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이발소그림과 다방그림의 힘

김만선 부국장 대우·취재3본부장
‘이발소 그림’이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달에 한 번이나 찾았을까. 이발소 문을 열면 적당히 빛바랜 그림 몇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곤 했다. 벽에는 밀레의 ‘만종’이나 물레방아 도는 초가집 한 채, 거충 세도 열 마리가 훌쩍 넘는 꼬물이들에게 젖을 물린 어미 돼지가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어른 키보다 큰 거울 앞에 앉으면 눈길이 먼저 닿는 곳은 어설픈 몽구리나 가위를 든 이발사 아저씨가 아니었다. 유리에 비친 글씨 읽기가 옹색하기는 했어도 내용은 분명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바리캉이 애먼 곳으로 길을 내거나 날 선 가위가 귀 끝을 향할 때도 시선은 자꾸 ‘만종’ 옆의 글씨로 향했다. ‘삶이 나를 속인다’는 말은 고된 노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농부 그림과 교차되며 얼치기같이 궁금증만 키워갔다. 삶이 어떻게 나를 속인다는 것인가. 거기에 또 ‘결코 노하거나 슬퍼하지도 말라’니-.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발소그림은 누군가에게 유일한 전시장이 되어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화가의 길을 걷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다방’이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다양한 예술의 산실이기도 했던 곳.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그대 오기를 기다려봐도/웬일인지 오지를 않네/내 속을 태우는구려…’. 다방은 음악과 사람들의 적당한 소음이 커피와 쌍화차, 매캐한 담배연기와 어우러진 낭만의 장소였다.
다방은 많은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창작 의욕을 불태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예술인들이 즐겨 찾다보니 미술 전시회, 문인의 밤, 출판기념회 등 문화행사 장소로도 이용됐다. 대학 문학서클(동아리)도 다방에서 잇따라 ‘시화전’을 열곤 했다. 어설픈 솜씨였지만 펜 끝만은 정의감으로 불타는 시기였다. 학생들은 기성세대의 일그러진 욕망과 신념이 빚어낸 잘못된 세상을 시(詩)로 붙잡고 울었다.
다방에서 익숙한 풍경 중 하나는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었다. 먼 산을 배경으로 무성한 우듬지 몇 그루를 에도는 강물 위 배 한 척, 산골에서 소를 끌며 밭을 가는 농부, 커다란 나무 아래서 그네를 타는 처녀 등이 은은한 묵향을 뽐내며 각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사한 꽃이나 나비, 새를 소재로 한 화조화(花鳥畵)도 자태를 뽐냈다.
광주를 찾은 한 외국인 문화 인사는 자신이 찾은 찻집마다 내걸린 그림들을 보면서 예향(藝香)에 취해 아예 정착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발소그림’이나 ‘다방그림’은 ‘예향(藝鄕) 광주’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미술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문화지형도는 크게 바뀌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사람들이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다. 문화예술이 대중화, 디지털화 되면서 접근성이 넓어졌고 소수의 특권이나 점유가 아니라 누구나 즐기는 대상으로 확산됐다. 세대와 지역, 계층,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는 문화예술의 창·제작 등에도 다양한 변주를 불러왔다. 그 사이 광주는 광주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지역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도 분주하다. 기획전, 단체전, 개인전 등이 잇따라 열리면서 미술애호가들은 언제든지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까지 담보하지는 못한 듯하다. 광주 미술이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지역성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부터 온라인 거래 등이 활발해지고 가격이 투명해지면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서울이나 해외의 넓은 시장에서 정작 찾는 손길은 없는데 가격은 높게 책정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상업화랑이나 문화기관들이 유망한 지역 작가를 발굴하고 키아프(Kiaf)나 화랑미술제 등의 아트페어와 국제무대에 소개해야 하는 데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더해졌다.
이와 관련 최근 광주 미술인 사이에 지역 미술계의 열악한 환경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주목된다.
광주예술문화융성포럼 단톡방에서는 ‘지역 미술시장이 붕괴 직전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제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자는 의견이 공유됐다. 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당초 목표와 지역민의 눈높이에는 미흡하다는 걱정도 있다. 특히 지역 미술시장의 경우 갤러리의 역할이 사실상 전무한데다 작가 직거래와 덤핑 같은 불공정 거래가 만연해 시장 질서를 심각하게 무너뜨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적으로 문화예술 시설이나 생산, 소비의 비중은 여전히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 것이 현실이다. 사실적인 인물화나 풍경화만을 고집하는 세계관으로는 AI가 붓 없이 그림 그리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한다. 지역성에만 갇힌 좁은 시각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넓고 뜨거워지는 세계시장을 품에 안을 수 없다.
긍정의 지점은 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 어디서든 그림을 볼 수 있고 흥겨운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며 어쭙잖은 콧노래일지언정 흥얼거리는 몸짓은 아무나 갖는 성정이 아니다. 굴곡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라도’라는 공간성에 쌓인 한(恨)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킨 저력도 있다. 이발소그림이나 다방그림에서 비롯된 예술적 끼는 지금도 많은 예술인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창작에 몰두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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