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임종 돌봄 중심으로…“간병·의료 통합 국가책임 전환 시급”
호스피스·치매 인프라 부족에 지역 격차까지 구조 개편 요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요양병원이 단순 치료기관을 넘어 생애 말기 돌봄을 담당하는 핵심 의료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간병은 개인 부담에 의존하고 치매·호스피스·장기요양보험 체계는 분절적으로 운영되면서 제도와 현실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요양병원협회 수석부회장이자 경북지부회장인 안병태 회장(포항 더조은요양병원장)은 "요양병원은 이미 임종 의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책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간병·의료·복지를 통합한 국가 돌봄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회장은 요양병원의 환자 구성이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70~80%가 치매 환자이며 파킨슨병, 뇌졸중, 편마비, 의식 저하 환자 등 중증 환자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입원 직후 사망하는 경우부터 장기간 입원 후 임종에 이르는 사례까지 다양하다"며 "요양병원은 치료 중심 기관에서 생애 말기 돌봄을 담당하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고령화 속도와도 맞물려 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향후 10년 내 초고령사회 진입이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장기 돌봄과 만성질환 관리, 임종 의료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봄 구조는 여전히 개인 부담에 의존하고 있다. 중증 환자의 경우 1대1 간병이 필요해 하루 15만원정도의 개인간병비가 들고 한달에 약 400만원이상 비용이 발생한다. 환자 가족이 장기간 간병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도 적지 않다. 공동간병시스템인 간병급여화가 빨리 시행되어 보호자의 간병비경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 회장은 "경제력이 있어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며 "간병을 공적 체계로 포함시키는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간병 급여화 정책에 대해서도 한계를 지적했다. 전국 1300여 개 요양병원 가운데 일부 병원만 지원 대상이 되고, 선정된 병원에서도 일부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부분적 지원으로는 전체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며 "간병의 국가 책임화를 전제로 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매와 중증 환자에 대한 전문 의료체계 부족도 문제로 지목됐다. 현재 치매 전담 병원은 극히 제한적이며 지역별로 균형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다.
안 회장은 "경증에서 중증, 말기 단계까지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단계별 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치매 전문병원을 지역 단위로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종 의료의 핵심인 호스피스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낮은 수가 구조로 인해 병원들이 운영을 기피하면서 서비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환자가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요양병원에서도 호스피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임종 단계 환자의 상당수가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의료 서비스는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도와 현장 간 불일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역 간 의료 격차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수도권은 시설과 서비스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지방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간병 지원 정책 역시 일부 병원에 집중될 가능성이 커 지역 간 돌봄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 회장은 "포항을 포함한 지방의 경우 정책 혜택을 받는 병원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며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양병원 내부에서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시설과 인력, 서비스 수준에 따라 병원 간 차이가 확대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병원은 시설이 크게 개선됐지만 그렇지 못한 병원도 많다"며 "전체 의료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준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 발전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간 연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양병원과 요양원, 지역사회 돌봄 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 모델이 필요하다"며 "지역 기반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회장은 "우리 사회는 잘 사는 것에는 관심이 많지만 잘 죽는 것에 대한 준비는 부족하다"며 "웰다잉 교육과 임종 준비 체계를 통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임종으로 인해 환자와 가족 모두 충분한 준비 없이 마지막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락사 논쟁과 관련해서는 "생명은 끝까지 존중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환자가 고통 없이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인 정책 전반에 대한 구조적 문제도 언급됐다. 우리나라가 일본 모델을 빠르게 도입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부분까지 함께 받아들이면서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이제는 한국 현실에 맞는 독자적인 요양의료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며 "단순한 제도 모방이 아니라 현장에 기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요양보험 재정 문제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보험료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재정 부담 역시 커지고 있어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그는 "재정 구조와 서비스 체계를 함께 개편하지 않으면 현재 시스템은 유지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요양병원이 고령사회 핵심 의료 인프라로 자리 잡았지만 간병의 사적 부담 구조, 전문 의료체계 부족, 지역 격차, 재정 한계 등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병태 회장은 "요양병원을 국가 돌봄 시스템의 중심으로 보고 간병·의료·복지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