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소리가 사라지자 야생의 감각이 깨어나다
전기 버스 도입하니 소음·진동 줄여
맹수와 관람객 사이 거리 좁혀져
캐나다 ‘엘로와즈’ 협업 서커스
중력 거스르는 몸짓에 관객들 넋 잃어
불꽃쇼 등 볼거리 늘었지만
인파 몰리는 주말 혼잡도는 숙제
[용인(경기)=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문명의 소음을 지우자 비로소 야생의 숨결이 시야에 들어왔다. 엔진 굉음이 물러난 자리, 굉음에 묻혔던 맹수의 육중한 실루엣이 정적을 깨고 관람객을 마주한다. 1년간의 전면 리뉴얼을 마치고 1일 문을 연 에버랜드 ‘사파리월드: 더 와일드’는 바로 그 ‘조용한 침투’의 힘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1976년 개장 이후 한국인의 휴일을 지켜온 사파리가 이제는 맹수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고 그 곁을 조용히 빌려 쓰는 법을 배우고 돌아왔다.




개장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익숙한 풍경 위로 낯선 정적이 흘렀다. 이번 리뉴얼의 가장 큰 변화는 차종의 교체다. 에버랜드는 기존 디젤 사파리 버스 대신 저소음·저진동 설계가 적용된 특수 전기차량 10대를 도입했다.
변화는 의외의 지점에서 체감됐다. 엔진 굉음과 털털거리는 진동이 사라지자 역설적으로 맹수와의 거리는 더 좁혀졌다. 소음이 없으니 사자와 호랑이들은 이전보다 경계를 풀고 차체 가까이 몸을 붙였다. 유리창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날 때마다 육중한 근육의 움직임과 털의 질감이 시야에 가득 찼다.
과거의 사파리가 숲을 가로지르는 ‘관찰’이었다면, 지금은 그들의 영토로 조용히 스며드는 ‘경험’에 가깝다. 안전한 차 안에서 야생의 문턱을 넘보는 이 생경한 기분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이방인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문명의 소음을 지우자 비로소 맹수와의 심리적 거리가 한 뼘 더 줄어든 셈이다.

인간의 몸이 그려내는 마법같은 무대
사파리가 야생의 긴장을 전했다면 그랜드 스테이지의 신규 공연 ‘윙즈 오브 메모리’는 인간의 몸이 그려내는 서정적인 무대다. 캐나다 공연단 엘로와즈와 협업한 이 공연은 단순한 기예를 넘어선다. 공중을 가르고 장대를 오르내리는 배우들의 몸짓은 한 편의 시처럼 흐른다. 자극적인 흥분 대신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장면의 미학을 택해 성인 관객들의 몰입도도 높였다.
다만, 이 ‘예술’을 마주하기까지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다.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공연자들의 체력 관리와 안전을 위해 공연 횟수는 하루 1~2회로 엄격히 제한된다. 이 때문에 에버랜드 측은 사전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 관람권을 배정하는 고육지책을 택했다. 긴 대기 줄을 없애고 헛걸음을 방지하려는 조치라지만, 한정된 객석 탓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이들에겐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콘텐츠의 질을 담아낼 그릇(공연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은 향후 에버랜드가 풀어야 할 숙제다.

미각과 시각이 만난 튤립축제
공연장을 나오자 정원에는 봄의 절정이 펼쳐져 있었다. 한창 진행 중인 ‘튤립 축제’는 올해 단순한 감상을 넘어 ‘체험’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지난해까지가 120만 송이 튤립이 빚어내는 ‘시각적 풍경’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유명 F&B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튤립을 테마로 한 디저트와 음료를 선보이며 ‘미식’의 즐거움을 더했다.
포시즌스가든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쳤다. 색색의 튤립 사이에서 연신 셔터를 누르는 연인들부터, 정원 한편에 마련된 야외 테이블에서 튤립 모양 디저트를 즐기며 봄볕을 만끽하는 가족들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을 기록하고 있었다.
해 질 녘 포시즌스가든에서 펼쳐지는 불꽃과 드론 쇼는 하루의 감각을 하나로 묶어주는 피날레다. 낮 동안 맹수의 눈빛을 마주하며 쌓였던 팽팽한 긴장감이 밤하늘의 화려한 불꽃놀이와 만나며 비로소 해소된다. 테마파크는 흔히 놀이기구를 타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기구 대신 ‘기억’을 사간다. 아이는 맹수를 대면한 찰나의 경외감을, 어른은 유년의 추억과 오늘이 겹쳐지는 시간을 품고 돌아간다.

에버랜드의 이번 시도는 오래된 자산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번역하려는 승부수다. 더 깊고 오래 남는 경험을 만드는 쪽을 택한 만큼, 정식 개장 이후 몰려들 인파를 어떻게 정교하게 관리하느냐가 이번 리뉴얼의 최종 성적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엔진 소리 멎은 숲에서 깨어난 것은 맹수의 본능만이 아니었다. 그 앞에 멈춰 선 우리 안의 오래된 야성(野性)도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여행 수첩
▲관람 팁: 1일부터 정식 운영되는 사파리월드는 에버랜드 앱을 통한 ‘스마트 줄서기’가 필수다. 재개장 초기에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입장 직후 예약하는 것이 유리하다.
▲공연 관람: ‘윙즈 오브 메모리’는 당일 앱 사전 신청 및 추첨제로 운영된다. 좌석 수가 제한적이니 당첨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주변 볼거리: 사파리 관람 후 인근 포시즌스가든의 봄꽃을 감상하며 하루의 여운을 정리하기 좋다.
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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