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서 듣는다…료지 이케다 '언플러그드 음악'
료지 이케다X앙상블 모데른 공연 시작으로
아동 참여형 퍼포먼스,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까지
12월까지 매월 다른 장르 프로그램 공개

미술관의 역할과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국립현대미술관(MMCA, 이하 국현)은 2018년부터 다원예술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해왔다. 다원예술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미술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국현은 31일 ‘2026 다원예술 탐정의 시간’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성희 국현 관장을 비롯해 2026 다원예술을 기획한 성용희 학예연구사,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박민희, 네덜란드 출신의 리타 후프와이크 등의 아티스트가 참석했다. 지난 2년간 선보인 프로그램 ‘우주 엘리베이터’, ‘숲’을 통해 공간을 탐구했다면 올해는 시간의 차원으로 전환해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올해 주제는 ‘탐정의 시간’이다. 탐정은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공지능은 정반대의 특징을 지닌다. 국현 전시과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인공지능에 질문하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무언가를 유심히 살피고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탐정 외에는 많지 않다”며 “동시대 탐정은 누구일까? 무엇을 할까? 어떠할까?라는 질문에 2026 다원예술은 예술가나 아이들, 관객들을 이러한 탐정의 전형으로 답했다”고 소개했다.
2026 다원예술은 4월부터 12월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월별로 순차 공개한다.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 베이스로 구성된 앙상블의 음악부터 가곡 이수자 박민희가 재해석한 전통음악, 아이들이 모르는 어른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참여형 퍼포먼스 ‘아이들의 헤어컷’, 영화 <오펜하이머>와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첫 장편 영화 ‘미행’까지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2년간 이어질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공연은 전자음악 작곡가 료지 이케다(Ryoji Ikeda)와 협업한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의 ‘현악기를 위한 음악’이다. 일본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료지 이케다는 빛과 소리, 데이터를 시각화한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시각예술가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료지 이케다와 세계 3대 현대음악 앙상블로 꼽히는 앙상블 모데른이 함께 협업해 네 곡을 선보인다.
‘현악기를 위한 음악’은 기존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지휘자가 없다. 각 연주자는 귀에 착용한 기기에서 들려오는 전자 신호음으로 연주 타이밍을 잡는다. 전자기기가 지휘자인 셈이다. 연주자가 음악을 느끼며 표현하는 제스처나 움직임도 없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앙상블 모데른의 매니지먼트 디렉터 크리스찬 포쉬(Christian Fausch)는 “평소 강박적일 정도로 정교하게 동기화된 작업을 선보이는 료지 이케다가 연주자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제스처까지도 작곡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한 명과 첼로 연주자 두 명, 바이올린 연주자 여섯 명이 공연한다. 관객을 향해 일렬로 앉은 9명의 연주자는 가운데 콘트라베이스를 중심으로 양 끝 연주자끼리 페어를 이뤄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방식이다.
이번 공연은 주로 미니멀리즘에 기반한 전자음악을 선보이는 료지 이케다의 언플러그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다. 공연팀은 손으로는 아날로그 음악을 연주하지만 눈으로는 아이패드 화면의 악보를 좇는다. 료지 이케다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이다.
크리스찬 디렉터는 “료지 이케다는 연주자들이 악보를 보기 위해 종이를 손으로 넘기는 것 또한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연주자들은 발 밑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움직임을 최소화해 화면 속 악보를 넘긴다”고 설명했다.
5월 이어지는 퍼포먼스 '아이들의 헤어컷'은 실제로 8살부터 12살까지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미용사로 분한다. 헤어 아티스트 차홍이 이끄는 브랜드 차홍의 아티스트에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국현 마당에서 처음 보는 어른들의 머리를 손질하게 된다. 캐나다의 퍼포먼스 단체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Mammalian Diving Reflex)가 시작한 이 작업은 실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적 관계와 그 현장을 탐구하도록 돕는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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