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40달러 놋그릇이 110달러로… 외국인 ‘환율 세일’ 즐긴다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놋그릇 매장. 매장을 찾은 캐나다인 린다(46)씨는 연신 “아주 멋지다(So Gorgeous!)”라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번역기를 켜 가격을 물어본 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반짝이는 놋쟁반과 수저·젓가락 세트를 샀다. 함께 물건을 구경하던 남편은 “평소에도 특별한 물건을 사러 다니는데, 환율까지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놋그릇 매장 운영자 박승환(67)씨는 달러로 계산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는 144달러에 팔던 그릇을 요즘은 110달러에 팔고 있다”며 “환율 변동이 워낙 커서 그때그때 계산하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뛰면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른바 ‘환율 세일’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선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환율 보고 한국行 결정하기도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 1일부터 21일까지 외국인 관광객의 하루 평균 관광 총소비는 약 49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17억원)보다 19.7% 증가한 수준이다. 외국인의 관광 총소비는 해외 발행 카드로 숙박, 교통, 쇼핑 등 여행 관련 업종에 지불한 돈을 합산한 값이다.
‘가성비’ 여행지가 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SK텔레콤 이동통신 데이터를 토대로 한 외국인 방문자 수는 지난달 1일부터 21일까지 하루 평균 43만2400여명이었다. 지난해 동기 37만5200여명보다 15.2%(5만7200명) 늘었다.
서울역에서 만난 호주 출신 마이클 조세(48)씨는 “아시아 국가 중 한곳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환율을 따져보고 최종 목적지를 한국으로 정했다”고 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 크리스 코비에르스키(47)씨도 “미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주기가 짧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주에 친구가 놀러 오는데, 환율 덕분에 여행 경비에 여유가 생겼다”며 “평소 4~5일 묵을 돈으로 일주일을 머물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달러를 기준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하루 평균 소비액은 감소 흐름을 보이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진 영향이다.
외래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1명이 비행기·숙박 등 한국 여행을 위해 하루 동안 쓴 돈은 평균 321.9달러(잠정치)였다. 2023년 332.9달러, 2024년 326.4달러 등보다 지속해서 줄었다.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292원, 1305원, 1353원으로 상승했다.
올해 들어 이날까지 원·달러 환율 평균이 1466.25원인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 경비 부담은 더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2년 전보다 화장품 더 싸게 샀다”
한국을 여러 번 찾은 외국인일수록 환율 효과를 더 크게 체감하고 있었다. 전날 명동에서 만난 미국인 프랜시스 포일(56)씨는 2017년 제주도 방문 때를 떠올렸다. 그는 “그때도 똑같이 1000달러를 환전했는데, 이번에 더 두툼한 원화 지폐를 챙길 수 있었다”며 웃었다.
원·달러 환율 평균치를 기준으로 포일씨가 2017년에 1000달러를 환전했을 때는 113만원이었다. 현재 환율로는 150만원이 넘는다.
같은 날 명동에서 쇼핑을 하던 호주인 기즐라 캐넌트(43)씨도 “2024년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매한 화장품이 너무 좋아 이번에 다시 샀는데, 더 쌌다”고 말했다.
해당 화장품의 원화 가격은 2년간 2만6000원으로 변동이 없었지만, 원·달러 환율이 2024년 11월 약 1390원에서 전날 1530원 수준까지 오르면서 달러 기준 가격은 18.7달러에서 16.9달러로 낮아졌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상권의 상인들은 체감 경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인사동의 한 소매점 주인은 “외국인 소비 증가보다 물가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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