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기 칼럼]긴급명령, 꺼내는 것부터 위험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1일 제13회 국무회의에서 중동 전쟁 여파에 따른 공급망·물가 불안을 거론하며 "긴급할 경우에는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경제계엄령'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청와대는 곧바로 "예시로 든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바로 그 해명이 이번 발언의 심각성을 더 키웠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 제76조가 정한 대통령의 비상대권이다.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속에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만 허용되는 예외적 권한이다. 법률의 효력을 가진 명령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평시의 정책수단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최후수단이다.
그런 권한을 대통령이 공개 회의에서 먼저 꺼냈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다. 진지한 내부 검토를 거쳐 나온 말이었다면, 그 자체로 발동 요건 충족 여부를 엄정하게 따져야 할 사안이다. 반대로 별다른 검토 없이 툭 던진 말이었다면, 그것은 더 위험하다. 최고 권력이 헌법상 비상권한을 정치적 수사나 압박의 언어처럼 사용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예시였다"는 해명은 문제를 지우지 못한다. 오히려 두 가지 의심을 동시에 남긴다. 정말 검토했느냐, 아니면 너무 쉽게 입에 올렸느냐.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통치 언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발언이 남기는 정치적 인상이다. 대통령은 기존 제도나 법령의 제한을 넘는 대응을 주문하는 맥락에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말했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필요하면 국회의 절차를 건너뛸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권력 스스로 공개한 셈이다. 지금 국회가 마비된 것도 아니고, 집권세력이 다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굳이 비상대권을 먼저 거론한 것은 정책적 자신감이라기보다 절차를 우회하고 싶은 권력의 조급함으로 읽히기 쉽다. 그래서 이번 발언은 경솔함을 넘어 불순하게 들린다. 실제 발동 의지가 있었든 없었든, 국민에게 "비상권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신호를 던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일부에서는 1993년 금융실명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선례로 든다. 그러나 그 사례는 이번과 전혀 다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공개 입법 절차를 밟는 동안 비실명 자산의 대규모 이탈과 금융시장 동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해, 1993년 8월 12일 저녁 금융실명제를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전격 시행했다. 그 핵심은 차명거래 차단, 금융질서 정상화, 경제정의 실현이라는 구조개혁에 있었고, 기습성과 전격성이 정책 성패의 본질이었다.
반면 이번 사안은 공급망 불안과 요소·요소수 같은 수급 문제 대응 맥락에서 거론됐다. 헌법상 예외권한을 동원할 정도의 구조적·제도적 긴급성과는 결이 다르다. 긴급명령의 선례가 있다는 이유로 지금도 쉽게 꺼낼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선례가 예외적이었기 때문에, 오늘의 권력은 더 엄격하게 자제해야 한다.
비상대권은 적극적으로 발동함으로써 위험한 것만이 아니다.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시험적으로 흘리는 순간, 국민 반응을 떠보는 말로 사용하는 순간에도 위험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느리고 번거롭지만, 바로 그 느림과 번거로움이 권력의 폭주를 막는 안전장치다. 민생이 어렵다면 국회로 가야 한다. 추경이 필요하면 추경으로, 입법이 필요하면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비상권한은 정상정치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논의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런데 그것을 먼저 입에 올렸다면, 이미 순서가 뒤집힌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실수로 넘길 일이 아니다. 무심코 던진 말이라면 무책임하고, 의도를 가진 말이라면 더 위험하다. 결론은 하나다. 긴급명령은 발동해서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꺼내는 것부터 위험하다. 그리고 이번 발언은 바로 그 금기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갈 수 없다.
신봉기(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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