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잃어감 속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기쁨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년)에서 주인공 철호에게 치통과 발치가 고단한 현실의 무게이자 삶의 목표 상실을 상징한다면, 비슷한 문제가 조선시대 정약용에겐 노년의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노인 되어 한 가지 유쾌한 일은, 이빨 휑한 것이 또 그다음이라네.
여든이 된 주인공 프레드 밸린저는 은퇴한 작곡가 겸 지휘자로, 60년 지기인 영화감독 믹과 전립선 노화로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서로의 처지를 농담거리로 삼곤 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년)에서 주인공 철호에게 치통과 발치가 고단한 현실의 무게이자 삶의 목표 상실을 상징한다면, 비슷한 문제가 조선시대 정약용에겐 노년의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노인의 한 가지 유쾌한 일’(老人一快事) 6수 중 두 번째 수
노인 되어 한 가지 유쾌한 일은, 이빨 휑한 것이 또 그다음이라네.
반쯤 빠지면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완전히 없어지면 마음이 편해진다네.…
위아래 잇몸은 굳은지 오래라서, 부드러운 고기는 제법 씹을 수 있다네.
그래서 이빨 없는 것 때문에, 구슬프게 즐기는 음식 끊지는 않는다오.
‘주역’의 말처럼 산과 우레같이 위아래 턱이 움직이니, 덜거덕거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이제부턴 사람의 질병 명칭이, 사백 네 가지를 채우지 못하게 되리니.
유쾌하기도 하구나 의서 가운데, 치통이란 글자 빼버릴 수 있어서.
老人一快事(노인일쾌사), 齒豁抑其次(치활억기차).
半落誠可苦(반락성가고), 全空乃得意(전공내득의).…
兩齶久已堅(양악구이견), 頗能截柔膩(파능절유니).
不以無齒故(불이무치고), 悄然絶所嗜(초연절소기).
山雷乃兩動(산뢰내양동), 嗑嗑差可愧(합합차가괴).
自今人病名(자금인병명), 不滿四百四(불만사백사).
快哉醫書中(쾌재의서중), 句去齒痛字(구거치통자).
시인은 당나라 백거이가 쓴 노년 주제 시의 발상과 달관적 의식에 감발하여(시의 부제가 ‘效香山體·효향산체’이다), 노년을 맞는 여섯 가지 기쁨을 차례로 노래했다. 시인이 든 여섯 가지 즐거운 일은 탈모, 낙치, 시력과 청력의 악화같이 사람을 서글프게 만드는 노화의 징표들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극심한 치통에 시달렸음에도 이빨이 다 빠지게 되면 그 고통을 잊어버려도 돼서 마음이 편하다고 읊었다. 통념에 대한 전복적 사유가 인상적이다. 지난 회에 다룬 한유의 ‘낙치’와 백거이의 ‘치락사(齒落辭)’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더 초연하고 유머러스하다.

늙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시인의 낙치와 밸린저의 전립선 문제처럼 노화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송나라 정호(程顥)는 404종에 달하는 육체의 병은 외부 요인으로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지만 마음을 다잡는 일만큼은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近思錄’, ‘存養’) 마음먹기 따라 노화도 내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종량제 봉투, 코로나때 마스크처럼 구매 제한 검토”
- [단독]尹 영치금 12억 넘었다…대통령 연봉의 4.6배
- 다주택자 수도권 주담대, 17일부터 연장 안된다
- 3세미만 국영수 사교육 금지…3세이상도 하루 3시간 못넘긴다
- 중국은 호르무즈 해협 없이 어떻게 살아 남았나?
- 옆자리 거구의 ‘쩍벌남’과 13시간 초밀착 비행…기내 민폐 논란[e글e글]
- “주차비 4000원” 때문?… 60대 관리인 차로 치고 도주
- 정청래, ‘돈봉투 의혹’ 김관영 전북지사 감찰 지시…金 “대리비 줬다가 전액 회수”
- 국힘 새 공관위원장에 4선 박덕흠 의원
- 정원오 42.6% vs 오세훈 28.0%… 전재수 43.7% vs 박형준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