가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그것만큼은 당당하게 고를 수 있다. 서울 대림동에서 먹은 연변식 찹쌀순대가 내게는 이남 최고의 순대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가보신 적이 있는지. 이곳은 과연 서울인가. 아니, 한국이 맞기는 하는가. 물가도 다르고, 파는 식재료도 다르다. 갑자기 펼쳐진 별천지 같은 골목 풍경과 종종 들리는 낯선 언어가 도시의 풍경을 다채롭게 한다. 눈이 좀 적응이 되면 그때부터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연변식 반찬가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김치와 나물의 모습들. 이름도 조금씩 다르고, 들어간 재료도 좀 다르지만 이건 분명히 한국식, 아니 ‘한반도식’의 범주 안에서 뛰어놀고 있는 음식이다. 그렇게 좀 더 걷다 보면 익숙한 찜기, 익숙한 수증기 사이로 수줍게 모습 드러내는 짙은 검은색의 순대 똬리를 마주한다. 그저 순대라고 생각하면 오산. 어느 가게든 들어가서 찹쌀 순대를 잡숴 보시라. 아는 맛이지만 모르는 맛이고, 익숙하지만 낯선 모양새. 찹쌀에 선지, 그리고 향신료가 들어간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맛.

작년, 혐중 시위대가 대림동까지 들이닥쳐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참 대단한 애국심이 아닐 수 없다. 온갖 가짜뉴스는 둘째 치고, 압도적인 인구와 뒤집기 어려운 우위적 입장에서 소수민족 동네를 찾아가 겁박하는 애국이라니. 그 옛날 사우스 코리아와 노스 코리아도 구분 못 하던 이들이 재미교포를 비롯해 온갖 아시아 사람들에게 ‘차이니즈’라며 혐오를 표출했던 것도 그 나름의 애국이라며 넓은 아량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국격이 높아졌다는데 내로남불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굴곡진 역사를 살며 우리는 섞여 살게 됐다. 고맙게도 그 결과로서 좁은 국토에 이토록 다양한 문화적 다양성을 누리며 살아간다. 이북식, 연변식, 먹어본 적은 없지만 고려인식 순대, 재일조선인 솜씨의 순대도 있겠지. 아무렴 당면순대만 있는 것보다야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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