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새로운 계급 권력

역사를 돌아보면 경제 체제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켜 왔다. 농업 사회에서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 권력을 가졌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공장과 자본을 가진 계층이 경제를 지배했다. 그리고 오늘날 디지털 경제에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집단이 새로운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생산 수단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에서 보이지 않는 정보와 데이터가 권력을 형성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우리의 일상을 소리 없이 장악하고 있다. 검색 알고리즘은 우리가 어떤 정보를 보게 되는지를 결정하고 추천 시스템은 우리가 무엇을 소비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예측한다. 금융, 의료, 채용과 같은 영역에서도 알고리즘은 점점 더 중요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의 기준과 과정이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사회를 경고했다. 당시에는 전체주의 국가가 정보를 독점하는 상황을 상상했지만 오늘날 디지털 사회의 통제 방식은 훨씬 더 미묘하고 정교해졌다. 감시는 더 이상 강압적이지 않다. 우리는 편리함과 효율을 얻는 대가로 스스로 데이터를 제공하며 그 데이터는 다시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되돌아온다. ‘1984’의 마지막 문장,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은 감시와 통제를 내면화하여 저항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감시가 오히려 편리함과 효율을 제공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그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매순간 AI와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모습 역시 이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편리함 속에서 만족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통제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과 같은 섬뜩한 전율일지도 모른다. 현대 기술 사회를 분석한 유발 하라리 역시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결합될 때 소수의 집단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직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인간이 신을 발명했을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되려 할 때 역사는 끝난다’고 말했다. 이 통찰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와 인간의 공존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노동 시장에서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는 AI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으며 플랫폼 경제 속에서 많은 노동이 불안정한 형태로 이동하고 있다. 반면 AI를 설계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생산성을 극대화하며 새로운 기회와 부를 얻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새로운 계층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AI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집단, AI를 활용하는 고부가가치 창출 집단, 플랫폼에 의존해 일하는 중간 계층, 그리고 자동화로 일자리를 위협받는 노동자들로 분화되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모두는 이 거대한 구조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고 검색을 하며 온라인에서 소비 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이 데이터는 AI 시스템을 학습시키는 핵심 자원이 되지만 그 경제적 가치는 대부분 플랫폼 기업에 집중된다. 결국 우리는 생산 과정에 참여하면서도 그 결과를 통제하지 못하는 새로운 경제 구조 속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는 과연 불평등을 줄이는 기술일까, 아니면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 내는 기술일까. 기술 자체는 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구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만약 AI와 데이터 권력이 소수 기업에 집중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계급 사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데이터의 공공성 강화와 기술 접근권의 확대,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제도를 통해 AI의 혜택을 보다 넓게 분배하는 길도 열려 있다.
기술의 방향은 아직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제도와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AI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와 함께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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