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기는 안 걸려’ 공공기관 5부제 공무원 차량 옆 주차장으로 몰렸다 [세상&]

정주원 2026. 4. 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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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초구청 주차장 ‘2·7 차량’ 그대로
규제 피해 ‘옆 주차장’으로 몰려
유가 더 뛰면 2부제·민간 확대 검토
31일 오전 서초구청 부설주자창에 화요일 차량5부제 대상 차량이 들어오는 모습. 정주원 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전새날 기자] 유가 급등 여파로 공공기관 차량 5부제가 35년 만에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혼선과 불편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기관에서는 제도가 비교적 빠르게 자리 잡았지만 구청을 중심으로는 사실상 ‘지키기 어려운 규정’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 8시께 서울 서초구청 부설주차장은 출근 차들이 줄지어 게이트를 통과하는 가운데, 차량 번호 끝자리 ‘2·7’인 화요일 5부제 대상 차들이 별다른 제지 없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이미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도 위반 차량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날 주차장 출입구에는 ‘차량 5부제 시행’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현장 통제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차장 관리자 A씨는 “아직은 계도 단계라 강하게 막지 않는다”며 “구청 직원 중 5부제를 피해 가족 차량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고, 옆 공영주차장을 많이 이용해 단속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단속보다 자율” 임시주차장으로 우회하는 출근길

이날 구청직원들은 규제를 피해 인근 양재공영주차장을 ‘임시 대안’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최근 민간 운영에서 공공으로 이관되는 과정에 있는 시설로 현재는 무료로 개방된 상태다.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청 부설 주차장에 차량번호 끝자리 ‘7’ 차량이 주차돼 있는 모습. 정주원 기자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해당 주차장은 공단이 인수해 시설 정비를 진행 중인 단계로 정식 운영 전까지 한시적으로 무료 개방하고 있다”며 “아직 차량 5부제 적용 여부에 대한 별도 지침은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틈을 타 직원들 사이에서는 “5부제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양재공영주차장에는 5부제 대상 차들이 다수 주차된 모습이 확인됐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부설주차장은 원래도 직원 사용이 제한적인데 5부제가 시행되면서 더 엄격해졌다”며 “자연스럽게 인근 주차장 이용이 늘어난 상황”이라고 했다.

제도 준비 역시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홍보물 제작과 제외 차량 파악을 동시에 진행 중인데 아직 전체 현황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영유아 동반 차량 등 예외 신청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기관 따라 ‘정착 vs 혼선’…출퇴근 부담 현실화

기관별로 제도 정착 수준은 뚜렷하게 갈렸다. 일부 기관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법에는 약 1시간 동안 입차한 등록 차량 12대 모두 5부제 적용 대상이 아니었고 위반 차량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부지검 주차장에서도 5부제 대상 차량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 기관은 5부제 대상 차량이 차가 들어올 때 차단기에서 자동으로 적발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서부지법 관계자는 “메일과 공지를 통해 지속해서 안내하고 있고 직원도 협조가 잘 되는 편”이라며 “위반 차량 사례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31일 오전 서울서부교육지원청에 차량 5부제 관련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전새날 기자

서울서부교육지원청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시행 초기에는 몇 대 돌려보낸 차량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잘 지키고 있다”며 “제도 시행 이후 주차장이 10~20% 정도는 비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일주일 중 하루지만 대중교통보다 차량이 더 편하고 가깝다”며 “차를 못 가져오는 날은 출근 시간이 많이 늘어난다”고 토로했다.

영등포에 거주하는 한 구청 관계자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차로 출근하던 게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그걸 못 해서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며 “비용 부담도 생기고 시간도 더 들지만 어쩔 수 없이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만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서초구청 내부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 관계자는 “겉으로는 정책이니까 따르자는 분위기지만 실제로는 불편하다는 얘기가 많다”며 “특히 출퇴근 거리가 먼 직원들은 체감이 크다”고 말했다.

유가 더 오르면 ‘2부제’…민간 확대 가능성도

정부는 이번 조치를 공공부문부터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선제 대응’으로 보고 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수요 억제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구윤철 부총리는 지난 29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민간으로도 차량 운행 제한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는 공공기관 중심의 5부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상황이 악화할 때 일반 국민까지 대상이 넓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서초구청에 차량 5부제 시행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정주원 기자

실제로 정부는 다음 달 6일부터 공공기관 차량 2부제 시행도 예고한 상태다. 다만 현장에서는 “제도 정착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자차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경우 2부제 시행 시 출퇴근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초구청 행정지원과 관계자는 “2부제는 5부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차량을 절반만 운행해야 하는 방식이라 직원들의 불편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관련 공문이나 구체적인 기준도 내려오지 않은 상황인데 시행이 현실화하면 다시 전면적으로 차량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현재도 준비가 완전히 된 상태가 아닌데 더 강한 규제가 들어오면 현장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30일 서울지방국세청 주차장 입구에 승용차 요일제 안내문이 붙은 모습. 정주원 기자

한편 이번 차량 운행 제한 조치의 배경이 된 에너지 대응 정책을 두고 정부의 준비 수준을 둘러싼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국내 비축기지에 보관 중이던 국제 공동비축 원유 약 90만 배럴이 우선 구매권 행사 없이 해외로 판매된 사실을 확인하고 한국석유공사를 상대로 긴급 감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29일 산업부 장관과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직권남용과 직무 유기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하고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에너지 수급 관리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정책 대응의 부담이 현장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가 급등 속에 차량 5부제에 이어 2부제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정책의 실효성과 현장 수용성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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