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하던 中, 중동전쟁 적극 개입 선회… 美·이란 갈등 중재자 자처

유진우 기자 2026. 4. 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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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 위협에 침묵 깬 중국
中·파키스탄, 이란 평화 구상 발표
수세 몰린 이란에 中 보증 중재안 제시
트럼프 5월 訪中 앞두고 지렛대 확보

미국과 이란 전쟁이 발발 32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개전 초기 미국과 이스라엘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침묵에 가까운 신중론을 펼치던 중국 행보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동안 거리를 두며 사태를 관망하던 중국이 파키스탄과 손잡고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섰다.

31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교장관은 중국 베이징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알자지라 등 주요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전날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 베이징에서 회담을 열고 중동 지역 정세 안정을 위한 5대 제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적대행위 즉각 중단, 조속한 평화협상 개시, 민간 및 핵심 인프라 안전 보장, 호르무즈 해협 정상 통항 회복, 유엔 헌장 우선 등이다.

앞서 이란은 우라늄 농축 전면 중단과 핵심 핵시설 해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종료 같은 조항을 담은 협상안에는 관심이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파키스탄 측은 이번 중국과의 새 제안을 두고 모두가 만족할 만한 균형 잡힌 구상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이날 이란과 휴전 합의 가능성에 “그들(이란)이 원하고 있기에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낙관적인 의견을 내놨다.

중국은 이번 공동 구상 발표 전까지 중동 사태에 직접 개입하는 상황을 피했다. 무력 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과정에서도 원론적인 평화 촉구 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우방국이었던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공습을 당해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이란을 공개적으로 편들지 않았다. 자칫 이란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으로 비쳐 미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불상사를 극도로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전통적인 중국식 도광양회(韜光養晦·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노선이라고 평했다.

지난달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주유소 직원이 주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한 달을 넘기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해협 주변 물류가 완전히 마비되고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뿌리째 흔들리자, 중국 내부에서 더 이상 사태를 방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해상 물동량 20%를 차지하는 글로벌 에너지 심장부다. 현재 글로벌 대형 해운사들은 치솟는 전쟁 보험료와 선박 피격 위험 탓에 이곳 통항을 전면 중단했다.

수출 주도형 제조업이 경제 뼈대인 중국 입장에서 원유 공급 차질은 국가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악재다. 중국은 비축유를 풀고 러시아산 원유 도입을 늘리며 버티고 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산업계 전반에 연쇄적인 셧다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헨리 투겐다트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친미 성향 매체 알후라에 “호르무즈 해협은 중국 원유 수입량 45%가 통과하는 길목인 만큼 현재 중국 최대 골칫거리로 부상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이번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파키스탄을 전면에 내세웠다. 중국이 미국을 직접 상대하며 중재안을 들이밀면 패권 경쟁 구도로 변질돼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이에 중국과 이란에 모두 오랜 맹방이자 이번 전쟁에서 이미 미국과 이란 사이 연락책 역할을 맡아온 파키스탄을 십분 활용했다. 파키스탄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중국은 뒤에서 묵직한 보증인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중국은 미국과 이란이 합의에 실패하더라도, 중재국으로 떠안아야 할 외교적 부담을 파키스탄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반대로 협상이 성공할 경우, 중동 평화를 이끈 실질적인 배후로서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알자지라는 중동 전문가 사이드 연구원을 인용해 “파키스탄이 벌이는 현장 셔틀 외교는 저위험 고효율 수단”이라며 “중국이 미국과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서도, 긴장 완화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어 신뢰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30일 이란 수도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에서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란 입장에서도 현실적으로 중국 측 중재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란은 오랜 서방 제재에 이은 이번 전쟁으로 국가 생존이 걸린 수준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최대 무역 파트너이자 든든한 우방인 중국의 경제 지원이 절실하다.

중국 역시 이란 정권이 붕괴하거나, 극단적인 저항에 나서 중동 전체가 화약고로 변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이번 중재 역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 이란을 설득하고 호르무즈 해협 안전을 확보하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알자지라는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 고위 관리들은 안정적인 미국과 이란 관계가 자국 핵심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며 “중재 지원 대가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와 지역 평화 안정을 확실하게 연관 짓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번 중재 지원 결정 배경에 미국 중심 중동 질서에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예정됐던 중국 방문을 전쟁 여파로 연기한 상태이며, 오는 5월 다시 베이징을 찾을 계획이다. 트럼프 방문을 앞두고 무역 분쟁 등 산적한 현안을 유리하게 풀어갈 강력한 협상 지렛대가 필요한 중국이 이번 중재 건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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